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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 《진주강씨가승》의 서문 【임오년(1942)】(《晉州姜氏家乘》序 【壬午】)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0.0001.TXT.0029
《진주강씨가승》의 서문 【임오년(1942)】
아버지는 자식의 하늘이니, 두 하늘이 없고, 할아버지는 사람의 근본이니, 근본은 하나일 뿐이다. 아버지와 자식은 오륜(五倫)의 으뜸이고, 할아버지와 손자는 같은 기(氣)를 전하는 관계이니, 만약 하늘을 둘로 하고, 근본을 둘로 한다면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人道]가 사라질 것이고, 사람이 살아나가는 이치[生理]가 끊어질 것이다.
옛사람은 생존해 계신 어버이를 섬기고, 먼 조상을 추모하는 것 이외에 선조를 받드는 의절에 관계된 것들에 대해서 모두 계속 생각하며 다른 데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이상 계세(繫世)주 99)의 순서와 소목(昭穆)주 100)의 차례들은 삼가 기록해 지켜서 조정의 소사(小史)주 101)가 결정ㆍ변별하기를 기다렸고, 후손의 유래와 대대로 쌓아온 미덕의 진술이 뚜렷하게 소부(騷賦 시문(詩文))의 작품에서 나왔던 것은 모두 그 근본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혹 그 지킴을 잃게 되면 전전긍긍하며 단지 아는 것만을 기술하고 감히 적량공(狄梁公)과 주문공(朱文公)을 조상으로 삼지 않은 것주 102)이 송(宋)과 명(明)의 시대에 나타났던 것은 또한 근본이 둘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근래 이후로 간혹 까마득하게 오래전부터 있었던 조상을 버리거나 간혹 대대로 현존했던 조상을 끊어 버리고 여러 신위의 귀신을 몰아서 전 시대에 후사가 없는 남의 집안의 사람 아래로 나아가 억지로 아버지와 아들, 할아버지와 손자라 명명하되 곽숭도(郭崇鞱)와 황악(黄渥)의 무리가 거짓으로 연합했던 일주 103) 뿐만 아닌 것을 꺼리지 않고 행하여 스스로 천륜과 근본을 끊는 자가 많은 것인가? 아, 교화가 밝지 못하여 인의(仁義)가 꽉 막히고, 간사함과 교활함으로 글을 놀려 사람을 악에 빠뜨린 자들이 여기에 함께 죄가 있을 것이다.
우리 동문 강군(姜君) 동영(東泳)의 선조가 진양(晉陽 진주(晋州))의 옛 종족으로서 호남으로 옮겨 간 것이 장릉(長陵 인조(仁祖)) 병자호란 때에 있었으니, 이로 인하여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다. 지금 군에 이르러 다른 파에 붙여서 족보를 만든 잘못을 깨닫고서 대인(大人)에게 아뢰어 고쳐 바로잡을 때에 우리나라 전체 강씨(姜氏)의 시조인 원수공(元帥公) 휘 이식(以式)을 받들어 책머리에 쓰고, 그 이하 알지 못하는 선조는 빼놓은 채 10대조 휘 회(檜)를 차례로 써서 중조(中祖)로 삼아 그 아래에 연달아 써서 자기와 아들에 이르렀고, 인하여 10대에서 같이 나온 종족과 함께 저절로 한 파의 족보가 완성되었다.
이리하여 천륜이 바르게 되고, 큰 근본이 확립되었으며, 인(仁)과 의(義)가 아울러 얻어져서 산 사람의 이치가 다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게 되었으니, 경사와 복록이 끝이 없고 문호가 창대해지리란 것은 계(契)를 잡고 기다릴 수 있다.주 104) 그런데 스스로 근본을 끊고도 미혹하여 되돌아올 줄 모르는 저 사람들은 비록 혹 한때를 보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비유하면 나무 위에 붙어 살아가는 식물이나 수면 위에 떠도는 부평초와 같으니, 우연히 풍상이나 파랑을 만나게 된다면 어찌 무너지고 흩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애처로울 따름이다.
군이 백 리 먼 곳에서 쇠약한 몸을 이끌고 와서 나에게 그 일을 서술하고 족보의 서문으로 삼기를 청하니, 내가 기쁘게 듣고 사양하지 않으면서 또한 말하기를, "《맹자(孟子)》에 '상도가 바르게 되면 백성이 떨쳐 일어나서 이에 사특함이 없어진다.주 105)'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 군의 이 일은 이미 상도가 바르게 됨을 얻은 것이다. 때문에 이 일을 기록하여 현재와 훗날의 강씨(姜氏)들에게 권면하고, 아울러 이 세상의 백성들이 떨쳐 일어나서 사특함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주석 99)계세(繫世)
가족의 세대가 서로 이어져 온 계통, 즉 세계(世系)를 말하는 듯하다.
주석 100)소목(昭穆)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를 이르는 말로, 시조의 1세(世)를 가운데 모시고 2ㆍ4ㆍ6세를 왼쪽 줄인 소에, 3ㆍ5ㆍ7세를 오른 줄인 목에 모신다.
주석 101)조정의 소사(小史)
소사는 국사(國事)의 기록이나 계보 등을 맡아보던 주(周)나라 시대의 관명으로, 《주례》 〈소사(小史)〉에 "소사는 나라의 기록을 관장하여 세계를 정하고 소목을 변별한다.〔小史掌邦國之志, 奠系世, 辨昭穆.〕"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는 호적(戶籍)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관리를 비유하는 말인 듯하다.
주석 102)적량공(狄梁公)과 …… 것
적량공은 양국공(梁國公)에 봉해진 당(唐)나라의 명상(名相) 적인걸(狄仁傑)을 말하는데, 북송(北宋) 때에 적인걸의 후손 한 사람이 추밀사(樞密使) 적청(狄靑)에게 적인걸의 화상(畫像)과 고신 10여 통을 가지고 와서 적인걸이 그의 먼 조상이 된다고 하였지만, 적청은 "내가 어찌 한때의 영화와 존귀함을 빙자하여 감히 그분의 후예라고 하겠는가."하고는 적인걸을 조상으로 삼지 않았다고 한다. 《宋史 卷290 狄靑傳》 주문공은 송(宋)나라 때 이학(理學)을 집대성한 주희(朱熹, 1130~1200)로, 문공(文公)은 그의 시호이다. 명(明)나라를 창업한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이 유신(儒臣)들과 더불어 옥첩(玉牒 보첩(譜牒))의 편수를 의논하면서 주문공을 조상으로 삼으려고 할 적에 휘주(徽州) 출신의 전사(典史) 주(朱) 아무개를 만나고서 문공의 후손이냐고 물었는데, 그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태조가 "한낱 전사임에도 경솔히 주자(朱子)를 조상으로 삼지 않는데, 우리 국가가 어찌 주자를 조상으로 삼겠는가.'하고서는 이전의 의논들을 모두 퇴각시켰다고 한다. 《五洲衍文長箋散稿 姓氏譜牒辨證說》
주석 103)곽숭도(郭崇鞱)와 …… 것
곽숭도는 오대(五代) 때의 후당(後唐) 사람으로, 그가 추밀사가 되어 용사(用事)할 때에 재상 두로혁(豆盧革) 등이 그에게 아부하면서 "분양왕(汾陽王) 곽자의(郭子儀)는 본디 태원(太原) 출신으로 화음(華陰)에 이주하였고, 공은 대대로 안문(雁門)에 살았는데, 어떻게 분양왕의 지파가 되는가?"라고 묻자, 곽숭도가 "난리를 만나 보첩을 유실하였는데, 선인(先人)께서 분양왕의 4대손이 된다고 하였다."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해진다. 《舊五代史 卷57》 황악은 송나라 회계(會稽) 사람으로, 7세 이상의 보첩을 잃어버리자, 당시 소식(蘇軾)의 문하에 노닐어 소문 사학사(四學士)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황정견(黃庭堅)이 자신과 나이가 비슷하고 같은 황전(黃田) 출신이어서 형제의 항렬로 삼아 종계(宗系)를 합쳤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後集 卷1 人倫部 同譜復合》
주석 104)계(契)를 …… 있다
계는 둘로 나눈 부신(符信) 중 하나를 말하는 것으로, 앞으로의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에 대한 확신을 말한다.
주석 105)상도가 …… 없어진다
《맹자》 〈진심 하〉에 보인다.
《晉州姜氏家乘》序 【壬午】
父者, 子之天也, 天無二焉; 祖者, 人之本也, 本一而已. 父子爲五倫之首, 祖孫爲一氣之傳, 若兩天而二本, 則人道蔑如, 生理絶矣. 古之人, 自事生追遠以外, 凡干奉先之節, 旣皆念念而不他適矣. 若乃父祖以上繫世之序、昭穆之次, 則謹書而守之, 以待朝家小史之奠辨. 至於苗裔之自、世德之陳, 班班出自騷賦之作者, 皆所以重其本也. 不幸而或失其守, 則兢兢然只述其所知, 而不敢祖狄梁公、朱文公, 猶見於宋、明之世者, 亦懼二其本故也. 夫何挽近以來, 或棄其冥冥自在之祖, 或截其世世現在之祖, 驅率累位之鬼, 而就人家前代無後之下, 强名以父子祖孫, 而不憚爲不啻韜、渥輩冒聯之爲而自絶其天本者之多也? 嗚呼, 敎化不明, 仁義充塞, 而奸猾舞文, 陷人於惡者, 與有罪焉. 吾同門姜君 東泳之先, 以晉陽故族, 轉徙湖南者, 粤在長陵丙子之亂, 而因以不振矣. 今至于君, 覺其附譜他派之誤, 告大人而改正之, 奉大東全姜始祖元帥公諱以式, 書之卷首, 而闕其下所不知, 次書十世祖諱檜爲中祖, 連書其下, 以至于己及子, 因與宗族之同出於十世者, 自成一派之譜. 於是乎天倫正大本立, 仁與義幷得, 而生人之理, 源源不窮. 慶祿之無疆, 門戶之昌大, 可執契而俟矣. 彼自絶根本, 而迷不知返者, 雖或可保於一時, 譬如木上之寄生, 水面之浮萍, 遇著風霜波浪, 而安得不敗散哉? 可哀也已. 君百里曳衰, 請敍其事爲譜序. 余喜聞而不辭, 且曰: "《孟子》有云: '經正則庶民興, 斯無邪慝. ' 今君此擧也, 旣得經正矣. 故書之爲姜氏今後勸, 幷有望於斯世之民興而無慝云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