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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기(記)
  • 용은기 【을유년(1945)】(舂隱記 【乙酉】)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기(記)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1.0001.TXT.0024
용은기 【을유년(1945)】
벗 사천(士千) 송광엽(宋光燁)은 방아를 찧는 곳에 은둔한 자였다. 내가 그 때문에 용은(舂隱)이라 그의 호를 지어주었는데, 어떤 사람이 촌스럽다고 기롱하니, 내가 말하기를,
"아니, 그렇지 않다. 옛 현인 중에 본디 포은(圃隱)ㆍ목은(牧隱)ㆍ도은(陶隱)ㆍ야은(冶隱)의 호가 있었다."
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옛날에 채소를 가꾸고 가축을 기르거나 도자기를 굽고 쇠를 불렸다는 것은 명분이고, 사실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날 방아를 찧는다는 것은 사실인데다 또 뒤이어 그것을 호로 삼기까지 하였으니, 또한 촌스럽지 않는가."
라고 하니, 내가 말하였다.
"아니, 그렇지 않다. 사람의 성품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고, 오늘날의 변고는 고려 말기 때보다 덧없으니, 그대는 채소를 가꾸고 가축을 기르거나 도자기를 굽고 쇠를 불리는 것만 유독 명분에 가탁한 것이고, 오늘날 방아를 찧는 것은 실제로 먹고 사는 일인 줄 어찌 알겠는가. 또한 사람이 의리를 지키는 것은 각기 그 분수를 따르는 것이니, 만약 옛날의 현인이 궁벽한 시골의 미천하고 빈한한 선비였고, 오늘날 사람이 벼슬과 봉록, 넉넉한 재물이 있다고 한다면 그대는 또 포은ㆍ목은ㆍ도은ㆍ야은이 함께 그것을 실제로 일삼지 않고, 용은이 명분에 가탁하여 실제의 일을 버리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그대는 한갓 옛 사람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은 것이 절개인 줄 알고 명분에 가탁하는 것을 고상하게 여기며, 오늘날 원수를 가까이 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먹고 사는 것이 잘하기 어려운 줄 모르고 실제의 일을 이름으로 삼은 것을 촌스럽게 여기니, 또한 생각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 혹 용은이 내면의 바탕이 외면의 꾸밈보다 뛰어난 사람이기에 그가 바탕과 꾸밈이 조화로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하여 그 사람됨을 촌스럽게 여긴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舂隱記 【乙酉】
宋友 士千 光燁隱於舂者.余故以舂隱號之.人有譏其野者.余曰: "否, 不然.古之賢者, 固有圃隱、牧隱、陶隱、冶隱之號也." 曰: "古之圃牧陶冶名也, 匪實也.今之舂實矣, 又從而名之, 不亦野乎?" 曰: "否, 不然.人性無古今之殊, 今日之變, 浮于麗末.子安知圃牧陶冶之獨爲托名, 而今之舂之實爲其食乎? 且人之守義, 各隨其分.使古賢而爲窮閻寒畯, 今人而有官祿餘資, 子又安知圃、牧、陶、冶之不幷事其實, 舂隱之不托名舍實乎? 子徒知古人不事二君之節而高其托名, 不知今日不親讐自食力之難能, 而野其名實, 其亦未之思也.抑舂隱質勝文者, 以其不得爲彬彬君子而野其人, 則不以爲不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