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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제문(祭文)
  • 족숙 시암 공께 올리는 제문(祭族叔諟菴公文)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제문(祭文)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2.0001.TXT.0019
족숙 시암주 130) 공께 올리는 제문
유세차 경오년(1930) 11월 5일 무신날은 시암(諟菴) 김공의 탈상일이온데 족질 김택술(金澤述)은 연고가 있어 참례하지 못하고, 하루 전인 정미날에 삼가 제물과 제문을 갖춰 둘째 아들 형태(炯泰)를 시켜 영전에 우러러 아룁니다.
오호! 공께서 가신지 25 개월이 되어, 이제 궤연을 물리게 되었습니다. 평생의 친분(親分)과 정의로는 같은 할아버지를 둔 손자이고 같은 스승을 둔 동문인데, 술 한 잔과 몇 줄 제문의 성의도 보이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인정이겠습니까? 시대의 법망이 날로 엄밀해져 손발을 둘 데가 없고 골짜기 구덩이에 떨어져 죽을 날이 다가오니, 맹자가 말한 바 죽음을 면하기도 부족하여 예법을 갖출 여유가 없습니다. 비록 뜻있는 선비라 하여도 오늘의 세상을 피하기 어려운데 망한 나라의 버려진 하민들은 장차 어디에 떨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이 세상 함께 사는 선비들은 공께서 현철하심에도 장수를 못 누림을 아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께서 훌쩍 멀리 떠나시어 이곳 사정을 깜깜히 모르게 되심을 부러워합니다.
아아! 공께서는 평생을 살면서 효우(孝友)로 종친들과 돈독하였고, 벗들을 성실한 행동으로 감복시켰고, 부지런히 권면하고 가르쳐 교육을 일으키셨습니다. 공의 덕은 확고히 세도에 보탬이 되기에 충분하였고, 그래서 저들이 두터이 감복함은 역시 사람의 마음에 같은 것이 있어서 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세상이 이처럼 날마다 달마다 극심하게 변하며, 어찌하여 하늘은 우리 백성의 도덕을 이토록 무너져 없어지게 놓아둔단 말입니까? 만약 구천에서 오늘 다시 일어나 오신다면, 저는 공은 곧 공이고 세상은 곧 세상임을 알아 서로 혼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께 슬피 곡하면 곧이어 시대를 아파하는 통곡이 함께 터져나오니, 이를 어이한단 말입니까?
오호! 공의 시원스레 쏟아내는 말씀, 우뚝이 높은 기개, 온화한 용모, 엄연한 자세는 실로 혼탁한 세상의 호걸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경도ㆍ감복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영영 두터운 흙 아래 묻히고 나면 장차 어디서 다시 공의 모습을 뵈오리까? 이제는 일제의 검은 옷을 입고, 상투를 잘리는 화를 당하게 될 조짐입니다. 억만 백성이 절멸되어 가는 중에 유가의 류가 앞장을 서니 장차 위아래 사람들이 다 뒤따라가 망한 나라의 궁성과 왕릉주 131) 사이에서 아무 일 없었던 듯 희희낙락할 날이 멀지 않습니다. 유명(幽明)에 갈리는 슬픔은 오래 이어지지 않고, 저승에서 만나 기뻐할 시간은 무궁하다주 132)는 말로 미리 위안을 삼을 뿐입니다. 바라건대 밝으신 혼령께서는 이 붉은 마음을 굽어 살피소서!
주석 130)시암
김낙구(金洛九 1875.6.3.~1928.11.5.)의 호이며, 조명은 낙규(洛奎)이고 자는 석우(錫禹)이다.
주석 131)궁성과 왕릉
원문은 '청도(淸都)와 천대(泉坮)'인데, 청도(淸都)는 옥황상제가 산다는 천상(天上)의 궁성이고, 천대(泉坮)는 무덤과 저승을 말한다.
주석 132)유명(幽明)에……무궁하다
제문을 올리는 자신도 머지않아 저승에 가 다시 만날 것임을 말한다. 당나라 문인 한유(韓愈)는 조카를 위한 제문에서 자신도 죽을 날이 멀지 않아 다시 만날 것이니 헤어지는 슬픔은 얼마 안 되고, 함께하며 기뻐할 날은 무궁하다고 말하였다. 《韓昌黎集ㆍ祭十二郞文》
祭族叔諟菴公文
維歲次庚午十一月五日戊申, 諟菴金公之祥期也。 族姪澤述有故未赴, 前一日丁未, 謹具奠與文, 使次子炯泰敬告于靈几, 曰: 嗚呼! 公之沒, 今爲二十有五月, 靈將撤矣。 平生親誼如余之同祖孫、同師生者, 曾不以一酌酹數行文見誠, 豈人情哉! 時網日密, 手足莫措, 溝壑在前, 死亡無日, 孟子所謂救死不贍, 奚暇治禮者, 雖云士子而難免乎今之世矣。 而故國遺黎幷不知將如何下落也。 此所以幷世群彦, 雖惜公之賢而無壽, 而亦羨公之翛然遐擧, 冥然無知也。 噫! 公之在世, 孝友之篤孚宗黨, 誠幹之實服朋友, 勸敎之勤興學者, 公之德固足以有補乎世, 而彼孚服興感者亦自有人心之所同然也。 夫何世變之極, 日異月殊, 天惟與我民彛大泯亂至此也? 如使九原復作乎今日, 吾知其公自公、世自世, 而不相入也。 然則傷時之痛, 如之何不幷與哭公之悲而交相發也? 嗚呼! 沛然之談、傑然之氣、溫然之貌、儼然之像, 實爲叔世人豪, 而令人傾服者。 永一閟於厚壤, 將於何而復覿? 目今黑服之行, 勒剃之履霜也, 萬姓殄滅之中, 儒流居先, 行將追隨上下, 於淸都泉坮之間, 嬉嬉如平昔也有日矣。 所謂悲不幾時, 而不悲無窮者, 預可爲慰焉。 惟尊靈之不昧, 庶垂鑑於衷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