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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기(記)
  • 나재기 【기미년(1919)】(懶齋記 【己未】)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1 / 기(記)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1.0001.TXT.0005
나재기 【기미년(1919)】
방과 마루, 문과 창, 대야와 사발 등에 명(銘)을 두는 일은 고금의 사람이 잠시도 폐지한 적이 없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뜻을 여기에 담지 않은 것이 없기에 나는 나재공(懶齋公)의 편호(扁號)에 대해서 그가 법문(法門)을 깨고 어긴 것을 내심 괴이하게 여겼다가 그 재명(齋銘)을 읽고 난 뒤에 이름을 명한 것이 화둔 선생(華遯先生 전우(田愚))에게서 나왔고, 그 뜻이 매우 깊고 간절하여 보통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바가 아님을 알게 되었으니, 청컨대 그 말과 뜻을 부연하여 진술해도 되겠는가?
무릇 천하의 일이란, 민첩함과 노둔함은 각기 그 유를 따르고, 장점과 단점은 똑같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으니, 비록 조물주의 신묘함으로도 비오는 날씨와 갠 날씨를 둘 다 갖출 수 없고, 해와 달의 밝음으로도 낮과 밤을 함께 비출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게으른 것이 있는 뒤에 부지런한 것이 있으니, 부지런하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은 반드시 게으르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악에 게으른 자가 반드시 선에 부지런한 자이고, 영리에 부지런한 자가 바로 의리에 게으른 자임을 알겠다.
현재 공은 독으로 창을 내고 가시덤불로 대문을 만들어 살면서도 넓은 저택처럼 여기고, 여기저기 꿰맨 옷을 몸에 걸치면서도 생계를 꾸려 나가는 재주가 서툰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게으른 것이 이와 같았으니, 의당 부지런한 것은 삼천 삼백(三千三百)주 16)을 강론하고 일도양단에 힘쓰는 것이었다. 이 재실에 거처하면서 스승의 뜻을 좇음이여, 나는 그가 허물을 면했음을 알겠다.
내가 또 생각하건대, '게으름[懶]'이라는 글자는 '심(心)'방에 '힘입을 뢰[賴]'자로 이루어졌으며, 마음은 의리의 본심이 있고 또한 이욕의 사심이 있으니, 진실로 본심을 힘입는다면 이는 또한 악에 게으른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힘입는 것이 사심에 있다면 두렵게 여길 만한 것이 의리에 게으른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또 순(舜) 임금과 도척(盜跖)이 되는 기관(機關)이니, 더욱 삼가지 않을 수 없고, 인간 세상을 경계시키고 반성하게 할 수 있는 점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공에게 고하고 편액 뒤에 끌어다 이어 써서 이 재실에 오르는 자에게 질정하도록 권고하였다.
주석 16)삼천 삼백(三千三百)
크고 작은 예절을 말하는 것으로, 《예기(禮記)》 〈예기(禮器)〉에서는 "경례가 삼백 가지이고, 곡례가 삼천 가지인데, 그 근본은 하나이다.〔經禮三百, 曲禮三千, 其致一也.〕"라고 하였고, 《중용장구》 제27장에서는 "넉넉히 크도다. 예의가 삼백 가지이고, 위의가 삼천 가지이다.〔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라고 하였다.
懶齋記 【己未】
室堂、戶牖、盤盂之有銘, 今古人未之或廢, 而莫不勤勵之意是寓.余於懶齋公之扁號, 竊怪其用打乖法門, 及讀其齋銘, 然後知命名出自華遯先生, 而其意之深切, 有匪夷所度者矣, 請敷其說而衍其義可乎? 凡天下之事, 敏鈍各以其類, 長短均有得失, 雖以造化之神也, 而未得雙備於雨暘, 日月之明也, 而不能通照於晝夜, 而況於人乎? 是故有所懶而後有所勤, 無所不勤者, 必無所不懶者也. 吾知其懶於惡者, 必勤乎善者也; 營利勤者, 乃義之懶者也.方公甕蓽而爲廣廈, 身百結而不恥生理之疏.懶也若是, 宜其所勤者, 三千三百之是講, 而一刀兩段之是務也.居是齋而遵師旨乎, 知其免矣.夫抑余又念懶之爲字, 從心從賴, 心有義理之本心, 亦有利欲之私心, 苟本心之是賴, 斯不亦懶於惡者乎? 如所賴在於私心, 可畏者非懶於義乎? 此又舜、跖之機關, 尤不可不愼, 而有足以警省人世者.旣以告之於公, 牽連書之扁後, 諗質于登斯齋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