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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 사경재문계안 서문 【임오년(1942)】(思敬齋門契案序 【壬午】)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0.0001.TXT.0021
사경재문계안 서문 【임오년(1942)】
우리 김씨(金氏)는 군사공(郡事公 김광서(金光敍))이 처음 부안(扶安)의 석동산(席洞山)에 안장되고, 대호군공(大護軍公 김당(金璫))과 직장공(直長公)이 두 아들로서 부장되면서부터 두 파의 자손이 대대로 이곳에 계장(繼葬)되었는데, 나라 사람들이 자자하게 김씨 선조의 산이라 일컬었다.
우리 파는 직장공에서 나왔는데, 첨지공(僉知公)과 임실공(任實公)이 분동(粉洞)에 따로 안장된 것을 제외하고는 5,6대 23여의 신위가 모두 석동에 있다. 직장공 묘사(墓祀)는 석동의 원 재실(齋室)에서 대호군공과 함께 군사공의 제삿날에 행하였고, 계장한 여러 신위는 분동파의 재실에서 나누어 희생과 제수를 받들어 올리고 같은 날에 합사(合祀)하였는데, 지역이 조금 멀어서 의례에 혹 허물이 있었다.
이에 병인년(1926) 봄에 묘 근처에 따로 병사(丙舍)를 짓고 《논어》의 가르침을 취하여 '사경재(思敬齋)'라 이름을 붙였다. 비용은 죽계(竹溪 김횡(金鋐))과 화곡(火谷 김명(金銘)) 두 선조를 배향한 유천서원(柳川書院)의 옛 제전(祭田) 19마지기[斗落]를 매각한 금액에서 내고, 각 파에 배당하여 추렴한 것을 보태어 마련하였다. 비록 그럭저럭 완공하였지만 유지할 자본을 여전히 많이 갖추지 못한 지가 거의 20여 년이 되어갔다.
속수옹(涑水翁 사마광(司馬光))이 말하기를, "집안을 다스리는 자는 항상 조금씩 여분을 남겨 두어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종족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어찌 유독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생각지 못한 일을 기다릴 것도 없이 현재 갖추지 못한 것을 근심함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올해 10월 상정(上丁 매달 음력으로 상순에 드는 정의 날)에 제사를 지낸 뒤에 여러 사람의 의논이 일제히 일어나 이 재실에서 제사를 지내는 자는 나이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빠짐없이 각기 약간의 금액을 내어 하나의 계를 세워 더욱 부지런히 축적하고 더욱 오래도록 전함으로써 가깝게는 현재의 근심을 풀고, 멀게는 재화가 넘쳐나기를 도모하였으니, 대체로 작년 가을에 10여 사람이 처음 창립한 것을 인하여 넓혀 확대한 것이다.
성명을 나열해 쓰고 아울러 출연한 금액을 기록하여 '사경재문계안(思敬齋門契案)'이라 명명하고 나에게 서문을 써 줄 것을 청하니, 내가 말하였다.
"이런 계를 두다니, 훌륭한 일이다. 무릇 그런 뒤에야 제사에 공경함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안과 밖이 동일하고 처음과 끝이 온전해야 쇠퇴하지 않음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니, 감히 서문을 기꺼이 써서 서로 힘쓰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계는 선조를 길이 사모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세상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위함이 있어 행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후손이 장성하는 대로 해마다 추가해 넣을 것이니, 이것이 또 기록할 만한 훌륭한 규범이다."
思敬齋門契案序 【壬午】
吾金自郡事公始葬扶之席洞山, 大護軍公、直長公以二子祔焉, 兩派子孫, 世世繼之. 邦人藉藉稱金氏祖山. 吾派出自直長公, 而僉知公、任實公, 別葬粉洞以外, 五六世二十餘位, 皆在席洞. 直長公墓祀, 自席洞元齋, 同大護軍公, 行於郡事公祀日, 繼葬累位, 分自粉洞派齋, 奉進牲需, 合祀同日, 而地稍遠, 禮或有愆. 乃於丙寅春, 別築丙舍於墓近, 取論語之訓, 扁以思敬齋. 費出竹溪、火谷二祖柳川院舊日祭田十九斗落斥賣金, 助以各派排醵而成之. 雖苟完矣, 然維持之資, 尙多未備者, 殆將卄載. 涑水翁曰: "治家者, 常須稍存贏餘, 以備不虞, 洽宗事者, 何獨不然? 況不待不虞而現病未備乎? 是歲十月上丁, 行祀之餘, 僉議齊發, 凡祀祖于是齋者, 無遺老少, 各出若干金, 樹一契, 蓄之彌勤, 傳之彌久, 用圖近紓而遠贏, 蓋因昨秋十餘人草創而張大之也. 旣列書姓名, 幷記所出金額, 命之曰'思敬齋門契案', 請余序之. 余曰: "有是哉, 善物也. 夫然後於祭思敬乎. 外內一, 始終全, 庶保不替矣. 敢不樂爲之書而交勖焉. 玆契也, 出於永慕祖先, 而非如世人一時有爲而爲之者. 故隨其長成, 逐年追入, 是又善規之可書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