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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고축문(告祝文)
- 선비의 묘에 고하는 글(告先妣墓文)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고축문(告祝文)
선비의 묘에 고하는 글
유세차 병인년(1926) 11월 무진삭(戊辰朔) 18일 을유일(乙酉日) 남지(南至 동지(冬至))에 효자 택술은 삼가 과일을 갖추어 놓고 현비 유인 최씨의 권조(權厝)주 200)한 묘소에 다음과 같이 곡하며 고합니다.
오호라! 효경(孝敬)과 덕선(德善)을 지닌 우리 선비에 대해 하늘은 반드시 살펴보았을 것이고, 신께서는 응당 들어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생전에 한 평생 동안 마음에 괴롭고 생각에 걸리며주 201) 부지런히 애쓰도록 하였으니, 죽어서는 만세토록 유택(幽宅)에서 편안히 자리 잡고 계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마침내 임시로 합부(合祔)하여 편안하지 못하게 하고 허둥지둥하다가 자리를 잘못 잡아 이미 매장한 것을 곧바로 옮기도록 하는 것입니까. 하늘은 기필할 수 없고 신도 믿기 어려운 것, 이것이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입니까. 오호라! 애통합니다. 하늘은 기필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신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불초하고 효성스럽지 못한 제가 쌓은 악행이 위로 포개져 도달한 결과일 것입니다. 일이 예측하지 못한 데에서 나와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지라,주 202) 자갈에 뒤덮이고 풍우도 가리지 못한 채로 둔 지가 이제 8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는 것부터 거처하고 왕래하며 관례와 혼례를 행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인사(人事)를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 행세하고 있으니, 이다지도 불초한 저는 미련하고 모집니다. 다만 아주 조금의 아직 사라지지 않은 떳떳한 본성이 있어 오장(五臟)주 203)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타들어가고 두 다리는 묫자리를 찾느라 온 산을 미친 듯이 내달립니다. 그러나 완전히 미련하고 모진 사람이 약간의 양심(良心)이 있다한들 어찌 이룸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러나 하늘이 살펴보고 신이 들어주는 것은 그러할 이치가 없다면야 그만이지만, 만일 있다면 효경(孝敬)한 선비(先妣)를 살피지 않고 누구를 살피겠으며, 덕선(德善)한 선비에 대해 듣지 않고 누구에 대해 듣겠습니까. 그 정천(定天)과 정신(正神)이 저의 불초함과 불효함 때문에 끝내 선비를 돕지 않지는 않을 줄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다만 아직 일을 이루기 전이기에 이 마음이 애타고 근심스러워 하루가 삼추(三秋)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처럼 천시(天時)가 바뀌고 일양(一陽)이 벌써 생겨나는 때가 되었는지라주 204) 세월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주 205) 애통하고 사모함이 더욱 새로워 마음을 스스로 가눌 수가 없기에 삼가 저의 심정을 쏟아냅니다. 삼가 존령께서는 살펴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 주석 200)권조(權厝)
- 좋은 묏자리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매장하는 것이다. 권폄(權窆), 또는 중폄(中窆)이라고도 한다.
- 주석 201)마음에……걸리며
- 원문의 '곤횡(困衡)'은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마음에 괴롭고 생각에 걸린 뒤에 분발하며, 얼굴빛에 징험되고 음성에 나타난 뒤에 깨닫는다.[困於心, 衡於慮而後作, 徵於色, 發於聲而後喩.]"라고 한데서 온 말이다.
- 주석 202)나아갈……없는지라
- 《시경(詩經)》 〈상유(桑柔)〉에 "붕우들이 이미 참소하여 서로 선하게 하지 않도다. 사람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다고 하는구나.[朋友已譖, 不胥以穀, 人亦有言, 進退維谷.]"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주석 203)오장(五臟)
- 원문의 '오내(五內)'는 우리 몸의 다섯 가지 장기(臟器)인 오장을 이른다.
- 주석 204)일양(一陽)이……되었는지라
- 동지(冬至)에 양기(陽氣)가 처음으로 발동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그러므로 동지를 일양이라고도 한다. 《주역(周易)》 〈복괘(復卦)〉에 11월은 복괘(復卦)에 해당되어 일양이 맨 밑에서 생긴다고 하였다. 참고로, 그 소(疏)에 "동지에 일양이 생긴다.[冬至一陽生.]"라고 하였다.
- 주석 205)세월이……않으니
- 《논어》 〈양화(陽貨)〉에 "해와 달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지라. 세월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구나.[日月逝矣, 歲不我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告先妣墓文
維歲次丙寅十一月戊辰朔十八日乙酉日南至, 孝子澤述, 謹具果物, 哭告于顯妣孺人崔氏權厝之墓.嗚呼! 我先妣之孝敬德善, 天必鑑, 只神應聽之.生而使之困衡勤苦於一世, 沒可使之安定幽宅於萬齡, 胡乃權祔未得安寧, 倉卒錯占, 旣厝旋移.天不可必, 神難諶斯者, 乃至於此乎.嗚呼痛哉.非天之不可必, 非神之不可諶, 乃不肖不孝之積惡, 上累而到之也.事出不意, 進退維谷.薄掩乎石田風市之中者, 于玆八朔.猶且飢打食困打眠, 以至居處往還, 冠昏祭祀, 凡干人事, 無不自同平人, 若是乎不肖之頑忍也.但其一點秉彛之未泯, 五內幾焚於一日, 雙脚亂走乎萬山.然十分頑忍, 一分良心, 奚足以有成.雖然天鑑神聽, 無其理則己 ; 苟有之, 不於先妣之孝敬而何鑑, 不於先妣之德善而何聽.吾知其定天正神, 不因不肖不孝而終不佑於先妣也.惟是未遂之前, 此心焦悶, 一日三秋.遽玆天時改移, 一陽已生, 歲不我與.痛慕益新, 情不自已, 謹寫厥衷.伏惟尊靈, 庶垂鑑諒.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