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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기(記)
  • 낙육재기 【경신년(1920)】(樂育齋記 【庚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기(記)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1.0001.TXT.0006
낙육재기 【경신년(1920)】
태인(泰仁) 서쪽, 용산(龍山) 남쪽에 고 반포재(伴圃齋) 이공(李公)의 학당이었던 옛 터가 남아 있었는데, 그 5대손 재형(載珩)과 광범(廣範)이 종당(宗黨)의 자제들을 위해 그 터에 서재(書齋)을 지어 '낙육(樂育)'이라 명명하고 나에게 한 마디 말로 권면해 줄 것을 청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즐거움에 대해 추맹씨(鄒孟氏 맹자)가 천하에 왕 노릇 하는 즐거움도 그 보다 못하다고 하였는데,주 17) 이는 매우 큰일인지라 덕이 천하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여기에 해당할 수 있거니와 횡거 선생(橫渠先生)이 또 영봉인(穎封人)을 들어 실증하였으니,주 18) 사람을 교화하는 한 가지 선이나 그릇을 완성해 주는 한 가지 재주라도 또한 이러한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고, 모든 천하 후진의 부형(父兄)과 스승, 존장이 된 자들은 큰 즐거움으로 스스로를 작게 여겨 자처하지 않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광범은 이러한 의리를 깊이 아는 자일 것이다.
반포공(伴圃公)은 영조와 정조의 태평성대한 때를 만나 일찍 문과(文科)에 급제하였고, 지위가 3품(品)까지 올랐으니, 문장과 현명함, 재능이 반드시 세상에 우뚝하였을 것이다. 만약 이에 걸맞게 나아갔다면 금자(金紫)와 은청(銀靑)주 19) 등 어느 관작이든 될 수 없었겠는가. 그런데 도리어 이것을 버리고 취하지 않았으며, 산림 속 여막으로 물러나 은거하였다. 설치한 것은 학사(學舍)와 강단(講壇)이고, 일삼은 것은 후진을 이끌어 도와주는 것이며, 가르친 것은 효제ㆍ충신(孝弟忠信)과 궁리ㆍ수신(窮理修身)의 도였으니, 가벼운 일과 중대한 일 사이에서 즐거움으로 삼을 바를 잘 가렸다고 이를 만하다. 사람에게 미친 아름다운 은혜를 생각하면 진작하는 자들이 성대하게 배출되었을 것인데, 그 시대가 멀고 유풍이 아득하여 대강 고찰할 수 없는 것이 한스럽다.
지금 광범이 이 일을 한 것은 본디 자제들을 교육할 곳을 마련하고, 또한 선조의 일을 계승하기 위해서이다. 한 가지 일에 자애와 효성의 도가 갖추어졌으니, 어느 누가 가상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천하의 일은 이름과 실상이 서로 걸맞기 어려우니, 실상이 있지 않으면 이름이 어디에 있겠는가. 청컨대 내가 '낙육'이라는 이름에 대해 인재를 기르는 실상을 논해보고자 한다.
그 실상의 도가 어디에 있겠는가? 또한 오직 반포공이 가르친 효제ㆍ충신과 궁리ㆍ수신의 도가 이것일 따름이다. 대저 글을 널리 읽고 힘써 기억하며, 문장을 공교롭게 하고 언사를 화려하게 하도록 가르치고, 일의 공적을 중시하고 명예를 좇게 하여 세상에 팔리기를 구하되 자기에게 체득함이 없는 것은 비록 인재를 기른다는 이름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실상이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부모에게 문안하고 어른에게 읍양(揖讓)의 예절을 지키며, 임금을 사랑하고 벗과 친하며,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넓히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여 자기의 사욕을 이기도록 가르쳐서 자신에게 덕을 갖추고 남에게 선을 미루어 가게 하는 것은 그 실상이 있고 그 이름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는 진실로 고금의 교육계에서 이미 증험한 허상과 실상이다.
그러나 근래에 서구의 학문이 한창 치성하고 풍조가 한번 바뀌게 되어서는 임금이나 어버이가 자신과 평등하다고 말하면서 나라를 어지럽히고 어버이에게 불효하는 무리들이 잇따라 나오고, 늙은 사람은 쓸모없다고 말하면서 능멸과 모욕을 방자하게 행하며, 금전을 숭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간절하게 권면하고 어려움을 위급하게 여기는 풍조가 씻은 듯이 없어졌으며, 이치를 궁구하는 것은 기이한 재주가 되어 하늘과 사람의 도가 어두워졌고, 몸을 닦는 것은 위생으로 간주되어 선왕의 예의가 무너졌다. 무릇 이것들은 모두 사람을 해치고 세상에 화를 끼치는 큰 환란이니, 더욱 통렬한 마음으로 싫어하고, 분한 모습으로 배척하여 물과 불처럼 여기며 밟아서는 안 되고, 독약처럼 여기며 먹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다.
청컨대 광범은 강인하고 굳세며 순수하고 올바른 사람을 맞이하고 미친 풍조를 잘 막아서 이 서재에서 헛되이 겉만 꾸미는 군자를 끊어 버리고 단단하게 오직 실상만을 가르치길 바란다. 진실함이 쌓이고 오래도록 힘쓴다면 훗날에 큰 덕을 지닌 사람이 이 서재 가운데에서 나오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진실로 그렇게 된다면 광범이 선조의 훌륭한 가업을 잇는 것은 참으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교육을 즐거움으로 삼는 공적이 또 어찌 횡거 선생이 영봉인을 허여한 것에 견주겠는가. 맹자가 말한 세 가지 즐거움 중 한 가지를 자신이 직접 소유하는 데에 진실로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니, 장차 눈을 씻고 그 날을 기다린다.
주석 17)천하의 …… 하였으니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 하는 것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고 형제가 무사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석 18)횡거 선생(橫渠先生)이 …… 실증하였으니
횡거 선생은 북송(北宋)의 성리학자 장재(張載, 1020~1077)로, 횡거는 그의 호이다. 영봉인은 춘추시대 정(鄭)나라 장공(莊公)의 신하 영고숙(穎考叔)으로, 국경을 지키는 관리[封人]를 지냈기에 영봉인이라 하였다. 영고숙은 장공이 아우 숙단(叔段)의 반역을 편든 어머니 강씨(姜氏)를 유폐하고 황천(黃泉)에 가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가 후회한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의 효심을 미루어서 장공에게 미치게 하여 그 역시 효자가 되게 하였다는 고사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원년(元年)》에 전해지고, 《시경(詩經)》 〈기취(旣醉)〉에 "효자의 효행은 다함이 없다. 길이 너의 동류에게 주라.〔孝子不匱, 永錫爾類.〕"라는 구절이 있는데, 장재가 이를 인용하여 〈서명(西銘)〉에서 "영재를 기르는 것은 영봉인이 동류에게 효심을 전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育英才, 潁封人之錫類.〕"라고 하였다.
주석 19)금자(金紫)와 은청(銀靑)
금자는 금으로 만든 인장(印章)과 자주빛 인끈을 뜻하는 '금인자수(金印紫綬)'의 준말이고, 은청은 은으로 만든 인장과 푸른 인끈을 뜻하는 '은인청수(銀印靑綬)'의 준말로, 모두 고관대작을 나타내는 말이다.
樂育齋記 【庚申】
泰仁之西, 龍山之陽, 有故伴圃齋 李公學堂遺址.其五世孫載珩、廣範爲宗黨子弟, 就其址築書齋, 名之以樂育, 請余一言而勖之.余惟得天下英材育之, 鄒孟氏謂其樂, 王天下且爲之下, 此大小大事, 宜若德足爲天下師者, 乃可以當之.而橫渠先生, 又進穎封人而實之.則知一善之化人、一材之成器, 亦足以與此.而凡爲天下後進之父兄師長者, 不容以其樂之大者而自小不居也審矣.廣範其惟深知此義者乎. 蓋伴圃公當英、正盛際, 早捷巍科, 位陞三品, 文章賢能, 必有卓然乎世者.稱此而進, 金紫、銀靑, 何所不可, 乃舍此不取, 退藏林廬, 所設者學舍講壇, 所事者誘掖後進, 所以敎之者, 孝悌忠信、窮理修身之道也, 可謂擇所樂於輕重之間者也.想其嘉惠之及, 蔚然有作者之輩出, 而恨其世遠風邈, 無所槩攷也.今廣範之爲此擧, 固爲子弟敎育地, 而亦所以述先事也.一物而慈孝之道備, 夫孰不嘉尙之也? 雖然, 天下事, 名與實相稱之爲難, 實之不存, 名何有焉? 余於樂育之名, 請得以論育才之實.實之道烏乎在? 亦惟伴圃公所敎孝悌忠信、窮理修身之道是已.夫敎之以博文强記、巧文麗辭, 重事功徇名譽, 求售乎世而無得乎己者, 雖有育才之名, 而非其實也.敎之以定省揖讓、愛君親友、格致省克, 進德乎己而推善於人者, 是則有其實而副其名者也.此固古今敎育界已驗之虛實.至若近日歐學方熾, 風潮一變, 謂君親平等, 而亂賊接踵矣; 謂年老無用, 而凌辱恣行矣; 謂金錢是崇, 而切偲急難之風掃如矣.窮理歸於奇技, 而天人之道晦; 修身看作衛生, 而先王之禮壞.凡此皆戕人禍世之大患, 尤當痛心而惡之, 扼腕而斥之, 如水火之不蹈, 烏喙之勿食者也.請廣範延剛毅純正, 能障狂潮, 絶虛文之君子於是齋, 斷斷然惟實之是敎, 眞之積而力之久, 則安知異日不有大德人出自是齋中也耶? 苟其然者, 廣範箕裘之紹, 固不須言, 其樂育之功, 又豈橫渠所與穎封人比哉? 孟子所謂三樂之一者, 固不害爲身親有之也, 方且拭眸而俟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