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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상량문(上樑文)
- 정충사 유지에 강당을 중건하는 상량문【병자년(1936)】(旌忠祠遺址講堂重建上樑文【丙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상량문(上樑文)
정충사주 307) 유지에 강당을 중건하는 상량문【병자년(1936)】
삼가 생각하건대竊以
충성을 포양하고 현인을 높이는 의전(儀典)을 두는 것은褒忠尊賢之有儀
조정 선비들이 모두 옳다고 여기는 것이고,朝士間之通義
학업을 강론하고 익히는 장소를 정하는 것은講學肄業之定所
사원(祠院)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규약이니,祠院界之同規
지금 이곳 제향을 지내던 빈터에今此俎豆之墟
학사의 건립을 다시 보게 되었도다.重瞻黌舍之建
생각해보건대 옛날에 정충사를 처음 지은 것은念昔旌忠祠之創立
참으로 세 현인의 신위를 봉안한 것이니,寔是三賢位之奉安
충렬공(忠烈公) 송 선생주 308)은忠烈公宋先生
임진왜란 때 적의 예봉을 제일 먼저 맞닥뜨렸고,首當龍蛇之敵鋒
일찍이 살아남는 것과 의리를 분별하여주 309)早分熊魚之義
하늘이 감동할 정성으로 기운을 뻗쳤기에,秤天感誠而亘氣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으니異徵以見
참으로 장하도다 충성이여.忠固壯哉
선비들이 그 소문을 듣고 의기를 떨쳐서士聞風而奮義
유지(遺址)를 회복하였으니恢復有基
그 공 또한 훌륭하도다.功亦偉矣
무장공(武壯公) 신 선생주 310)은武壯公申先生
멧돼지 여우같은 왜놈들이 다시 침범할 때値豕狐之再獅
교룡주 311)의 외로운 성을 지켰는데,守蛟龍之孤城
옷과 치아를 집으로 보내고衣齒送家
이미 한번 죽기로 미리 정하였어라.已預定其一死
말가죽에 시체가 쌓여서 돌아왔으니馬革裹屍
과연 평생 원하던 바를 이루었도다.果遂願於平生
장무공(壯武公) 김 선생주 312)은壯武公金先生
붓을 내던지고 만 리의 거센 파도를 깨뜨리려 하여投筆而願破萬里濤
진나라 때의 종각(宗慤)주 313)이 되려는 뜻을 품었네.有懷晉代之宗慤
작은 몸으로 능히 나라의 한 지역의 방패가 되었으니殲身而能作一隅障
어찌 휴양의 장순주 314)에 뒤지랴.豈下睢陽之張巡
우리나라는 본래 강화와 항복이 없었다고 하였으니我國本無和與降
당당하도다 이 한 마디 말이여堂堂乎一言
이것이 천지 도리의 올바름이 되었네.是爲天經之正
한 가문에 효자와 충렬을 겸하였으니一門幷生孝且烈
빛나도다 삼강(三綱)이여赫赫乎三綱
가법이 엄한 것을 다시 보게 되었도다.更見家法之嚴
이 세 분은 모두 이 고을의 지령(地靈)을 받았으니是皆鍾玆鄕之地靈
참으로 함께 한 사원에서 배향을 받는 것이 마땅하네.允宜同一祠之享禮
임금께서 '정충사(旌忠祠)'란 세 글자 현판을 하사하시니九宸寵錫三字額
많은 선비들이 봄과 가을 두 번의 정일(丁日)에 분주히 내달렸건만,多士駿奔兩丁辰
대저 어찌하여 시간이 흐른다고 상황이 바뀌는가夫何時移勢殊
갑자기 훼철의 명령을 보게 되었어라.遽見撤毁之令
이 지역이 황폐해지고 물도 나오지 않아不忍地荒水廢
끝내 사라지리라는 탄식을 차마 견딜 수 없네.終歸湮沒之歎
비석의 기록은 건립 당시에 지어졌으니碑記成於當時
사적은 이미 실려 있네.蹟旣載矣
제단의 향사는 근래에 다시 행해졌으니壇祀行於近日
마음도 이제 괜찮을 것이라네.情或可焉
비록 영혼을 편안히 모시는 사원(祠院)을 복원하기는 어렵지만縱難復尊靈妥侑之祠
어찌 선비들이 강론하는 건물이 없을 수 있는가.豈可無士子講修之室
이에 뜻이 있는 자들이 爰有有志者
마음속의 계획을 경영하여,經綸心上圖
점차로 이루어졌나니見見成之
눈앞에 우뚝 솟았어라.突兀眼前
〈대장〉괘의 상사(象辭)주 315)가 벌여져서占大壯之象辭
이윽고 길한 건물을 만들었나니,已獲吉體
동지들의 의견을 물으매주 316)詢同人之謀議
마땅히 다른 말이 없도다.宜無異言
어찌하면 자본을 모을 것인가何爲本資
성의를 모아 유계(儒契)를 설립하였어라.積誠立於儒契
또한 약간의 도움이 되었으며亦有略助
고을 사람들이 감동하여 의연금을 내도다.感義出於鄕人
저 도끼질과 저 톱질이여斧彼鉅彼
목수에게 맡겨 훈수를 두지 말 것이라.任梓人自不須說
군자가 이곳에 오르고주 317) 이곳에 거처하니주 318)躋斯芋斯
마땅히 군자가 편안하게 지낼 것이라네.宜君子爰得其安
산천에 빛을 더하며光增山川
사방의 이목을 끌었네.四方之瞻聆聳動
거문고와 글 외는 소리 들으니聲聞弦誦
백 대의 풍운이 오래 전하리라.百世之風韻長存
이에 여섯 방향의 어영차 노래를 불러서肆唱六偉之歌
들보를 올리는 일에 기운을 내게 하노라.庸助修樑之擧
어영차 들보 동쪽에 떡을 던지세兒郞偉抛樑東
아침 해가 망제봉주 319)에 막 떠오르네.朝日初昇望帝峰
선생의 곧은 충정은 일편단심이니夫子貞忠心一片
참으로 붉어서 이 해와 같아라.也應正赤與斯同
어영차 들보 남쪽에 떡을 던지세兒郞偉抛樑南
한 굽이 초강주 320)이 빙 둘러 옷깃처럼 흐르네.一曲楚江還作襟
강을 끼고 그 당시엔 가까이 있었는데夾水當年居密邇
행인이 손으로 가리키며 가늘 걸음 멈추었지.行人指點駐征驂
어영차 들보 서쪽에 떡을 던지세兒郞偉抛樑西
두승산주 321)은 저쪽에 우뚝하여 하늘과 나란하네.斗山截彼與天齊
만일 천 길로 우뚝 설 뜻이 없었다면如無壁立千尋志
어떻게 이처럼 인을 이룰 수 있었을까.那得成仁若是兮
어영차 들보 북쪽에 떡을 던지세兒郞偉抛樑北
한성을 멀리 바라보니 아득하여 끝이 없네.漢城遙望渺無極
진령의 노래주 322)를 지었는데 무엇 하려 하는가榛苓歌作欲何爲
나의 그리움 아득하니 탄식이 이는구나.我思悠悠增嘆息
어영차 들보 위쪽에 떡을 던지세兒郞偉抛樑上
어찌하여 밤에 규성주 323)이 서광을 비추는가.何夜奎星瑞彩放
후생에게 말하노니 모름지기 노력할지라寄語後生須勉旃
천추에 다시 돌아오리니 내가 속이는 것이 아니라네.千秋必返我非誑
어영차 들보 아래에 떡을 던지세兒郞偉抛樑下
넘실거리며 흘러가는 새 물결을 어찌하랴.新潮其奈滔滔者
그대는 사당 안에 받들고 있는 이를 보라君看祠內所尊者
인륜과 삼강을 죽었어도 놓치 않았도다.爲是倫綱死不舍
삼가 바라건대伏願
들보를 올린 뒤에上樑之後
당우가 훼손됨이 없으며堂宇無恙
의관주 324)이 계속 전하기를.衣冠相傳
의와 인을 서로 권면하여課義責仁
전국에 풍교가 세워지며,樹風聲於全國
이전보다 빛나고 후대를 열어光前啓後
영원히 은택을 드리우기를.垂功澤於永年
- 주석 307)정충사(旌忠祠)
- 전라북도 정읍시 흑암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우로, 송상현(宋象賢)·신호(申浩)·김준(金浚) 등을 배향하고 있다. 1632년(인조 10) 창건되었으며, 1657년(효종 8)에 사액되었다.
- 주석 308)충렬공(忠烈公) 송 선생
- 송상현(宋象賢, 1551~1592)으로, 본관은 여산, 자는 덕구(德求), 호는 천곡(泉谷)이다.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있으면서, 결사의 의지로 군사를 이끌고 항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당하여 처형당하고 말았다.
- 주석 309)살아남는 것과 의리를 분별하여
- 맹자(孟子)는 "생선도 내가 바라는 바이고, 웅장(熊掌)도 내가 바라는 바이지만, 이 둘을 다 가질 수 없다면 생선을 버리고 웅장을 취하리라. 삶도 내가 바라는 바이고 의(義)도 내가 바라는 바이지만 이 둘을 다 가질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라고 하였다. 《孟子 告子上》
- 주석 310)무장공(武壯公) 신 선생
- 신호(申浩, 1539~1597)로,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언원(彦源)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교룡산성수어사(蛟龍山城守禦使)로 있다가 남원성(南原城)이 왜군에게 포위되자, 이를 구원하러 갔다가 전사하였다.
- 주석 311)교룡
- 남원시 신곡동 교룡산을 가리킨다.
- 주석 312)장무공(壯武公) 김 선생
- 김준(金浚, 15682~1627)으로,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징언(澄彦)이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군에게 안주성이 함락되자 처자와 함께 분신 자결하였다.
- 주석 313)붓을……뜻을 품었다
- 붓을 던진다는 것은 문(文)을 버리고 무(武)에 종사하는 것을 말하고, 종각(宗慤)은 유송(劉宋) 시대 사람인데, 그가 어렸을 때 한번은 그의 숙부가 그에게 장래의 포부를 묻자, 대답하기를, "거센 바람을 타고 만 리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이 소원입니다.〔願乘長風破萬里浪〕"라고 했던 바, 그가 뒤에 과연 진무장군(振武將軍)이 되어 큰 공훈을 세우고 조양후(洮陽侯)에 봉해졌던 데서 온 말이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붓을 던질 생각이 있으니, 종각의 거센 바람을 사모하노라.〔有懷投筆 慕宗慤之長風〕"고 하였다.
- 주석 314)휴양의 장순(張巡)
- 장순은 당나라 때 인물이다. 지덕(至德) 2년(757)에 안경서(安慶緒, 안녹산安禄山의 둘째아들)가 부장(部將) 윤자기(尹子琦)에게 반군 13만 명을 이끌고 강회(江淮) 휴양(睢陽)을 공격하도록 할 때 장순과 허원(許遠) 등 수천 명이 식량이 부족하고 외부의 원조도 없는 가운데 휴양(睢陽)을 사수했다. 수만 명의 적군을 죽이고, 반군의 남침을 막아내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 주석 315)〈대장〉괘의 상사(象辭)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서 "후세 성인이 궁실로 바꾸어서 위에는 들보를 얹고 아래에는 서까래를 얹어 풍우에 대비하였으니, 대장괘에서 취한 것이다.〔後世聖人 易之以宮室 上棟下宇 以待風雨 蓋取諸大壯〕"라고 한 말에서 뜻을 취하였다.
- 주석 316)동지들의 의견을 물으매
- 동인(同人)은 《주역》의 64괘(卦)의 하나이니, 사람이 서로 화동(和同)함을 뜻한다. 그 괘사(卦辭)에 "사람과 화동하되 들에서 하면 형통한다.[同人于野 亨]"는 말이 보이는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뜻을 같이하여 서원 건립에 협력하였다는 의미이다.
- 주석 317)이곳에 오르고
- 《시경》 〈사간(斯干)〉에서 집을 새로 지어 낙성식의 잔치를 벌이며 송축하면서 "새가 날아가듯 하며, 꿩이 나래 친 듯하니, 군자가 오르는 곳이로다.〔如鳥斯革 如翬斯飛 君子攸躋〕"라고 하였다.
- 주석 318)이곳에 거처하니
- 《시경(詩經)》 〈사간(斯干)〉에서 "비바람 들어오지 않고 새나 쥐가 없어진 집 바로 군자의 거처로다.[風雨攸除 鳥鼠攸去 君子攸芋]"라고 하였다.
- 주석 319)망제봉
- 정읍시 덕천면 암제리에 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 주석 320)초강
- 정읍 초강리 칠섭천을 가리키는 듯하다.
- 주석 321)두승산
- 정읍 고부에 있는 산이다.
- 주석 322)진령의 노래
- 개암나무와 감초(甘草)로 《시경》 〈패풍(邶風) 간혜(簡兮)〉에 "산에는 개암나무가 있고 습지에는 감초가 있네. 누구를 그리워하는가 서방의 미인이로다. 저 미인이여 서방의 미인이로다.[山有榛 隰有苓 云誰之思 西方美人 彼美人兮 西方之人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세 선생을 비유한 말로 쓰였다.
- 주석 323)규성
- 이십팔수(二十八宿) 가운데 열다섯째 별자리에 있는 별이다. 굴곡이 문자 획과 비슷해 문운(文運)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이것이 밝으면 천하가 태평하다고 전한다.
- 주석 324)의관
- 세 선생의 의관을 보관하는 사당으로 영원히 전해지길 바란다는 의미이다.
旌忠祠遺址講堂重建上樑文【丙子】
竊以褒忠尊賢之有儀, 朝士間之通義.講學肄業之定所, 祠院界之同規.今此俎豆之墟, 重瞻黌舍之建.念昔旌忠祠之創立, 寔是三賢位之奉安.忠烈公宋先生, 首當龍蛇之敵鋒.早分熊魚之義, 秤天感誠而亘氣.異徵以見, 忠固壯哉.士聞風而奮義, 恢復有基, 功亦偉矣.武壯公申先生, 値豕狐之再獅, 守蛟龍之孤城.衣齒送家, 己預定其一死.馬革裹屍, 果遂願於平生.壯武公金先生, 投筆而願破萬里濤, 有懷晉代之宗慤.殲身而能作一隅障, 豈下睢陽之張巡.我國本無和與降, 堂堂乎一言, 是爲天經之正.一門幷生孝且烈, 赫赫乎三綱, 更見家法之嚴.是皆鍾玆鄕之地靈, 允宜同一祠之享禮.九宸寵錫三字額, 多士駿奔兩丁辰.夫何時移勢殊, 遽見撤毁之令.不忍地荒水廢, 終歸湮沒之歎.碑記成於當時, 蹟旣載矣.壇祀行於近日, 情或可焉.縱難復尊靈妥侑之祠, 豈可無士子講修之室.爰有有志者經綸, 心上圖見見成之.突兀眼前, 占〈大壯〉之象辭.已獲吉體, 詢同人之謀議.宜無異言, 何爲本資.積誠立於儒契, 亦有略助.感義出於鄕人, 斧彼鉅彼.任梓人自不須說, 躋斯芋斯, 宜君子爰得其安.光增山川, 四方之瞻聆聳動.聲聞弦誦, 百世之風韻長存.肆唱六偉之歌, 庸助修樑之擧.
兒郞偉抛樑東, 朝日初昇望帝峰.夫子貞忠心一片, 也應正赤與斯同.
兒郞偉抛樑南, 一曲楚江還作襟.夾水當年居密邇, 行人指點駐征驂.
兒郞偉抛樑西, 斗山截彼與天齊.如無壁立千尋志, 那得成仁若是兮.
兒郞偉抛樑北, 漢城遙望渺無極.榛苓歌作欲何爲, 我思悠悠增嘆息.
兒郞偉抛樑上, 何夜奎星瑞彩放.寄語後生須勉旃, 千秋必返我非誑.
兒郞偉抛樑下, 新潮其奈滔滔者.君看祠內所尊者, 爲是倫綱死不舍.
伏願上樑之後, 堂宇無恙, 衣冠相傳.課義責仁, 樹風聲於全國.光前啓後, 垂功澤於永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