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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제발(題跋)
  • 학산유고의 발문 【무인년(1938)】(學山遺稿跋 【戊寅】)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제발(題跋)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1.0002.TXT.0013
학산유고의 발문 【무인년(1938)】
아아! 이 학산(學山)의 원고는 소재준(蘇在準) 군이 남기고 간 문장이다. 군은 총명하고 기억 잘하는 재주와 꿋꿋하고 우뚝한 지기가 있었다. 열여덟의 나이에 300리 길을 걸어 서해(西海)의 상정(上定)에 이르러서 구산(臼山)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에 크게 힘썼는데, 대개 하루에 천리길을 달리는 듯하였으니 그 진취를 헤아릴 수 없었다. 내가 그 이름을 듣고 만나보기를 원하였는데, 얼마 후 군이 옛 도리의 편지를 부쳐와 을축년(1925)의 화주 184)를 당한 나를 위로하며, 화와 복을 돌아보지 말고 더욱 스승의 의리를 밝히고 만년의 절의를 성취하라고 격려해주었다. 이는 군자가 덕으로써 사람을 아끼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남에게 베푸는 것이었다. 이제 장차 학당에서 함께 공부하며 경책(警責)과 보도(輔導)를 다하려고 하였는데, 하늘이 갑자기 군을 빼앗아갔다. 슬프다!
어느날 그의 부친 성장(聖章) 씨가 백발에 더위를 무릅쓰고 멀리 와서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말하기를 "제가 슬퍼하는 바는 제 아들이 못 다한 뜻을 품고 일찍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 시문이 몇 편 있으니, 비록 매우 졸렬한 글일지라도 인쇄 보관해서 세상에 살았던 흔적을 남겨주고 싶은데, 선생께서 한 말씀 해 주실 수 없으신지요?" 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제가 어찌 차마 거절하겠습니까?" 하고는 받아서 읽어보았다. 그가 찬술한 바는 심성(心性)ㆍ이기(理氣)의 논설, 학문(學問)ㆍ지행(知行)의 설명, 도(道)와 술(術)의 정사(正邪) 논변, 그리고 역사적 성공과 실패의 발자취 등 이었는데, 능히 그 같고 다른 점을 엄밀히 살펴서 그 허여와 박탈을 정하였다. 그래서 많은 글이 신구(新舊)의 중화와 변방, 그리고 유가(儒家)의 시비에 관해 특히 뜻을 두어서 사색의 근거를 내보이려 한 것이었으며, 어쩌다 남의 말을 듣고 얻은 것이 아니었다. 시(詩) 작품 또한 빼어나고 시원하게 자신의 감정을 곧장 쏟아냈으며, 이따금 현실 세태를 아파하며 지은 강개한 이야기들을 하였다. 이 작품들은 모두가 약관의 나이를 전후하여 지은 글이지만 노숙한 작가도 못 따라잡을 바를 지녔으니, 이것은 그의 재능과 지기를 증험하는데 보탬이 되는 실물이다. 수명을 다 채우도록 허용되었다면 장차 대성하여 세상의 나아갈 길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하늘이 사문(斯文)에 끝내 뜻을 두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평범(平凡)ㆍ용렬(庸劣)한 이들은 수명을 누리는 자가 많고, 유독 현철(賢哲)ㆍ영준(英俊)한 사람들은 복이 없겠는가?
아아! 수명을 사람의 꾀로 간여할 수 없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니, 어찌 유독 군에게만 이러한 것이랴? 그런데 성인도 세상을 떠나면서는 이름이 전해져 일컬어지지 못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군의 이름은 이 원고로 인하여 후세에 전해지기에 족하다. 그러면 세상에 와 머문 것은 이십 년 하고 육년에 그쳤지만, 그 죽지 않는 이름은 유구히 전할 것이다. 그 수명이 이제 얼마나 오래겠는가! 나는 이것으로 그 부친을 위로하며, 또 한편으로 세상의 사내들, 저 세워 이룩한 바 없이 한갓 장수할 것만을 바라는 자들을 경계하고자 한다.
주석 184)을축년(1925)의 화
오진영 등이 스승 전우의 유지(遺志)를 저버리고 일제의 허가를 얻어 문집을 발간한 일을 성토하다가, 소재준이 도리어 영업방해죄의 명목으로 진천경찰서와 전주검사국에 고발당해 수차례의 호출과 고문을 당했던 일을 말한다.
學山遺稿跋 【戊寅】
嗚呼! 此學山稿者, 蘇君在準之遺文也。 君有聰明强博之才, 剛毅特立之志。 年十八徒步走十舍, 至西海之上定, 師于臼山先生之門, 大肆力於爲學, 蓋一日千里, 其進不可量也。 余聞其名, 而願見其面, 旣而君寄古道之書, 慰余乙丑之禍, 勉以不顧禍福, 益明師義, 成就晩節。 此君子以德之愛, 而以己所欲施諸人者。 行將同堂麗澤, 胥盡責輔, 而天遽奪君。 悲夫! 日其大人聖章氏白首遠程冒熱而來, 泣謂余曰: 吾悲吾兒齎志夭逝, 其詩文幾篇在者, 雖甚鹵莽, 欲印而藏之, 庶作生世之痕, 子可以助一言否? 余曰: 唯吾何忍辭諸? 乃受而而閱之, 其所述心性理氣之論、學問知行之說、道術正邪之辨、古今得失之跡, 能覈其同異, 定其與奪, 而多所發明於新舊夷夏, 儒門是非之間尤致意焉, 要出思索考據之餘, 而非一時口耳之得。 詩又俊逸滂沛, 直寫己情, 而往往有傷時慷慨之辭。 是皆弱冠前後之作, 而亦有老宿所不能及者, 之才之志, 於是乎益以驗其實矣。 使假之年而充之, 則將大有禆於世程, 而顧乃不然, 豈天於斯文終無意也耶? 不然, 何凡庸之多壽考, 而獨賢儁之無福也? 嗚呼! 命之不與人謀也久矣, 亦奚獨君哉? 雖然聖人疾沒世而名不稱焉, 君之名因斯稿而足以傳世, 則住乎世者, 止二十有六年, 肄不死者將悠久矣。 其爲壽也, 又何如? 余以是旣慰其大人, 且以警世之夫, 夫無所樹立而徒尙年壽者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