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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고축문(告祝文)
  • 비양사에 춘우정 김공을 봉안할 때의 축문【을유년(1945)】(泌陽祠春雨亭金公奉安祝文【乙酉】)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고축문(告祝文)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2.0002.TXT.0012
비양사에 춘우정 김공주 287)을 봉안할 때의 축문【을유년(1945)】
빛나고 빛나는 매옹주 288)은 赫赫梅翁
사문의 맹종이요 斯文盟宗
빼어난 인산주 289)은 仁山有卓
고족주 290) 가운데에 나열되었다오 列高足中
누가 인의 단서를 이었는가 孰繼仁緖
춘우정이 있으니春雨有亭
순수하고 바름은 전수받은 것이요 純正淵源
온화하고 돈후함은 품부 받은 것이라네 和厚稟生
의방주 291)은 연원이 있으니 義方有自
현인인 성은주 292)으로부터였고 城隱其賢
세덕을 미루어 거슬러 올라가 보면 推溯世德
월봉주 293)과 명천주 294)이 있다네 月峯鳴川
학문은 충신을 주장하고 學主忠信
마음은 성경을 오로지하여 心專誠敬
정성스레 지키고 拳拳其守
부지런히 공부하였네 孜孜其程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는 눕지 않았으니 見天不臥
홀로 있을 때를 삼감이 지극하였고 至哉謹獨
도둑을 불쌍히 여겨 사다리를 구해다 놓으니 矜盜覓梯
인이 충족되었도다 仁用充足
실행하지 못했으면 다른 말을 들을까 두려워하였으니 未行恐聞
계로가 이와 같은 뜻을 지녔고주 295)季路同志
아무리 무식하여도 또한 가르쳐주었으니 空空亦敎
공자도 이미 하신 일이라네주 296)宣尼已事
지금의 학문을 끊고 하지 않으며 絶今不爲
오직 옛 도와 똑같이 하려 하였네 惟古是同
존왕양이주 297)를 엄하게 하니尊攘其嚴
춘추대의가 높아졌다네 春秋義隆
평생의 학문이 蓋生平學
인의에 있었으니 在乎仁義
평상시이거나 변고가 생겼을 때이거나 于常于變
어찌 혹시라도 떠났겠는가 豈其或離
사직에 지붕이 설치되었을 때주 298)에 逮夫屋社
충분이 들끓어 올랐으니 忠憤炳炳
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몸을 깨끗이 하여歸潔有道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뜻을 바쳤네주 299)一心獻靖
어찌 저 원수 같은 금나라는 夫何讐金
온갖 방법으로 으르고 더럽혀서 脅汙百端
물리치고 물에 던지더니牢却投水
마침내는 뭇 산들을 무너뜨리는가竟隕群山
의대에 찬을 남겨 衣帶有贊
문문산과 궤적을 함께하였으니同轍文文
그 인을 이루고 의를 취한 것이 其所成取
고인에 부끄럽지 않도다주 300) 不愧古人
풍성이 이르는 곳마다 風聲攸曁
사림들에게 광채가 더해지니 光增士林
그 의열을 사모하는 것은주 301)羹墻義烈
삼십년 지난 지금도 여전한다네 卅載餘今
마침내 하늘이 뉘우침에 屬玆天悔
큰 원수를 몰아내었으니 驅逐鉅讐
오랑캐주 302)들이 깨끗이 腥塵掃淸
나라 안 여러 고을에서 사라졌도다 環海列州
태산이 있는 고을이라 泰山之鄕
선생을 제사지낼 만하니 先生可祭
학문으로 보나 절의로 보나 以學以節
누가 다시 이견을 세우겠는가 孰復立異
사우가 완성되자 祠宇旣成
오르내리며 퍼져 숙연하게 하는지라주 303) 陟降悽焄
제기들을 문서로써 바루느라주 304) 籩豆簿正
유자주 305)들은 재빠르게 달려 다니네 章縫駿奔
무성의 이웃이요 武城之隣
비수의 북쪽이로다 泌水之陽
정일의 제사에 어그러짐이 없으니 丁禋莫愆
영원토록 향기로우리라 永世芬芳
주석 287)춘우정(春雨亭) 김공(金公)
김영상(金永相, 1836~1911.)로, 춘우정은 그의 호이다. 자는 승여(昇如), 초명은 김영조(金永朝), 본관은 도강(道康)으로, 일제 강점기의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주석 288)매옹(梅翁)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1776~1852)을 가리킨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백응(伯應)ㆍ백림(伯臨),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 《매산집(梅山集)》이 있다.
주석 289)인산(仁山)
소휘면(蘇輝冕, 1814~1889)으로, 인산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순여(純汝), 시호는 문양(文良)이다. 나이 9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엄한 훈육과 할아버지인 수구(洙榘)에게 학업을 닦았으며, 20세 이전에 문명을 떨쳤다. 뒤에 홍직필(洪直弼)을 사사하였다. 1858년(철종9) 도백(道伯)에 의해 학행으로 천거되었고 1881년(고종18) 선공감 가감역, 전설시 별제(典設寺別提)에 제수되었다. 그 뒤 전라도사로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아니하고 1882년 사헌부 지평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취임하지 않고 오직 후배들을 교육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인산집(仁山集)》 17권이 있다.
주석 290)고족(高足)
품행(品行)과 학식이 우수한 문인(門人)이나 제자를 의미한다.
주석 291)의방(義方)
올바른 도리로 자식을 가르치는 것으로, 가정교육을 의미하기도 한다. 춘추 시대 위(衛)나라 장공(莊公)의 아들 주우(州吁)가 오만 방자하게 굴자, 석작(石碏)이 장공에게 충간(忠諫)한 말 가운데 "아들을 사랑한다면 그에게 올바른 도리로 가도록 가르쳐서 잘못된 곳으로 빠져 들지 않게 해야 한다.[愛子, 敎之以義方, 弗納於邪.]"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氏傳 隱公3年》
주석 292)성은(城隱)
춘우당의 아버지인 김경흠(金景欽, 1815~1880)으로, 성은(城隱)은 그의 호이다. 자는 덕현(德玄)이다. 무성서원(武城書院)에 배향되었다.
주석 293)월봉(月峯)
춘우당의 9대조 김대립(金大立, 1550~미상)으로, 월봉(月峯)은 그의 호이다. 자는 신부(信夫)이다.
주석 294)명천(鳴川)
춘우당의 8대조 김관(金灌, 1575~1635)으로, 명천(鳴川)은 그의 호이다. 자는 옥이(沃而)이다.
주석 295)실행하지……지녔고
계로(季路)는 자로의 자이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자로는 좋은 말을 듣고 아직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으면 행여 다른 말을 들을까 두려워하였다.[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296)아무리……일이라네
《논어》 〈자한〉에 공자가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지만 비루한 사람이 나에게 묻되 그가 아무리 무식하다 하더라도 나는 그 양단을 들어서 다 말해주노라.[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297)존왕양이(尊王攘夷)
왕실(王室)을 높이고 이적(夷狄)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공자가 《춘추(春秋)》를 저술할 때 이 원칙에 입각하였으므로, 이를 춘추대의(春秋大義)라고 한다.
주석 298)사직에……때
패망한 나라의 사직(社稷)에 지붕[屋]을 설치하여 천지의 기운이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 "천자의 대사(大社)에 지붕을 덮지 않아 서리ㆍ이슬ㆍ바람ㆍ비를 직접 맞게 하는 것은 천지의 기운이 서로 통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망한 나라의 사직에는 지붕을 만들어 하늘의 양기를 받지 못하게 한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299)자신의 뜻을 바쳤네
원문의 '헌정(獻靖)'은 《서경》 〈상서(商書) 미자(微子)〉에, 은(殷)나라 태사(太師)인 기자(箕子)가 주(紂)의 서형(庶兄)인 미자에게 "스스로 분의에 편안하여 각자 스스로 그 뜻이 선왕에게 전달되면 됩니다. 저는 떠나가 은둔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겠다.[自靖, 人自獻于先王, 我不顧行遯.]"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이른다.
주석 300)의대(衣帶)에……않도다
문문산(文文山)은 송(宋) 나라의 문천상(文天祥)으로, 문산(文山)은 그의 호이다. 문천상이 47세의 나이로 형벌을 받아 죽게 되었을 때에 띠에 찬(贊)을 남겼는데, 그 찬에 "공자께서는 인(仁)을 이루라고 하였고, 맹자께서는 의(義)를 취하라고 하였네. 생각건대 의를 다하면 인은 이르는 것이다. 성현들의 글을 읽고 배운 바가 무슨 일인가. 지금에나 이후에나 거의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孔曰成仁, 孟曰取義. 惟其義盡, 所以仁至. 讀聖賢書, 所學何事. 而今而後, 庶幾無愧.]"라고 하였다. 《宋史 卷418 文天祥列傳》
주석 301)사모하는 것은
원문은 '갱장(羹墻)'인데, 이는 국과 담장을 보기만 하여도 사모하는 마음이 든다는 말로 돌아가신 선왕이나 현인을 경모(敬慕)하고 추념(追念)함을 의미한다. 《후한서(後漢書)》 권63 〈이고열전(李固列傳)〉에 "옛적에 요 임금이 돌아가신 뒤에 순 임금이 3년 동안 우러러 그리워하여 앉으면 담장에서 요 임금을 보았고, 밥을 먹으면 국에서 요 임금을 보았습니다.[昔堯殂之後, 舜仰慕三年, 坐則見堯於墻, 食則睹堯於羹.]"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302)오랑캐
원문의 '성진(腥塵)'은 누린내 나고 더럽다는 말로 청나라 오랑캐를 가리킨 것이다.
주석 303)오르내리며……하는지라
귀신의 기(氣)를 형용한 것이다. 《예기(禮記)》 〈제의(祭義)〉에 "그 기운이 발산하여 위로 날아 올라가서, 소명하고 훈호하고 처창함이 된다.[其氣發揚于上, 爲昭明焄蒿悽愴.]"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해설에 "귀신이 밝게 드러나는 것이 소명이고, 그 기운이 위로 퍼져 올라가는 것이 훈호이고, 사람의 정신을 오싹하게 하는 것이 처창이다.[鬼神之露光處是昭明, 其氣蒸上處是焄蒿, 使人精神竦動處是悽愴.]"라고 하였다.
주석 304)제기들을 문서로써 바루느라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공자께서 먼저 문서상으로 제기에 올릴 제수를 분명히 정하여 바로잡음으로써, 공급하기 어려운 사방의 귀중한 물품들을 문서상으로 분명히 정하여 바로잡은 제기에 올리지 못하게 하셨다.[孔子先簿正祭器, 不以四方之食, 供簿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305)유자들
원문의 '장봉(章縫)'은 장보봉액(章甫縫掖)'의 줄임말로, 유자(儒者)로서의 지위, 곧 유자를 이른다. 《예기》 〈유행(儒行)〉에 "저는 어려서 노나라에 살 때에는 봉액의 옷을 입었고, 장성하여 송나라에 살 때에는 장보의 관을 썼습니다.[丘少居魯, 衣縫掖之衣, 長居宋, 冠章甫之冠.]"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泌陽祠春雨亭金公奉安祝文【乙酉】
赫赫梅翁, 斯文盟宗, 仁山有卓, 列高足中.孰繼仁緖, 春雨有亭, 純正淵源, 和厚稟生.義方有自, 城隱其賢, 推溯世德, 月峯、嗚川.學主忠信, 心專誠敬, 拳拳其守, 孜孜其程.見天不臥, 至哉謹獨, 矜盜覓梯, 仁用充足.未行恐聞, 季路同志, 空空亦敎.宣尼己事.絶今不爲, 惟古是同, 尊攘其嚴, 春秋義隆.蓋生平學, 在乎仁義, 于常于變, 豈其或離.逮夫屋 社, 忠憤炳炳, 歸潔有道, 一心獻靖.夫何讐金, 脅汙百端, 牢却投水, 竟隕群山.衣帶有贊, 同轍文文, 其所成取, 不愧古人.風聲攸曁, 光增士林, 羹墻義烈, 卅載餘今.屬玆天悔, 驅逐鉅讐, 腥塵掃淸, 環海列州.泰山之鄕, 先生可祭, 以學以節, 孰復立異.祠宇旣成, 陟降悽焄, 籩豆簿正, 章縫駿奔.武城之隣, 泌水之陽, 丁禋莫愆, 永世芬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