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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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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표(墓表)
  • 효자 임공 묘표 갑술년(1934)(孝子林公墓表【甲戌】)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4 / 묘표(墓表)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4.0003.TXT.0007
효자 임공 묘표 갑술년(1934)
내가 보건대 성현이 효도를 일컬을 때에 덕을 수립하여 어버이를 현양하는 것으로 끝맺고 혼정신성하고 음식을 올리는 일은 어버이를 봉양하는 상례(常禮)로 삼았다. 어버이에게 병이 있으면 의원을 부르고 약을 맛보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있지만 허벅다리 살을 베어내거나 손가락을 찢어 피를 마시게 하라는 말은 없다. 당(唐)나라 때 허벅다리 살을 베어내 병든 어머니에게 올려 정려된 사람이 있었는데 한 문공(韓文公 한유(韓愈))가 〈호인대(鄠人對)〉주 53)를 지어 비판하였다. 그러나 "인육(人肉)으로 병을 치료한다."라는 진장기(陳藏器)주 54)의 말이 있고부터는 자식 된 자들이 의리의 정조(精粗)와 효험의 유무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말을 행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는데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효도라고 칭송하였다.
무릇 사람이 잘못으로 병기에 다쳐도 오히려 아연실색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법인데 스스로 자신의 살을 베어내면서도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았으니 어버이를 위하는 지극한 정이 아니라면 어찌 이렇게까지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이런 이름을 얻은 까닭이다. 비록 그렇지만 주자(朱子)는 이를 중도를 지나쳤다고 하고 또 "혹여 명예를 위하는 자도 있으니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하였으며, 율곡(栗谷) 선생은 "이런 행동은 상도(常道)가 아닐뿐더러 그 마음을 살피기도 어렵다. 반드시 편작(扁鵲)이나 화타(華佗) 같은 신의(神醫)가 나와 '이 병은 다른 사람의 피를 가져다 보충한 뒤에야 낫는다.'라고 하기를 기다려 그 자식이 행한다면 중도를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아주 지극하여 정론이 되기에 충분하다. 지금 효자 보안(保安) 임공 휘 상팔(相八), 자 내화(乃華)의 사적(事跡)과 행실을 보건대 진실로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다.
공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의 병이 심해지자 칼로 허벅다리를 베어내 삶아서 입에 흘려 넣어 3일 동안 회생하게 하였으니 어린아이였을 때 있었던 일이다. 이해를 따지는 세정(世情)의 사사로움이 없고 거짓 없이 순일한 마음을 간직하여 유명해지는 것이 선모할 만한 일인지 모르고 편작, 화타가 직접 지시한 것처럼 진장기의 말을 믿었으니, 공과 같은 사람은 율옹이 논한 말에 거의 합치될 만하여 감히 지적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공은 이 마음을 미루어 나가, 품팔이를 하여 아주 맛있는 음식으로 병든 어머니를 모시기를 수년 동안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장례를 치를 때는 슬픔을 다하고 힘을 다하였으니 이는 모두 억지로 하는 뜻이나 목적이 있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따뜻하고 시원하게 보살펴 드리는 것이 절도가 있었고 상제(喪制)를 잘 치렀으니 효성과 사랑이 천성이라는 사실을 더욱 알 수 있다. 어찌 이를 통해 그 세계(世系)를 논하지 않겠는가.
고려 때에는 서하공(西河公) 춘(春)주 55)【춘은 목(木) 자를 따른다.】이 문장과 절행(節行)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니주 56) 공은 그의 후손이다. 본조의 진사(進士) 우춘(遇春)이 9세조가 된다. 조부는 천경(天擎)이고, 부친은 훤(藼)이고, 모친은 무안 박씨(務安朴氏)이다. 공은 정묘(正廟) 을묘년(1795, 정조19)에 태어나 철묘(哲廟) 경신년(1860, 철종11)에 졸하였다. 부인은 부안 김씨(扶安金氏) 필상(弼相)의 따님으로 남편을 공손히 받드는 현명함이 있었다고 한다. 아들은 경희(敬熙)이고, 딸은 부안 김 아무개, 강릉(江陵) 유(劉) 아무개에게 시집갔다. 손자는 기행(基{日+幸}), 기승(基昇), 기경(基暻)이다. 장손의 양자는 철진(哲鎭)이고, 차손의 아들은 형진(馨鎭)이고, 삼손의 아들은, 철진은 양자로 나갔고, 옥진(玉鎭), 하진(河鎭), 복진(福鎭), 평진(平鎭)이다.
아, 공은 진실로 효자이고 효는 모든 행실의 근원이니 마땅히 그 효행처럼 공의 천성에서 나온 다른 많은 선행이 있었을 터인데 들을 수가 없다. 임철진이 오랜 세월 전할 글을 청하였는데, 내가 향사(鄕士)의 추천장에 근거하고 나의 견해로 판단하여 부풍(扶風) 보안방(保安坊) 덕산(德山) 기슭 간좌(艮坐) 묘소에 기록하게 하였다.
주석 53)
호인대(鄠人對):《한창려집(韓昌黎集)》 외집(外集) 권4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호인은 중국 섬서성(陝西省) 호현(鄠縣)에 사는 사람을 일컫는다. 호인이 어머니에게 허벅다리를 베어 먹여 병을 낫게 하였으나 자신은 죽었는데, 한유는 자식이 몸을 훼손하여 죽음에 이른 것은 효도가 아니라고 비판하였다.
주석 54)
진장기(陳藏器):당(唐)나라 때 사람으로 의술에 정통하였다. 《본초습유(本草拾遺)》를 지었는데 인육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말이 이 책에 보인다.
주석 55)
춘(春):서하의 이름은 '椿'이 맞다. 원문의 소주에서 오류를 밝혔으므로 원문대로 번역하였다.
주석 56)
알려졌으니:원문은 '嗚'이다. 문맥에 근거하여 '鳴'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孝子林公墓表【甲戌】
余觀聖賢稱孝, 究竟乎立德顯親, 而定省飮食爲養親常禮。至其有癠, 則有迎醫嘗藥之訓, 而無刲股裂指之語矣。唐時有剔股以奉母疾, 得旌其門者, 而韓文公作〈鄠人對〉而非之。然自有陳藏器"人肉療疾"之說, 爲人子者, 不暇思義之精粗、驗之有無, 而行之者滋多, 人皆同辭稱孝。夫人, 誤傷兵刃, 猶失色痛楚。乃自割其肉, 而不以爲痛, 非爲親至情, 曷能至此? 此所以得是名者。雖然, 朱子以此謂之過中, 又云: "容亦有爲名者, 稱人豈不難哉?" 栗谷先生曰: "此旣非常道, 又難以察其心。必待神醫如扁華者出, 曰'此疾取補他血, 然後乃瘳', 而其子行之, 則爲得中。" 此言備盡, 足爲定論。今見孝子保安林公相八乃華事行, 知其信然矣。公早喪父, 奉慈母盡誠, 及其疾革, 以刀刲股, 煎烹注口, 得回甦三日, 事在童年。無世情計較之私, 保純一無僞之心, 不知有名之可慕, 信之若扁華親指, 若公者庶可合於栗翁所論, 而人莫敢間然矣。推是心也, 其賃傭以極滋味侍疾, 而累年不懈, 送終而盡哀殫力, 皆非出强意與有爲。其在齠齔, 而溫凊有節, 能執喪制, 益知孝愛之天性也, 盍因是而論其世? 在麗而西河公春【從木】, 以文章節行嗚・(鳴)于世, 公其後也。本朝進士遇春爲九世祖。祖天擎, 考藼, 妣務安朴氏。生以正廟乙卯, 卒以哲廟庚申。配扶寧金氏, 弼相女, 有孟光擧案之賢云。子敬熙, 女扶寧金某、江陵劉某。孫基[日+幸]、基昇、基暻。長孫系男哲鎭, 次孫男馨鎭, 三孫男哲鎭出, 玉鎭、河鎭、福鎭、平鎭。噫! 公固孝子人, 孝爲百行源, 宜公他善多出天性, 有如其孝者, 而不可得而聞也。哲鎭謁以傳久之文, 余據鄕士薦狀, 而斷以己見, 俾書于扶風保安坊德山之麓艮坐之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