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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기(記)
  • 분재토보송림기 【을유년(1945)】(粉齋土堡松林記 【乙酉】)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기(記)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1.0001.TXT.0012
분재토보송림기 【을유년(1945)】
맹자가 말하기를, "이른바 '오래된 나라[古國]'라 하는 것은 드높이 자란 나무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벼슬하는 신하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주 47)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비록 대를 이어 벼슬하는 신하를 주로 한 것이지만, 그 뜻을 궁구하면 오래된 나라에는 반드시 드높이 자란 나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일찍이 이 구절을 읽고 "인가(人家)의 고족(故族)이 고족이 된 까닭은 서로 전해온 세덕(世德 대를 이어 쌓아온 덕)에 있고, 경관이 아름다운 조상의 선산에 있지 않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고족의 집과 무덤 옆에 또한 반드시 드높이 자란 나무가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이는 맹자의 뜻과 같다.
우리 선조 첨지공(僉知公)과 현감공(縣監公) 두 대를 안장한 곳이 부안의 분토동(粉土洞)에 있고, 그 아래에 재실이 있는데, 재실 뒤에 있는 흙 보루와 소나무 숲은 외손 쌍백당(雙柏堂) 이충숙공(李忠肅公)주 48)이 본도의 관찰사로 있을 때에 장정들을 징발하여 축조하고 심어서 방어의 허술함을 보완한 것으로, 300년에 걸쳐 이 소나무를 보호하고 길러서 울울창창하였다.
아, 이공은 명릉(明陵 숙종) 때 삼간신(三諫臣)주 49) 중 한 사람으로, 충직한 목소리가 조정과 재야에 진동하였다. 대저 충과 효는 일치하니, 외선조(外先祖)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도 또한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을 미루어 가는 것이다. 우리 김씨(金氏)는 진실로 서로 전해온 세덕이 있는데, 외손으로 어진 이공을 얻었으니, 어찌 빛남이 있지 않겠는가? 또 그 분이 심은 높은 나무를 얻어 고족의 일단을 증험했으니, 어찌 거듭 할 말이 있지 않겠는가.
대저 어찌된 일인지 근년 이래로 늙은 측백나무를 아끼고 애석하게 여기는 정주 50)이 점점 쇠퇴하고, 팥배나무를 베어내는 것에 대한 경계주 51)를 삼가지 않아서 거의 후산(後山)의 〈사정기(思亭記)〉의 염려주 52)를 범하고 있으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러 종족과 더불어 당시 이충숙의 뜻을 깊이 생각하여 더욱더 아끼고 보호하여 큰 나무들이 더욱 많게 함으로써 이것을 본 사람들이 "효성스럽구나! 김씨여. 분암(墳菴 묘를 보살피기 위해 세운 암자)의 소나무조차 오히려 아끼는데, 하물며 그 선조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라고 일컫기를 바라니, 진실로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이것이 선조를 생각하고 덕을 닦는 어진 후손이 되는 것이다. 어진 덕을 지닌 후손이 배출된다면 어찌 대를 이어 덕을 쌓아온 오랜 종족이 될 뿐이겠는가. 또한 장차 나라의 큰 나무가 될 것이고 대를 이은 신하가 될 것이다. 이에 기문을 짓는다.
주석 47)이른바 …… 것입니다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보인다.
주석 48)쌍백당(雙柏堂) 이충숙공(李忠肅公)
이세화(李世華, 1630~1701)로, 쌍백당은 그의 호이고, 충숙은 그의 시호이다. 본관은 부평(富平)이고, 자는 군실(君實)이다. 1657년(효종8)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황해도ㆍ전라도ㆍ경상도 관찰사와 육조(六曹)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고, 세자빈객에 올랐으며,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저서로 《쌍백당집(雙柏堂集)》이 있다.
주석 49)삼간신(三諫臣)
이세화와 정재 박태보(定齋 朴泰輔), 양곡 오두인(陽谷 吳斗寅)을 말한다. 이들은 1689년(숙종15) 숙종(肅宗)이 인현왕후(仁顯王后)를 폐위하였을 때에 함께 강력히 반대하는 소장을 올렸다가 분노한 숙종의 친국을 받고 유배되었는데, 훗날에 이들을 충신으로 추앙하며 삼간신이라 일컬었다.
주석 50)늙은 …… 정
일제에 의해 나라를 잃은 백성이 가져야 할 우국충정을 뜻한다.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제갈량(諸葛亮)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 곁에 있는 오래된 측백나무를 보며 읊은 〈고백행(古柏行)〉에서 "제갈공명의 사당 앞 늙은 측백나무, 가지는 청동 같고 뿌리는 바위 같네.〔孔明廟前有老柏, 柯如靑銅根如石.〕"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주석 51)팥배나무를 …… 경계
나라와 백성을 위해 선정(善政)을 베푸는 관리가 되도록 권면한 것으로, 주(周)나라 무왕(周武王) 때에 소공(召公)이 남국을 순행하며 정사를 다스리고 팥배나무 아래서 쉬어 갔었는데, 떠난 뒤에 백성이 그 덕화를 생각하고 그 나무를 사랑하여 지어 부른 "무성한 팥배나무를 베지 말고 꺾지 말라. 소백이 쉬시던 곳이니라.〔蔽芾甘棠, 勿翦勿敗, 召伯所憩.〕"에서 유래하였다. 《詩經 甘棠》
주석 52)후산정기(后山亭記)
북송(北宋)의 문장가 후산(後山) 진사도(陳師道)의 〈사정기(思亭記)〉를 말하는 듯하다. 〈사정기〉는 진사도가 지은 글로 자손들이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재실에서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古文眞寶 後集 卷10 思亭記》
粉齋土堡松林記 【乙酉】
孟子曰: "所謂故國者, 非謂有喬木之謂也, 有世臣之謂也." 此言雖主於世臣, 然究其意也, 故國之必有喬木, 則可知也.余嘗讀此而有言曰: "人家故族之所以爲故族者, 在世德相傳, 不在於祖山觀美." 然故族之家、丘壟之傍, 亦可知其必有喬木, 則若孟子之意也.我先祖僉知公、縣監公兩世之藏, 在扶安粉土之洞, 而其下有齋.齋後土堡松林, 外裔雙柏堂李忠肅公觀察本道時, 爲發民丁, 築之植之, 以補防虛疏者, 而歷三百年, 護養是松, 鬱鬱乎蒼蒼焉.於虖, 李公以明陵三諫臣之一, 忠直之聲, 震於朝野.夫忠孝一致, 致誠外先, 亦其孝親之推也.吾金氏固有相傳之世德, 而得李公之賢爲宅相者, 豈不有光? 又得其所植喬木, 以證故族之一端, 豈不重有辭乎? 夫何邇來, 老柏愛惜之情漸衰, 甘棠剪伐之戒不謹, 幾幾乎后山亭記之慮是犯, 可不懼哉? 願與諸宗深思當日李忠肅之意, 愈加愛護, 使喬木愈多, 觀者稱之曰: "孝哉! 金氏.墳菴之松, 猶愛之, 況於其祖乎? 苟能爾也, 是爲念祖修德之賢.賢德輩出, 豈惟世德之故族, 亦將爲國家之喬木、世臣也.是爲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