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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 김씨 묘표 갑신년(1944)(孺人金氏墓表【甲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4 / 묘표(墓表)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4.0003.TXT.0022
유인 김씨 묘표 갑신년(1944)
위(衛)나라의 시인은 장강(莊姜)의 현명함을 찬미하면서 "제(齊)나라 임금의 따님이요 위나라 임금의 아내이며, 태자의 누이이고 형(邢)나라 임금의 처제라네."라고 하였다. 저 시인은 작위가 높은 사람은 친속(親屬)도 오히려 칭송할 대상에 들어간다고 여긴 것이니, 하물며 그 친속이 도덕, 문장, 충의, 학행과 같은 천작(天爵)주 127)이 높은 어진 자에 해당하는 경우이겠는가.
고창군(高敞郡) 고사방(古砂坊) 수랑동(水浪洞) 안산(案山) 갑좌(甲坐) 언덕에 안장된 유인 부안 김씨는 문정공(文貞公) 지포(止浦) 선생 구(坵)와 충경공(忠景公) 익복(益福)의 후손이며, 평해(平海) 황 이재(黃頤齋) 선생 윤석(胤錫)의 손자며느리이며, 수촌(壽村) 처사(處士) 일한(一漢)의 맏며느리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나고 법도 있는 가문에 시집갔으니 안으로 받은 가르침과 밖으로 이룬 것이 진실로 자연히 보통과 차이가 있다. 단옹(檀翁) 수경(秀瓊)을 남편으로 삼고 회와(晦窩) 중섭(中燮)을 아들로 삼았으니 단옹이 덕을 숨기고 벼슬하지 않은 것과 회와가 집안일을 잘 맡아 다스리고 행실을 독실하게 한 것이 또한 어찌 내조(內助)에 힘입고 모의(母儀)가 이루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유인의 어짊을 더욱 알 수 있다.
태어난 날은 정조(正祖) 임인년(1782, 정조6) 3월 20일이고, 3세조는 계열(啓烈), 수극(壽極), 인감(仁鑑)이며, 외조부는 생원(生員)인 화순(和順) 최강우(崔綱宇)이며, 졸(卒)한 날은 헌종(憲宗) 을사년(1845, 헌종11) 6월 23일이다. 아들은 바로 중섭이고 딸은 전의(全義) 이봉년(李鳳年)에게 시집갔다. 병택(炳宅)은 외손자이다.
5세 적손(嫡孫)인 서구(瑞九)가 재종숙(再從叔) 건익(鍵翼)이 장차 표석(表石)을 세우려 하는 것 때문에 내가 유인의 동종(同宗)이라 하여 음기(陰記)을 부탁하는 한편 애초에 행적을 기록한 글이 없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내가 말하기를, "문제없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그 사람을 보지 못하면 그 벗을 본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보건대 유인의 그 법도가 매우 가까우니주 128) 어찌 다만 옛말과 같을 뿐이겠습니까. 인가(人家)에서 으레 부덕(婦德)이 지극하였다는 등의 말을 기록하는데 또 어찌 견주어 논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는 기록해 후세에 보여줄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27)
천작(天爵):천연(天然)의 작위라는 뜻으로 도덕을 수양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 때문에 천작이라고 한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인의와 충신을 지니고 선을 좋아하여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천작이고, 공경대부는 인작이다.[仁義忠信 樂善不倦 此天爵也 公卿大夫 此人爵也]"라고 하였다.
주석 128)
유인의……가까우니:《시경(詩經)》 〈빈풍(豳風) 벌가(伐柯)〉에 "도끼 자루를 벰이여, 도끼 자루를 벰이여. 그 법이 멀리 있지 않도다.[伐柯伐柯 其則不遠]"라고 하였는데, 본보기로 취할 수 있는 법칙, 기준 등이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유인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유인의 훌륭한 가족과 자손을 보면 유인의 훌륭함을 자연히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쓰였다.
孺人金氏墓表【甲申】
衛之詩人, 美莊姜之賢, 而曰: "齊侯子, 衛侯妻, 東宮妹, 邢侯姨。" 彼以爲爵位隆顯者, 親屬猶在所稱。况乎其屬在道德、文章、忠義、學行天爵尊之賢者乎?若高敞郡古砂坊水浪洞案山枕甲原所藏孺人扶安金氏, 文貞公、止浦先生坵, 忠景公益福之後, 平海黃頣齋先生胤錫之孫婦, 壽村處士一漢之冡婦。生乎名族, 入乎法門, 內而所受, 外而所成, 固自有異。以檀翁秀瓊爲夫, 晦窩中燮爲子, 檀翁之隱德不仕, 晦窩之克家篤行, 亦豈無內助之須、母儀之成? 其賢尤可知也。其生, 正祖壬寅三月二十日, 其三世, 啓烈、壽極、仁鑑, 外祖生員和順崔綱宇, 其卒, 憲宗乙巳六月二十三日, 其男卽中燮, 女適全義李鳳年, 炳宅, 其外孫。五世嫡孫瑞九, 以其再從叔鍵翼將樹表石, 謂余爲孺人同宗, 屬以記陰, 且以初無狀行文爲歉。余曰: "無傷也。古語云'不見其人, 見其友', 今見孺人之其則甚近, 豈但如古語已也? 而人家例狀婦德備至等語, 又何足比論哉? 是可以書之視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