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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기(記)
  • 납하당기 【신사년(1941)】(納遐堂記 【辛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기(記)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1.0001.TXT.0018
납하당기 【신사년(1941)】
내가 일찍이 읽은 주부자(朱夫子 주희(朱熹))의 〈감춘부(感春賦)〉에 "머나먼 옛 사람의 정을 마음에 받아들였네."라는 구절이 있고, 또 "천년의 아득한 세월, 유독 내 마음에 와 닿네."라고 하여 그에 대해 거듭 표명하였다. 대저 지나간 옛날의 먼 정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유독 마음에 와 닿아 받아들인 것인가? 여기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체로 '아득하게 멀다[遐遠]'라는 것과 대조되는 것은 '매우 가깝다[邇近]'라는 것이 이것이니, 사람의 정이란 매우 가까운 것에 가리게 되는 법이다. 처음에는 귀와 눈, 코와 입 등 내면의 욕구에 의해 이끌리게 되고, 마지막에는 부귀와 권세, 이익과 영달 등 외부에 대한 염원에 의해 내달리게 되니, 이리하여 마음이 어지럽게 되는 것이다.
대저 몸이 영욕의 길에서 초월하고 사물의 밖에서 서서 마음을 허명(虛明)하게 하는 것은 아득히 먼 영역을 밝게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와 같이 할 수 없으니, '아득하게 멀다'라는 것은 무엇인가? 경전에서 "먼 곳에 오르다."주 65)와 "먼 길을 가다."주 66)라고 서술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고, 아득하게 먼 도를 다할 수 있는 사람으로는 또 옛 성인이 이에 해당한다. 이것이 주자가 천년의 정이 마음에 와 닿았다 말하고, 지금 학강(學岡) 정공(鄭公)이 '납하(納遐)'라는 편액을 새로 지은 문산재(文山齋)의 중앙 당(堂)주 67)에 내건 이유이다.
신사년(1941) 여름에 내가 이 당을 방문하니, 공이 나에게 기문을 짓게 하였다. 내가 보건대, 이 당은 아득히 먼 경계에 의거하고, 시원스럽게 탁 트인 풍취를 점유하여 아래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막연히 서로 간섭하지 않았다. 또 방장산(方丈山 지리산)과 백운산(白雲山)주 68) 등 여러 명산들은 은둔하는 사람들이 깃들어 쉬는 곳이고, 신선들이 굴을 파서 거주하는 곳인데, 하늘 사이에서 흐릿하게 가물거리던 이 산들이 처마 밖으로 흔연히 와서 공수하니, 마치 상쾌한 기운끼리 서로 만나는 듯하고, 신령끼리 서로 감응하는 듯하였다. 이곳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초연한 생각이 들어 내면의 욕망에 의한 이끌림과 외부에 대한 생각의 내달림이 발생하지 않으니, 이 당에서 아득히 먼 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천년의 옛날을 기다릴 것도 없이 눈앞 앉아 있는 사이에서 얻을 수 있다.
대체로 옛날의 먼 정이 마음에 와 닿아 당의 이름에 부치고, 산의 먼 정을 당에서 얻어 마음에 와 닿으니, 이는 안팎이 서로 기르는 것이라 하겠다. 비록 그렇지만, 공은 고상한 선비인지라 무릇 기뻐하고 사모할 만한 세간의 번잡하고 화려한 것들이 모두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니, 어찌 당에 건 편액의 문장을 기다려 마음에 수양하는 바가 있겠는가. 또 마음의 사이에는 원래부터 멀고 먼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니, 또한 어찌 밖으로부터 오는 것을 빌려 도움을 받은 뒤에 얻겠는가.
다만 성탕(成湯)과 같은 성인과 공가(孔嘉)와 같은 현인으로도 오히려 대야와 솥에 명(銘)을 새겨 날로 새로워지고 더욱 공경하는 뜻을 잊지 않았으니주 69), 지금 공이 어찌 감히 스스로 내가 이미 잘하는 것이고, 내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고 여겨서 경계에 의해 만나는 것과 마음에 와 닿는 것으로 당을 빌려 먼 정을 받아들여서 그 지극한 경지를 힘써 사모하지 않겠는가. 이미 본바탕의 원리(元理)가 있는 경우이니,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주자와 같아서 힘써 사모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때문에 장차 《상서(尙書)》와 《중용(中庸)》에 있는 궁극의 도를 다하여 천 년 전 성현을 따라 미치는 자가 있다면 아마도 공이 그 사람일 것임을 알고 있으니, 당 위에서 조용히 따르며 배우기를 원하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이렇게 써서 공경히 답하였다.
주석 65)먼 …… 오르다
《서경》 〈태갑 하(太甲下)〉에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먼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다.〔若升高, 必自下; 若陟遐, 必自邇.〕"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석 66)먼 …… 가다
《중용장구》 제15장에 "군자의 도는 비유하면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하며, 높은 데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로부터 함과 같다.〔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석 67)학강(學岡) 정공(鄭公) …… 당(堂)
학강 정공은 경남 함양 출신의 근대 유학자 정재경((鄭在璟, 1881~1960)이다. 문산재는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가성부락 뒤 보문산 중간지점 산속에 위치한 3칸짜리 집으로, 정경재가 청년시절에 건립하여 죽을 때까지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주석 68)백운산(白雲山)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반암면 사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279m이며, 북쪽의 덕유산(德裕山)ㆍ남쪽의 지리산 등과 함께 소백산맥의 일부가 된다.
주석 69)성탕(成湯)과 …… 않았으니
성탕은 중국 고대에 하(夏)나라를 정벌한 무공(武功)으로 은(殷)나라를 창업한 탕왕으로, 그는 세숫대야에 "진실로 어느 하루에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나날이 새로워져야 한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라는 명문(銘文)을 새겨 두고 자신의 과실을 살피고 덕을 새롭게 하는 데 힘썼다고 한다.《大學章句 傳2章》공가는 공자의 7세조인 공보가(孔父嘉)로, 송(宋) 나라에 벼슬하여 상경(上卿)이 된 그는 사당(祠堂)의 솥에 더욱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정(鼎)을 만들어 경계하는 말을 새겼는데, "대부(大夫)가 되어서는 고개를 숙이고, 하경(下卿)이 되어서는 허리를 굽히고, 상경(上卿)이 되어서는 몸을 굽혀 길을 갈 때에 담 옆으로 빨리 달려가면 다른 사람이 나를 감히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명문을 새겨두고 더욱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左傳 昭公7年》
納遐堂記 【辛巳】
余嘗讀朱夫子感春之賦, 旣有曰: "納遐情於方寸." 又以千載遙遙獨有會心申言之.夫往古之遐遠, 何與於我, 而乃獨會心而納之也? 是必有其說矣.蓋遐遠之對, 邇近是也.人之情蔽於邇近, 則始焉, 耳目鼻口之欲, 牽於內; 終焉, 富勢利達之念, 馳於外.於是乎方寸亂矣.夫惟身超乎榮辱之途, 立乎事物之表, 以致方寸虛明者, 非有昭觀乎遐遠之域, 則不能爾也.遐遠者何? 經傳所述陟遐、行遠之類是已.能盡遐遠之道者, 又古昔聖賢是已.此朱子所以有千載會心之語, 而今學岡鄭公揭納遐之扁於新築文山齋中堂者也.辛巳夏余過是堂也.公俾余記之.余見是堂, 據逈絶之境, 占淸曠之趣, 下視人寰, 旣漠然而不相干.且方丈白雲諸名山, 隱淪之所棲息, 仙流之所窟宅, 而縹緲於天際者, 欣然來拱於軒簷之外, 爽氣之若相値焉, 靈神之若相感焉.居斯也, 自不覺超然之想, 而內牽之欲、外馳之念, 無自而生.然則是堂遐情之納, 又不待千載之古而得之於眼前座間矣.蓋古昔之遐情, 會於心而寓之堂名; 山之遐情, 得之堂而會於心, 是爲表裏交相養焉.雖然, 公高士也, 凡世間紛華可喜可慕者, 擧無足以動其中, 則豈待堂宇扁章之間而心有所養? 且夫方寸之間, 元自具遐遠之理, 亦豈待外來借助而後得? 但以成湯之聖焉、孔嘉之賢焉, 猶借銘盤鼎而不忘日新、益恭之意, 今公烏敢自謂吾所已能, 吾心所具, 而不以境之所値、心之所會者, 借堂以納遐情, 而勉慕其至乎哉? 旣有本地元理境遇矣, 會心之同朱子而能勉慕矣.吾以是知將盡《尙書》、《中庸》究極之道, 而追及千載之聖賢者, 殆公其人也, 尙當從容乎堂上, 而願學有日焉, 爲之書此而敬復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