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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제문(祭文)
- 큰고모께 올리는 제문(祭伯姑文)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제문(祭文)
큰고모주 179)께 올리는 제문
유세차 을축년(1925) 4월 정축삭(丁丑朔) 23일 기해날, 유인 김씨의 영연(靈筵)을 철거하는 날입니다. 그 하루 앞에 조카 김택술(金澤述)이 삼가 과일과 포를 갖추고 글을 지어 고모님을 곡하며 말합니다.
아아, 우리 고모님의 단정한 행실, 정결한 용모, 깨끗한 지조로써 검소하게 가난을 견디며 예순 해를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타고난 성정은 그리도 넉넉하였건만, 받은 복록은 어찌 그리 인색하였단 말입니까? 분수를 편안히 여기고 근심걱정 않는 것은 관 쓴 남자도 어려운데, 하물며 여자이겠습니까? 공경과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봉양하여 비록 나물국의 일상 식사 때도 반드시 따로 차려서 올리셨습니다. 이따금 손님은 구름처럼 찾아오고 곳간은 텅 비어 있었는데, 그래도 온갖 방법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시아버지의 뜻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늘 친정어머니를 뵈러 오며 계절의 안부를 여쭈었고, 반드시 음식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선친의 제삿날이면 미리 보관해 둔 밤과 감을 보내셨는데, 정해진 임무로 여기셨습니다. 모든 이런 일은 몹시 가난한 형편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부인의 도리와 자식의 직분 두 가지를 다 해냈습니다. 옛일에 견주자면 참으로 여사(女士)의 유풍(流風)입니다.
아아!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늘 형제가 드문 것을 한스러워하시며 나의 고모님을 큰형님처럼 섬기셨고, 고모님도 또한 나의 아버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셨으니, 아마도 남의 오누이 사이와는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족한 나 또한 돌아가신 아버님의 마음을 몸받아 나의 고모님을 큰아버지처럼 존경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살림 형편이 매우 나빠져서, 탈 없으신 날에 한번도 정성스런 음식을 올려드리지 못하였고, 멀리 나가 객지 생활을 한 까닭에 장례를 치를 적에도 달려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이른바 돌아가신 아버님의 뜻을 몸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지은 죄를 생각하면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아아! 콩죽과 지게미를 먹으며, 고모님은 평생을 고생만 실컷 하셨습니다. 아, 그런데도 저 망극한 궁귀(窮鬼)는 무슨 심보로 길이 떠나신 고모님의 처량한 영위를 백리 타향에 있게 하였습니다. 하늘의 보답이 어찌하여 이렇게 너무도 잘못 되었단 말입니까! 이제 다만 아들이 현명하고 효성스러워 손자와 증손까지 이제 번성하여, 줄지 않는 보응(報應)주 180)이 장차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아아, 슬프도다. 부디 흠향하소서!
- 주석 179)큰고모
- 족보에 의하면 큰고모의 남편은 광산김씨 김재호(金在浩)이며, 시아버지는 김기태(金箕台)이다.
- 주석 180)줄지 않는 보응(報應)
- 조상의 음덕으로 자손이 대대로 다 잘 되며 대를 거듭해도 줄지 않는 보응(報應)을 말하는데, 원문은 '불식지보(不食之報)'이다.
祭伯姑文
維歲次乙丑四月丁丑朔二十三日己亥, 孺人金氏撤靈之期也。 前一日, 姪澤述謹具果脯操文而哭之, 曰: 嗚呼! 我姑以端一之行、潔靜之容、廉介之操, 食貧處約六十年所而沒。 稟之性者何豊, 而賦之祿者何嗇? 安其分而不戚戚, 冠珮者之猶難, 而况於巾幗中乎? 奉尊章以誠敬, 雖菜醬常饌, 必別設而進之。 有時賓客如雲, 室若懸磬, 而百方供具以悅舅志。 每歸寧于母, 及時節侯問, 必以食物隨之。 値先忌, 豫儲柿栗而送之, 課以爲常。 此又皆貧窶之所難能, 而婦道子職之兩盡也。 求之於古, 信其爲女士之流也。 嗚呼! 先君常以終鮮爲恨, 事我姑如伯兄, 我姑之於先君, 亦愛重之至, 蓋有異乎人之姊弟矣。 不肖亦體先君之心, 視我姑有若世父之尊, 而自失怙以來, 調度殘敗, 未嘗進一味之誠於無恙之日, 旅食遠方, 又未奔趨於斂葬之時, 安在其所謂體先君者哉! 自分咎罪, 措躬無地。 嗚呼! 啜菽厭糠, 我姑之飽喫困艱於生平者, 而噫彼窮鬼, 猶甘心於永逝之後, 百里他鄕靈幃凄凉, 天之報施何如是之舛也! 惟是胤子賢孝, 孫曾且蕃, 不食之報, 其將在斯也歟! 嗚呼, 哀哉! 尙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