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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제발(題跋)
- 일사계안의 발문(一事契案跋)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제발(題跋)
일사계안의 발문
옛적에는 군주가 스승을 겸하였는데, 군주가 스승의 도리를 잃고부터 도리를 가르치는 이를 따로 스승이라 불렀다. 이리하여 난공자(欒共子)주 183)가 부모․스승․임금을 하나 같이 섬겨야 한다는 말을 하였고, 그래서 사람들이 언필칭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한 몸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대례(戴禮 禮記)》에 기록된 것에 준하여 스승이 봉양 받을 방도가 없으면 어버이를 섬기는 것과 같이 하였다는 것은 후세에 알려진 바가 없다. 이제 이따금 제자는 부유하고 스승은 가난하여 따뜻하고 추운 차이가 현저한 경우가 있으니, 이때는 어떤 예를 따를 것인가?
우리 지역의 일우(一愚) 최공(崔公)의 문인은 여기에서 다른 점이 있다. 공은 암연히 스스로 수양하며 명예와 영달을 구하지 않고, 곤궁함을 마다 않고 검약하게 사셨고, 그 문하에 들어온 사람들 또한 모두 호남의 청빈한 사람들이었다. 자력으로 생계를 공급할 수 없게 되자, 이윽고 사람들이 다 함께 돈을 내놓아 계를 맺고 그것으로 스승을 부양하는 방도로 삼았다. 그 이름을 '일사(一事)'라고 한 것이 이미 수 년 되었으니, 그 정성이 가히 지극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연장한다면,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스승을 어버이와 마찬가지로 모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공께서 사람을 가르치심에 도와 덕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공의 문하에는 훌륭한 문사와 덕행 있는 선비들이 많은데, 계의 일을 주관하는 이형규(李炯珪) ․ 최경열(崔璟烈) ․ 노찬성(盧燦晟)이 나에게 계문서의 뒤에 발문을 부탁하였다. 나는 이미 공의 덕행과 의리를 존경하는데다 또 여러 벗들의 성대한 일을 부러워하기에 사양하지 않고 글을 쓰며, 세상의 스승을 섬기는 사람들이 보고 느낄 줄을 알기를 희망한다.
- 주석 183)난공자(欒共子)
-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대부(大夫) 난성(欒成)으로, 시호가 공(共)이다. 진 애후(晉哀侯)를 죽인 곡옥무공(曲沃武公)이 상경(上卿) 벼슬을 제안하자 그는 말하기를 "사람은 세 가지 위에서 사니, 그 셋을 하나같이 섬겨야 한다. 어버이는 낳아 주셨고, 스승은 가르쳐 주셨고, 임금은 먹여 주셨다.[民生於三, 事之如一。 父生之, 師教之, 君食之。《國語.晉語》]"라고 하였다.
一事契案跋
古者, 師兼於君。 自君失師道, 以道敎人者別謂之師。 於是欒共子有生三事一之說, 而人必稱君師父一體。 然而準以戴禮所記, 就養無方, 同於事父, 則後世未有聞焉。 往往有弟富師貧而寒溫懸絶者, 是遵何禮? 若吾鄕一愚崔公之門人則異於是矣。 公闇然自修, 不求聞達, 而固窮處約, 故及門者亦皆湖上淸貧家。 旣自力不及焉, 則乃相與出金樹契爲就養之方, 而名之以一事者, 已有年所, 其勤可謂至矣。 推是心也, 豈其富焉而不能誠養同於事父者乎? 于以見公之敎人有道而德之深入也。 門下蓋彬彬多文行士, 而李炯珪、崔璟烈、盧燦晟幹契事, 屬余以跋案後。 余旣敬公德義, 復艶諸友盛事, 遂不辭而書之, 使世之事師者知所觀感云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