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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3
  • 묘갈명(墓碣銘)
  • 송은 김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松隱金公墓碣銘【幷序】)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3 / 묘갈명(墓碣銘)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3.0001.TXT.0014
송은 김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
지난 80년 전 을축년(1865)에 부안 유생 백홍진(白洪鎭) 등 39명의 사람들이 현감에게 효자 김공 휘 서각(瑞珏)의 행실을 기록하여 추천하였다. 그 글에서 "이와 같은 지극한 행실은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 후 10년이 지난 을해년(1965)에 전라도 유생 권우헌(權宇憲) 등 44명의 사람들이 또다시 도순사에게 천거하면서 '대단히 가상(嘉尙)하다'는 말을 하였다. 당시는 홍릉(洪陵, 고종)이 막 즉위하던 때라 공의(公議)가 아직까지는 존재하였으니, 유생들이 추천했던 문서와 글은 충분히 그 내용을 믿을 수 있다. 대개 공자가 대효(大孝)를 칭할 때 반드시 '덕은 성인'이라는 말주 66)로 본다면 이보다 아래인 효를 논할 때는 또한 마땅히 그 덕의 성취한 바를 따라 고하(高下)를 정하게 된다. 문서에서 기록한 바 '부모의 뜻과 존체를 봉양하고 장례와 제사를 예로써 지냈다.'는 것 이외에 또한 '《소학》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사물(四勿)과 삼성(三省)주 67)을 자신의 일로 삼았다'는 말에 의거하여 그가 성취한 것을 따져보면, 어찌 충분히 학문을 한 군자가 되지 않겠는가. 이로서 논하자면, 공은 한 가지 선에만 치우친 효가 아니라 이에 자신을 성취한 완전한 효주 68)라고 하겠다.
공의 자는 인서(寅瑞) 호는 송은(松隱)으로, 계보는 고려 평장사 문정공(文貞公) 지포(止浦) 선생 휘 구(坵)의 후손에서 나왔으며, 고려 말 충신 고부군사 휘 광서(光敘)의 13대손이며, 조선 유일(遺逸)로 참봉에 뽑힌 죽계(竹溪) 선생 휘 굉(鋐)의 7대손이다. 통훈대부 사복시정에 추증된 휘 참(墋)과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된 휘 시련(始鍊)과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추증된 휘 안택(安澤)이 그의 바로 위 삼대(三代)이다. 모친은 정부인에 추증된 동래 정씨 상철(相喆)의 따님이다.
공은 정조 경신년(1800) 8월 5일에 태어나 여든의 수를 누려 통정의 직급이 더해졌으며 후에 숭정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승급되었으며 위로 삼대에 벼슬이 추증되었다. 홍릉(洪陵, 고종) 정축년(1877) 10월 17일에 돌아가셔서 명당리 왼쪽 산기슭 묘좌(卯坐)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아내는 정부인으로, 덕수 이씨 노직(魯直)의 따님이다. 세 아들을 두었는데, 태석(泰錫)은 수를 누려 통정대부가 되었다. 홍석(泓錫)은 호가 송암(松菴)으로, 수를 누려 통정대부 좌승지가 되었다. 막내는 용석(庸錫)이다. 딸은 세 명인데, 해주 오윤방과 청주 한광섭에게 시집갔다. 손자는 네 명으로, 영기(永基)는 큰 아들에서 나왔고, 영철(永喆)은 둘째 아들에서 나왔으며, 영규(永奎)와 영풍(永豊)은 셋째 아들에서 나왔다. 외손은 여섯 명으로, 종노(鐘魯), 화녀(和汝), 영숙(和淑), 종손(鐘遜)은 오 서방에서 나왔고, 규석(圭錫)과 규룡(圭龍)은 한 서방에서 나왔다. 증손을 들어보면, 낙요(洛堯), 낙순(洛舜), 낙우(洛禹)는 영기에서 나왔다. 낙종(洛鍾), 낙성(洛成), 낙호(洛鎬), 낙준(洛俊), 낙진(洛辰)은 영철에서 나왔다. 낙춘(洛春), 낙무(洛武), 낙상(洛祥)은 영규에서 나왔다. 낙인(洛仁), 낙철(洛哲), 낙근(洛根)은 영풍에서 나왔다.
낙성과 낙춘이 나에게 비석에 새겨서 드러낼 묘도 문자를 부탁하였다. 공은 나의 고조와는 6촌 아우가 된다. 이미 공에 대해 익히 들었으며, 정의(情誼)상 마땅히 이 일을 맡아야 하기에 마침내 명을 짓는다.

태어나 남다른 자질을 지녔으니生有異質
참된 효가 하늘에서 내려졌구나誠孝根天
《소학》 한 책으로小學一書
평생 몸가짐을 하였으며生平律身
사물과 삼성으로四勿三省
증자와 안자를 자나 깨나 잊지 않고서寤寐曾顔
살아계시거나 돌아가시거나 부모를 섬길 때事親生死
오직 예를 따랐도다惟禮是循
집안에 아름다운 범절이 전해지니家垂懿範
조심하여 선조를 욕보이지 말라戒勿辱先
목이 마르듯 곤궁한 이를 구휼하니周窮如渴
인을 넓혀 타인에게 미쳤으며推仁及人
우아한 행동은 세상에 뛰어나行誼超世
사람들이 흠잡는 말을 하지 않누나人無間言
이에 많은 선비들이是爲多士
공정하게 글을 지어 올렸으니公正狀文
빗돌에 옮겨 새겨서移鑱于石
천년토록 길이 고하노라用詔千春
주석 66)공자가……말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7장에 공자가 이르기를 "순은 위대한 효자이셨도다. 덕은 성인이시고, 존귀함은 천자이시고, 부유하기로는 사해 안을 다 소유하시어, 오래도록 종묘의 향사를 받으시고, 자손이 오래도록 보호를 받게 되었느니라.[舜其大孝也與 德爲聖人 尊爲天子 富有四海之內 宗廟饗之 子孫保之]"라 하였다.
주석 67)사물(四勿)과 삼성(三省)
사물(四勿)은 안자(顔子)의 예가 아니면 보고 듣고 말하고 행하지 말라는 것을 가리키고, 삼성(三省)은 증자가 하루에 세 가지로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도모하는 데 진실되지 못하지는 않았는가? 벗과 사귀는데 믿음이 없지는 않았는가? 배운 것을 익히지 않은 것은 아닌가.' 등을 가리킨다.
주석 68)자신을 성취한 완전한 효
《공자가어》에서 공자가 애공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인인(仁人)은 사물의 이치에 지나치지 않게 하고 효자는 사물의 이치에 지나치지 않게 하니, 이 때문에 인인이 어버이를 섬기기를 하늘을 섬기는 것과 같게 하며 하늘을 섬기기를 어버이를 섬기는 것과 같게 합니다. 이 때문에 효자는 자기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松隱金公墓碣銘【幷序】
往在八十年前乙丑, 扶安儒生白洪鎭等三十九人, 狀薦孝子金公諱瑞珏于縣監.其題曰 : "似此至行, 可謂出類拔萃." 後十年乙亥, 全羅道儒生權宇憲等四十四人, 又薦于都巡使, 亦得極爲嘉尙之題.時在洪陵初服, 公議猶在, 是狀是題, 足爲信筆.蓋觀乎孔子稱大孝, 必以德爲聖人, 則下此而論孝, 亦當隨其德之所就而定高下也.據狀所書, '志體之養, 葬祭以禮'之外, 有'《小學》律己四勿三省爲己任'之語, 究其所就, 豈不足爲學問中君子人乎.以是論之, 公非一善之偏孝, 乃成身之全孝也.公字寅瑞號松隱, 系出高麗平章事文貞公止浦先生諱坵之後, 麗末忠臣古阜郡事諱光敘之十三世孫, 本朝逸選叅奉竹溪先生諱鋐之七世孫.贈通訓大夫司僕寺正諱墋, 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諱始鍊, 贈嘉善大夫戶曹參判諱安澤, 其三世也.妣, 贈貞夫人, 東萊鄭氏相喆女.公, 生以正廟庚申八月五日, 壽八十, 加通政階, 後陞崇政大夫同知中樞府事, 追贈三世, 卒于洪陵丁丑十月十七日, 葬于明堂里左麓卯坐原.配, 貞夫人, 德水李氏魯直女.男三人, 泰錫壽通政.泓錫號松菴壽通政左承旨.庸錫.女三人, 海州吳潤邦、淸州韓光變.孫四人, 永基長房出, 永喆次房出, 永奎、永豊三房出.外孫六人, 鐘魯、和汝、和淑、鐘遜, 吳出.圭錫、圭龍, 韓出.曾孫, 洛堯、洛舜、洛禹, 永基出.洛鍾、洛成、洛鎬、洛俊、洛辰, 永喆出.洛春、洛武、洛祥, 永奎出.洛仁、洛哲、洛根, 永豊出.洛成、洛春, 屬澤述以墓道顯刻之文.公於我高祖, 爲六從弟行, 旣稔聞, 誼當爲役, 遂爲之銘曰 : "生有異質, 誠孝根天.《小學》一書, 生平律身.四勿三省, 寤寐曾顔.事親生死, 惟禮是循.家垂懿範, 戒勿辱先.周窮如渴, 推仁及人.行誼超世, 人無間言.是爲多士, 公正狀文.移鑱于石, 用詔千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