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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 《경주김씨가승》의 서문 【신사년(1941)】(《慶州金氏家乘》序 【辛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경주김씨가승》의 서문 【신사년(1941)】
사람은 조상에 근본을 두고 있으니, 조상은 당연히 존숭해야 한다. 그래서 《주례(周禮)》에 계세(繫世)를 정하고 소목(昭穆)을 분변하는 관직을 세운 것이다.주 108). 조상에 근본을 두고 나뉘어 종족이 되었으니, 종족은 당연히 친근하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정자(程子)가 보계(譜系)를 밝히고 종족을 거두라는 가르침을 둔 것이다. 이것이 일반 백성들의 집안에서 족보를 만든 이유이다.
종족이 비록 멀다 하더라도 조상의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자손이니, 조상의 마음을 체득하였기에 이에 친근하게 여기고자 한 것이고, 친근함을 똑같이 하고자 하였기에 널리 거두어 함께 기록하고 이를 '대보(大譜)'라 이른 것이니, 뜻이 참으로 선하다.
그러나 세대가 멀어지면 자세히 기록하기 어렵고, 수가 많아지면 정밀하게 기록하기 어려운 것은 형세이고, 게다가 근대에는 사람의 감정이 그 사이에서 행해지는 바가 없지 않기 때문에 뒤섞여 나뉘고 어지럽게 변화되어 폐단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니, 이것이 어찌 족보의 본뜻이겠는가. 노소씨(老蘇氏) 소순(蘇洵))가 단지 4대의 친족만을 족보로 만든 것주 109)은 협소한 것 같다고 의심하겠지만, 일찍 이러한 폐단을 없애는 데에 견해가 없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일찍이 대동(大同)의 마음으로 폐단을 없애는 경계를 보존하면서 두 가지 사이에서 절충하고 참작하여 일파의 족보나 혹은 일파 내의 파보(派譜)를 만드는 것이 족보의 본뜻을 얻은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오늘날 부풍군(扶風郡)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족보와 같은 것이 이것이다.
경주 김씨는 대족으로 그 수가 전국에 두루 퍼져 있는데, 부풍에 거주하는 종족은 정숙공(貞肅公) 9대손 찬성공파(贊成公派)이고, 이 족보는 찬성공 6대손 성균 진사(成均進士) 휘 어룡(馭龍) 이하의 자손을 기록한 것이니, 세대가 가까워 상세하게 기록하기 쉽고, 수가 적어 정밀하게 기록하기 쉬운 것으로 이와 같은 것이 없다. 오직 수가 적고 세대가 가까운 종족을 정밀하고 상세하게 기록한 다음에 돈후한 마음을 미루어서 세대가 멀고 수가 많은 종족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으니, 이것이 참으로 조상을 존숭하고, 종족을 친근히 하며, 세속의 폐단을 없애고, 사법(史法)을 얻어서 한결같이 인위적인 목적이 없이 의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를 수 있다.
일이 모두 끝난 뒤에 진사공(進士公) 9대손 홍무(弘武)가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는데, 그 일이 내가 일찍이 논했던 것과 같음을 기뻐하여 사양하지 않고 서문을 지었다. 대대로 쌓은 덕의 현저함과 규례의 바름과 같은 것은 편집한 가운데에 갖추어져 있으니, 이에 겹쳐 진술하지 않았다.
- 주석 108)주례(周禮)에 …… 것이다
- 《주례(周禮)》 〈소사(小史)〉에 "소사는 나라의 기록을 관장하여 세계(世繫)를 정하고 소(昭)와 목(穆)을 분변한다.〔小史掌邦国之志, 奠繫世, 辨昭穆.〕"라는 말이 보인다.
- 주석 109)노소씨(老蘇氏) …… 것
- 노소씨는 송(宋)나라의 문장가 소순(蘇洵, 1009~1066)으로, 그는 고향인 미산현(眉山縣)에 보각(譜閣)을 짓고 미산 소씨(眉山蘇氏) 족보를 만들었는데, 그에 관한 내용이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족보서(族譜序)〉에 전해진다.
《慶州金氏家乘》序 【辛巳】
人本乎祖, 祖當尊. 故《周禮》立奠繫世辨昭穆之官. 本祖而分爲族, 族當親. 故程子有明譜系收宗族之訓. 此人家族譜之所由作也. 蓋族雖遠, 自祖視之, 均是子孫. 體祖心, 斯欲親, 親欲均, 斯廣收同錄, 而謂之大譜, 意誠善矣. 然疏遠者難詳, 衆大者難精勢也. 加以近世人情, 不無有所爲於其間. 故錯分亂化, 弊不勝言, 豈譜之本意哉? 老蘇氏只譜四世之親, 疑若狹小, 而不爲無見於早去此弊也. 余嘗謂以大同之心, 存去弊之戒, 折酌於二者之間, 而作一派之譜, 或派中之派譜者爲得之, 若今日扶風郡 慶州金氏之譜是已. 慶州氏大族, 其麗遍全國, 居扶者, 貞肅公九世孫贊成公派. 而是譜也, 編自贊成公六世孫成均進士諱馭龍以下子孫, 則其近易詳, 寡易精, 莫此若也. 惟其精詳於寡近, 乃可推厚而達於遠衆. 是眞可謂尊祖親族, 去俗弊得史法, 一無所爲而出於理義者也. 功旣訖, 進士公九代孫弘武謁余以弁卷之文. 喜其事之同余所嘗論者, 不辭而爲之書. 若其世德之顯、規例之正, 備在編中, 玆不疊陳云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