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역/표점
- 국역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 《평해황씨세적》 서문 【을유년(1945)】(《平海黃氏世蹟》序 【乙酉】)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평해황씨세적》 서문 【을유년(1945)】
《예기》에서 말하기를, "선조에게 선한 행실이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것은 밝지 못한 것이고, 그것을 알면서도 전하지 않는 것은 어질지 못한 것이다."주 53)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자신의 이름이 선조 다음에 있는 것은 순종함이요, 후세에 밝게 보여 주는 것은 가르침이다.주 54)"라고 하였으니, 대체로 선조의 선한 행실을 칭송하고 찬양하여 천하에 밝게 보이는 것은 진실로 효이거니와 그 선한 행실을 본받아서 몸을 정숙하게 하고 후손에게 전하는 것은 더욱 그 효를 드러내는 것이다.
무릇 본받을 만한 선한 행실은 본디 예로부터 성현(聖賢)이 있지만, 멀지 않고 가까우며 소원하지 않고 친밀하여 취하는 데에 어렵지 않은 사람으로 또 누가 그 선조와 같겠는가. 이것이 옛적 이윤(伊尹)과 주공(周公)이 임금에게 고할 때마다 걸핏하면 탕(湯)과 문무(文武)를 일컬었던 이유이고, 오늘날 황군 건익(黃君鍵翼)이 《세적》을 만든 이유이다. 황씨의 문헌이 나라 초기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끊어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거니와 군이 지(誌)ㆍ갈(碣)ㆍ장(狀)ㆍ서(序)에 있는 선한 행실을 기록하여 빠짐없이 합쳐서 한 번 보면 훤히 알 수 있게 한 것도 또한 부지런한 일이었다.
아, 인간의 어떤 세상에 경전이 나라를 망친 도구가 되고, 유가의 무리들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물건이 되어 꾸짖음과 욕이 산처럼 쌓인 적이 있었던가? 생존해 있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들어 아는 것이 없다고 이미 배척하였으니, 오랜 세월이 지난 선대를 배척하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군은 이러한 때에 경전과 유학을 생각했던 조상을 사모하고 본받는 데에 부지런하였으니, 이것이 세속 사람은 어질지 못하고 밝지 못한데다 순종하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여 불효가 되고, 군은 어질고 밝은데다 순종하고 가르쳐서 효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른바 "세상 사람은 떳떳함이 없고, 서군(徐君)은 떳떳함이 있다."주 55)는 것을 나 또한 말하니, 황씨의 후손되는 사람들이 어찌 편집의 뜻을 체득하여 떳떳함이 있는 도에 힘쓰지 않겠는가. 게다가 우리 조정은 중세 이후로 단지 벌열(閥閱)과 문화(文華)주 56)만을 서로 숭상하고 내실이 없었으니, 이것이 멸망을 취하고 꾸짖음과 욕을 가져오게 된 이유이다. 만약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 편찬으로 남들보다 뛰어남을 구하려 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군에게 결단코 이러한 마음이 없음을 알고 있으니, 자신의 몸으로 보존하기를 바란다.
- 주석 53)선조에게 …… 것이다
- 《예기》 〈제통(祭統)〉에 보인다.
- 주석 54)자신이 …… 가르침이다
- 《예기》 〈제통(祭統)〉에 보인다.
- 주석 55)세상 …… 있다
- 서군은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서막(徐邈)을 가리킨다. 당시 사람들이 권력자의 취향이나 사회 풍조에 따라 변하였지만, 서막은 평소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였는데, 진(晉)나라 노흠(盧欽)이 평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떳떳함이 없고, 서공은 떳떳함이 있다.〔世人之無常, 而徐公之有常也.〕"라고 하였다. 《三國志 卷27 魏書 徐邈傳》
- 주석 56)벌열(閥閱)과 문화(文華)
- 벌열은 나라에 공로가 많고 벼슬이 성대한 것을 말하고, 문화는 내실이 없이 외면만 화려한 것을 말한다.
《平海黃氏世蹟》序 【乙酉】
《記》曰: "先祖有善而不知, 不明也; 知而不傳, 不仁也. " 又曰: "身比焉, 順也; 示後世, 敎也. " 蓋稱揚先祖之善, 明著天下, 固孝也, 而取則其善, 淑身而裕後, 則尤見其孝. 夫善之可則, 固有從上聖賢, 然不遠伊邇, 不疎伊親, 取之不難, 又孰若其祖乎? 此昔之伊、周所以告君動稱湯、文而今日黃君 鍵翼《世蹟》之所由作也. 黃氏文獻, 自國初至于近世而不絶, 固盛矣. 君於紀善之誌、碣、狀、序, 聯輯無遺, 一覽瞭然, 亦勤矣. 嗚呼, 人間何世, 經傳爲亡國之具, 儒流爲誤人之物, 詬罵之積山如也? 生存之父祖, 已斥以無聞知, 則何有於已久之先世乎? 君乃以此時, 惟經惟儒之祖, 是慕是則之勤. 此世俗所以不仁明不順敎爲不孝, 而君得爲仁明順敎而孝者也. 所謂世人無常而徐君有常者, 吾亦云爾. 爲黃氏後進者, 盍體編輯之意, 勉有常之道乎? 抑我朝中世以降, 徒以閥閱文華相尙而無其實. 此所以取滅亡而來詬罵者. 如曰: "不免慣習, 將以是編求多于人. " 則吾知君之決無是也, 請以身保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