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 국역/표점
  • 국역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제문(祭文)
  • 간재 선생님께 올리는 제문(祭良齋先生文)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2 / 제문(祭文)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2.0001.TXT.0001
간재 선생님께 올리는 제문
유세차(維歲次)주 1) 임술년(1922) 9월 신유삭(辛酉朔) 13일 계유일(癸酉日)은 우리 구산(臼山) 선생님께서 멀리 떠나시는 날입니다. 문인인 저 부령(扶寧) 사람김택술(金澤述)은 선생님께서 병환을 앓으시던 때와 빈소를 차리고 염을 하던 날에 이미 심장이 타들어 가고 오장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제 계빈(啓殯)주 2) 사흘 전 정묘날에 정성껏 준비한 제물과 슬픔을 다 담은 글을 가지고 영구(靈柩) 앞에 두 번 절하고 곡하며 영결을 고합니다.
아, 선생님의 도학은 선현을 잇고 후학을 인도하셨으니주 3) 그 공로는 맹수를 몰아내고 홍수를 막은 것에 못지않으십니다.주 4) 이렇게 생민(生民)의 명맥을 담당하고 사문(사문)의 적통이 되었는데, 어이하여 이렇게 갑자기 세상일을 잊고 영영 가시었습니까?
마음[心]이 곧 리[理]이고, 리에 작위가 있다[理有爲]는 설이 온 천하에 시끄러웠는데, 우리 선생님의 리는 참되고[眞] 기는 신령[靈]스러우며, 성(性)은 스승[師]이고 심(心)은 제자[弟]라는 바른 설명이 없었더라면, 그처럼 태극(太極)과 음양(陰陽)이 뒤집히고 뒤섞이는 것을 막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큰 도학과 큰 공로 중에서 더욱 찬연히 빛나는 부분입니다. 서구(西歐)의 사조(思潮)가 범람하고 양계초(梁啓超)주 5)의 학문이 창궐하는 속에서, 선생님께서 두발을 신명(身命)보다 중히 하고 윤리를 강토보다 크게 여기며 방호하지 않으셨더라면 아마도 관 쓴 선비들이 금수의 땅으로 갈 뻔하였습니다. 법문(法門)의 파괴가 넘쳐나서 입으로는 공자(孔子)와 안회(顔回)의 말을 하고 몸으로는 혜강(嵇康)과 완적(阮籍)주 6)의 행동을 하는 속에서, 선생께서 군자의 법복(法服)과 구용(九容)주 7)을 먼저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사람과 말이 같은 길을 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초연한 자세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셨으니 고고한 봉황이 하늘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모습과 같았고, 의연히 스스로의 의리를 지키셨으니 푸른 잣나무가 한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것과 같으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또한 선생님의 높은 행적과 올곧은 절의였으니 세속의 유자(儒者)들은 따라 할 수 없는 바였습니다.
아,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천하는 이제 이치에 맞지 않는 학설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오랑캐의 풍속이 인류를 집어삼키게 될 것입니다. 성인의 문하에서 학문을 가르치는 규범과 사군자(士君子)가 출처(出處)하는 의리도 장차 어지럽고 깜깜해질 것입니다. 세상의 공도(公道)를 위해 슬퍼하는 마음이 어찌 간절하고 지극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선생께서 남기신 글이 세상에 있으니 천지를 바로 세우고 귀신에게 질정할 만합니다. 떳떳한 본성은 실추되는 이치가 없고 밝은 하늘은 반드시 되돌아오는 날이 있습니다. 저는 선생의 도가 하늘의 해와 달처럼 영원히 빛날 것을 압니다. 이것이 지금과 뒷사람의 위안거리입니다. 그러나 저의 개인적인 슬픔이야 어찌 다할 날이 있겠습니까. 제가 선생의 문하에 드나든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깊은 사랑과 큰 기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약관의 나이에 가사를 담당하게 되고 가업이 풍비박산 되어 7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늙으신 어머니를 모셔야만 했습니다.주 8) 그 결과 쇠를 단련하고 옥을 갈아낸 것처럼 정밀한 선생의 의리와 터럭 하나까지도 분명하게 분석하시는 선생의 밝은 이치에 대해 선생의 문하에서 차분히 익혀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전전긍긍하며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은 오직 선생의 큰 규모와 큰 종지(宗旨)뿐이었으니 선생께서 제게 기대하신 것과 제가 선생께 배울 것이 어찌 이와 같을 뿐이겠습니까.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셨으니 다시 누구를 봉양하겠습니까. 끝까지 종사해야 할 일은 오로지 정신을 집중해서 학문을 연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제 선생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선생의 문하에서 제자의 직분을 다하면서 선생의 정미한 학술을 배워 처음의 기약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 기다리지 않고 이렇게 돌아가실 줄을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아, 잠시 촛불을 잡으며 모셨지만 경계의 말씀을 받지 못하였는데, 엊그제 갑자기 선생께서 돌아가시는 슬픔을 만났습니다. 6월 초에, 한 번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앓아누우시기 전에 "후창은 어찌 이리 오지 않는 것이냐."라고 하셨다고 하니,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억장이 무너지고 눈물이 흐릅니다. 아, 선생께서는 비록 멀리 떠나시지만 그 길을 가깝고, 모습과 음성은 비록 감추셨지만 아직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훤칠한 칠 척의 모습을 어찌 감히 스스로 저버리겠습니까. 면면히 이어지는 실마리를 어찌 감히 실추시키겠습니까. 빛나는 신령이 하늘에 계시니 밝은 해가 땅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이승과 저승이 갈려 위에 계시고 아래에 있지만 근심도 없으며 두 마음을 품지도 않겠습니다.주 9) 아, 슬픕니다. 흠향하시옵소서!
주석 1)유세차(維歲次)
제문(祭文)의 첫머리에 관용적으로 쓰는 말로, '간지(干支)를 따라서 정한 해로 말하면'의 뜻이다.
주석 2)계빈(啓殯)
발인하기 전에 빈소를 열고 관을 꺼내 오는 것을 말한다.
주석 3)선현을……인도하셨으니
주희는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에서 공자를 찬양하여 "옛 성인을 계승하고 미래의 학자를 열어 줌은 그 공이 도리어 요순보다도 낫다.[繼往聖, 開來學, 其功反有賢於堯舜者。]"라고 하였다
주석 4)선생의……못지않으십니다
간재의 공로가 우임금이나 주공의 공로에 뒤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맹자가 이르기를 "옛날에 우 임금이 홍수를 다스려서 천하가 태평해졌고, 주공이 이적들을 겸병하고 맹수들을 몰아내자 백성들이 편안해졌다.[昔者禹抑洪水而天下平, 周公兼夷狄驅猛獸而百姓寧。]"라고 하였다.
주석 5)양계초(梁啓超)
청나라 말기의 광동성 출신 정치가이다. 1873~1929, 자는 탁여(卓如)ㆍ임보(任甫), 호는 임공(任公)ㆍ음빙자(飮冰子)이다. 강유위(康有爲)와 함께 무술정변(戊戌政變)을 주도하며 변법자강(變法自疆)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저서로 《음빙실전집(飮氷室全集)》《청대학술개론(淸代學術槪論)》 등이 있다.
주석 6)혜강(嵇康)과 완적(阮籍)
중국 삼국시대의 선비들인데, 산도(山濤)·상수(向秀)·유영(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과 함께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불린다. 상류사회의 위선을 폭로하고 유가(儒家)의 예교(禮敎)를 비웃으며 풍류와 청담(淸談)을 즐기고 기벽(奇癖)한 언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석 7)구용(九容)
《예기(禮記)》 〈옥조(玉藻)〉편에 말한 군자의 아홉 가지 용모 즉, 무거운 발걸음[足容重], 공경한 손놀림[手容恭], 단정한 눈짓[目容端], 진중한 입[口容止], 조용한 목소리[聲容靜], 곧게 든 머리[頭容直], 엄숙한 기상[氣容肅], 덕스러운 선 자세[立容德], 장엄한 얼굴빛[色容莊] 들을 말한다.
주석 8)그러나……했습니다
간재의 문하에서 공부 계속하지 못했던 사정을 말한 것이다. 가사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은 부친 별세를 말한 것이다.
주석 9)근심도……않겠습니다
《시경(詩經)》 노송(魯頌) 비궁(閟宮)에, "두 마음 품지 말고 근심하지 말지어다, 상제가 너를 굽어보고 계시노라.[無貳無虞, 上帝臨女。]"라는 말이 나온다.
祭良齋先生文
維歲次壬戌九月辛酉朔十三日癸酉, 我臼山先生卽遠之辰也。 門人扶寧金澤述旣焦心裂臟於疾病殯斂之日, 乃於啓殯前三日丁卯, 以精意之奠、盡情之文, 再拜哭訣于靈柩之前, 曰: 嗚呼! 先生之道可以繼往而開來, 先生之功不下驅猛與抑洪, 任生民之命脈, 爲斯文之嫡宗, 胡爲乎遽忘世而長終也? 心卽理、理有爲之說, 喙喙盈天下, 不有我先生理眞氣靈、性師心弟之正案, 太極陰陽其何以不翻覆錯亂? 先生之大道大功, 此其較著燦燦者也。 歐潮汎濫、梁學猖獗, 微先生髮重身輕、倫大疆小之防, 或幾乎冠冕之走翔矣。 法門多壞滔滔, 孔顔口而嵇阮行, 微先生之先敎以法服九容, 或幾乎人馬之道同矣。 超然潔身, 孤鳳天風, 毅然自靖, 翠柏大冬, 又先生之高蹈貞節, 而蓋世儒之不可從也。 嗚呼! 先生旣逝矣。 天下其將易於喙喙矣, 蹄跡其將陷溺人類矣。 聖門敎學之規, 士君子出處之義, 其將貿貿昧昧矣。 公而爲世道悲者, 如之何不切摯也? 雖然遺文在世, 足以建天地質鬼神, 彛性無終墜之理, 皓天有必返之辰。 吾知其先生之道將日月于天, 是可以慰今與後之人也。 若小子之私慟, 豈有其窮時? 出入先生之門墻, 蓋二十年于茲, 恩愛之深、期待之重, 或非餘人之可比。 而弱冠當室, 靑氈風飛, 七載躬耕, 白首在闈。 粹然我先生鍊金磨玉之精義, 燦然我先生析縷分毫之名理, 未得從容乎席間, 而潛會乎心體, 兢兢然夙夜匪懈者, 惟先生之大規模大宗旨, 先生之望小子, 小子之學先生, 豈其若是而止乎? 一自孤露, 復誰爲養? 究竟一事惟在專心窮硏, 方且晨夕灑掃, 以至先生臨年, 庶得聞精微之蘊, 而不負乎初期。 豈意其先生之不以待而棄之若遺? 噫! 曾燭俄執, 難承戒於氷淵尼歌, 再宿遽見慟於樑山。 六月初欲一對討之書, 寖疾前某來何遲之言, 每思之, 不覺心崩而淚泉也。 嗚呼! 先生雖遠, 其道則邇, 形聲雖閟, 尙愼聽視。 軒軒七尺, 豈敢自棄? 緜緜一緖, 豈敢失墜? 赫靈在天, 皦日臨地, 幽明上下, 無虞無貳。 嗚呼, 哀哉! 尙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