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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 가승 서문 【임신년(1932)】(家乘序 【壬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0.0001.TXT.0023
가승 서문 【임신년(1932)】
부령(扶寧) 김씨(金氏)는 만력(萬曆) 갑신년(1584)에 처음으로 대보(大譜)를 만들었고, 그 뒤로 각 파에서 여러 차례 족보를 만들었는데, 우리 직장공파(直長公派)는 인릉(仁陵) 계사년(1833)과 홍릉(洪陵) 임오년(1882)ㆍ정미년(1907)에 세 차례 족보를 만들었다. 갑신년 족보는 너무 소략하였지만 법이 매우 엄격하였으니, 시대가 고대여서 질박하였다. 계사년 족보는 비록 상세하였지만 이미 법이 문란해짐을 면치 못하였고, 임오년 족보는 법의 문란함이 더욱 심하였으니, 세대가 내려오면서 변천된 때문이다. 정미년 족보를 만들 때에는 내가 정서(正書)의 일을 하여 임오년 족보의 잘못을 많이 바로잡았으나, 지위가 낮았기 때문에 다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각 파의 족보가 거의 대부분 이와 같았으니, 모두 세상의 풍속에 얽매였기 때문이다
삼가 일찍이 뜻이 같은 사람과 함께 한번 족보의 법을 정하고 대동보(大同譜)를 만들어서 인륜으로 하여금 제 자리를 잡게 하고자 하였지만, 오늘날의 세도와 인심을 헤아려 볼 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근래에 들으니, 종중(宗中)에서 대동보를 만들자는 의론이 있다고 한다. 명분은 아름답지만, 실상은 법이 반드시 문란할 것이다. 족보가 족보답지 않기에 참여하기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인데, 더욱이 또 시대의 의리에 편안하지 못한 점이 있음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만약 정미년 파보(派譜)를 기준으로 하여 대대로 쌓아 내려온 미덕은 쓰지 말고 왕세계(王世系)와 방계(旁系) 8대를 엮되 다만 자손을 이어 기록하여 정밀하면서도 간략하게 교정하고 아울러 예전에 미진했던 점을 바로잡아 가로로 8층을 만들고 글자의 모양을 작게 하여 100여 판(板)을 넘지 않도록 한 다음에 바다를 건너 벽지 같은 곳에서 수십 질(帙)을 인쇄하여 펴낸다면 법과 의리, 일 세 가지가 모두 마땅함을 얻겠지만 또한 기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한 집안의 가승(家乘)을 만들었다. 위로는 단지 우리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적고, 아래로는 우리 손자의 항렬에 이르러 그쳤다. 선조의 행적이 미비한 것과 예전의 족보에 잘못된 것들은 기록하여 고증하고 안설(按說)주 84)을 붙였다. 이것을 몇 본(本) 베껴 자손들이 각기 소장하였다가 천기가 돌아오고 산천이 맑아져서 법이 정해지고 의리가 편안한 날에 이 본에 의거하여 파보(派譜)나 대보(大譜)에 족보를 함께 하도록 했다. 만약 그런 때가 없다면 단지 이 본을 지켜서 그 아래에 자손을 이어 기록하여 길이 우리 집안의 가법(家法)으로 삼게 할 따름이다.
주석 84)안설(按說)
소주(小註) 안에서 '상고하건대[按]'로 시작되는 주설(註說)을 말한다.
家乘序 【壬申】
扶寧之金, 始有萬曆甲申大譜, 厥後各派累譜, 而吾直長公派, 則有仁陵癸巳、洪陵壬午ㆍ丁未三譜. 甲譜雖太畧, 而法甚嚴, 時古而質也. 癸譜雖詳, 已不免法亂, 壬譜則法亂尤甚, 世降而變也. 丁譜日, 余爲正書之任, 多正任譜之失, 以位卑莫克盡焉. 各派之譜, 率多若是, 總爲世風囿也. 竊嘗欲與同志者一定譜法, 以修大同之編, 使人倫各得其所, 計今世道人心, 其道無由. 近聞宗中有大譜議, 名則美矣, 其實則法必亂, 譜不譜而有難與焉者, 而況復有時義之未安乎? 若得就丁未派譜, 勿書世德, 編王世系旁八世, 但續以子孫錄, 校得精簡, 幷正前日未盡者, 橫作八層, 細其字樣, 使不過百餘板, 越海若僻地, 印出數十帙, 則法義與事三得其當, 而亦不可必矣. 故乃作吾一家之乘, 上則只錄吾之所自出, 下則至吾孫行而止, 其有先蹟未備及誤於前譜者, 錄之攷證, 附以按說. 鈔得幾本, 子孫各藏, 使於天返河淸, 法定義安日, 依此本同譜於派若大焉. 如無其時, 但得守此本, 續錄子孫於其下, 永爲吾家家法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