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 국역/표점
  • 국역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제문(祭文)
  • 종숙모 우씨께 올리는 제문(祭從叔母禹氏文)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제문(祭文)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2.0001.TXT.0033
종숙모 우씨주 181)께 올리는 제문
유세차 임신년(1932, 대한민국14) 정월 정유삭(丁酉朔) 15일 신해날, 종질 김택술은 삼가 제물을 갖추고 보름 제사의 제물과 제문을 갖추어 종숙모 유인 우씨의 영령께 곡하며 아룁니다.
아아!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부유함과 가난함, 장수와 요절, 즐거움과 괴로움, 번성과 쇠퇴가 비록 나란히 같을 수는 없지만, 등락과 기복이 함께 섞여 있으며 한편만으로 치우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종숙모님은 그토록 외로이 춥고 굶주리며 온갖 고생을 한 몸에 다 겪으시다가 끝내는 칠십 고령에 아들을 곡한 후 손자도 없이 돌아가신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이른바 장수의 복이라는 것이 바로 지극한 고통의 까닭이 된 것이니, 참으로 슬픕니다. 비록 그렇지만, 평생토록 가난을 겪으면서도 청렴함이 얼음처럼 맑았고, 중년에 남편을 여의시고는 곧은 절개가 옥처럼 고결하였으며, 조심조심 말씀이 없으면서 몸가짐을 삼갔고, 다친 사람 보듯 따뜻한 눈으로 남을 대하며 인애(仁愛)를 행하셨으니, 이는 바로 옛적에 이른바 현철하고 아름다운 부인이 아니겠습니까?
처음 유인께서 우리 집 가까이 사신 것은 내 나이 열 한 살 때였는데, 우리 할머님을 모시면서는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공경하고, 나의 어머님과는 나쁜 말 없이 사이가 좋으셨는데 그 이십 년이 하루 같았습니다. 이것으로 젊은 날에 시부모께 효성스럽고 동서 사이에 화목하신 사실을 알았고 평소 마음에 감복하였습니다.
아아! 유인(孺人)의 아름다운 덕이 이미 이와 같았으니, 하늘이 도와 상서로운 복을 내렸어야 마땅한데, 그런데 거꾸로 이처럼 말살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옛날의 좋은 말씀 중에, 내 몸이 수고하면 큰 명예를 얻고, 조상의 복지으면 자손이 보답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인(孺人)의 경우에는 궁벽한 시골에 살았고 대 이을 자손도 두지 못하셔서, 명예도 보답도 다 가망이 없으니, 이것은 또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끝내 기어이 말하자면 한 가지를 말할 수 있으니, 우주 기운의 운수에 잘못 붙잡혀서 한없는 어려움과 아픔을 생전에 겪은 것은, 단지 한 때의 재앙일 뿐입니다. 어둡지 않은 영령이 위로는 신명(神明)과 나란히 하며, 상제(上帝)의 궁궐에서 옥으로 만든 방을 날아다니신다면, 이 어찌 무궁한 청복(淸福)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의 의혹을 풀어주고 숙모님 영령을 위로할 만한 것이 혹시 거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아아, 슬프도다. 부디 흠향하소서!
주석 181)종숙모 우씨(禹氏)
종숙부 김낙동(金洛東, 1858~1905, 자 운화(雲和))의 부인인 단양우씨로서 생몰년은 1861~1931이며, 그 부친은 우관진(禹寬鎭), 조부는 우재옥(禹在玉)이다.
祭從叔母禹氏文
維歲次壬申元月丁酉朔十五日辛亥, 從姪澤述謹具望奠爲文, 哭告于從叔母孺人禹氏之靈, 曰: 嗚呼! 人生於世, 貧富壽夭, 苦樂盛衰, 雖不能齊, 亦互有乘除倚伏而不偏, 孰有如吾從叔母之凍餓惸寡, 困苦百端幷萃一身, 卒以七耋殘齡哭子無孫而沒耶? 然則其所謂壽福者, 適所以苦之絶, 可悲也。 雖然, 平生食貧而廉介氷淸, 中年晝哭而貞節玉潔, 兢兢然言不出口, 持身之謹, 煦煦然視物如傷, 愛人之仁, 此非古所謂哲媛者耶? 始孺人之接隣余屋也, 余年十一, 見其事吾祖母, 敬無違志, 與吾母善無間言, 二十年如一日。 因此知其少日孝舅姑和妯娌之實, 而素所感服者。 嗚呼! 孺人之懿德旣如此, 宜其爲天所佑降以福祥, 顧若是抹摋者, 何也? 昔之善喩者有身困名顯, 不食報後之說。 若孺人則生於窮鄕, 子姓無傳, 幷無名報之可望, 此又何說? 無已則有一焉, 其爲氣數所拘而受無限困瘁於生前者, 一時之厄也。 不昧之靈, 上而與神明爲伍, 翶翔於淸都玉房, 則豈非無窮期之淸福, 足以解人惑而慰尊靈者, 其或在斯歟? 嗚呼, 悲夫! 尙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