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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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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서(昏書)
  • 삼남 김형관 혼서 【신미년(1931)】(三子炯觀昏書 【辛未】)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혼서(昏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1.0006.TXT.0003
삼남 김형관주 265) 혼서 【신미년(1931)】
같은 기운은 서로 찾고,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는데, 혼탁한 말세에는 한 마음의 짝 찾기 어렵습니다. 남자가 아내를 얻고, 여자가 집을 가짐은 부모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전해온 옛 전례에 따른 폐백 올리며, 감히 품었던 생각 곧게 말씀드립니다.
생각건대 귀 댁 네째 따님은 유덕한 가문에 태어나 자라서, 타고난 용모와 자질이 본래 단아하고 화순(和順)한데다 의례의 가르침을 받아 규범을 따름이 조신하고 엄정합니다. 저의 삼남 김형관(金炯觀)은 부질없이 헛되이 이름만 날렸을 뿐 백규(白圭)의 노래 반복하는 군자주 266)로는 실로 부끄럽습니다. 품격이 고상하지 못하여 범상한 새[鳳]주 267)에 그칠 뿐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선비들이 도끼 이야기주 268)를 하여 주었고, 넓으신 아량으로 천금 같은 허락을 하여 주시었습니다. 이제 이지러지고 버려진 육례(六禮)를 모두 갖추어 중인의 눈길을 놀래켜 깨우고, 집안 경제의 형편은 묻지 말아서 관습을 넘어서고자 합니다. 용을 타는 기쁨을 갑자기 존하께 드릴 수는 없겠사오나, 빈한한 가문에 기린 같은 자손을 깊이 경축하는 노래를 기대합니다. 지극히 감사하고 기쁜 마음 이루 다 적지 못 합니다.
주석 265)김형관
1915년 출생, 자는 극부(克孚), 호는 건암(健菴)ㆍ기산(麒山)이며, 기린정사(麒麟精舍)를 세우고 남고(南皐)서원ㆍ동죽(東竹)서원ㆍ고부문묘(古阜文廟)의 장의(掌議)를 하였다. 부인 전주최씨의 생몰년은 1917~1968년이고, 그 부친은 경재 최병찬(敬齋崔秉瓚), 조부는 성암 최익홍(誠菴崔益洪)이다.
주석 266)백규……군자
공자의 조카사위가 된 신실한 남궁괄의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앞 〈장남 김형복 혼서〉의 주석 참조.
주석 267)범상한 새
봉(鳳)자를 범(凡)과 조(鳥)로 파자하여 해석한 것이다. 위진(魏晉)시대의 여안(呂安)이 마음의 벗 혜강(嵇康)을 찾아왔다가 출타하여 못 보고 돌아가면서 문에 봉(鳳)자를 써 문자의 유희를 하였다한다. 《世說新語.簡傲》
주석 268)도끼 이야기
혼담을 말한다. 앞 〈장남 김형복 혼서〉의 주석 참조.
三子炯觀昏書 【辛未】
氣相求, 聲相應, 難得叔季之同心, 男有室, 女有家, 豈非父母之所願? 玆因皮幣之遺典, 敢告肺肝之直辭。 伏惟令季女生長德門, 旣賦容質之端順, 承受義敎, 亦循規範之謹嚴。 澤述第三子炯觀聲聞虛馳, 實有慙乎圭復, 品格凡下, 奈不免於鳳題。 何圖多士之發斧言, 乃蒙雅量之賜金諾。 悉擧廢缺之六禮, 聳動衆瞻, 不問豊約於兩家, 超出本俗。 豈乘龍之遽擬於尊座, 庶咏麟之深祝於寒門。 其爲感欣, 罔極輸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