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 국역/표점
  • 국역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 《덕계유고》 서문 【을축년(1925)】(《德溪遺稿》序 【乙丑】)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0.0001.TXT.0012
《덕계유고》 서문 【을축년(1925)】
맹자가 말하기를, "그 시를 외우고 그 글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하면 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삼가 일찍이 생각건대 이미 그 사람의 어짊을 알고 있으면서 그 시와 글을 외고 읽지 않는다면 더더욱 안 될 것이다. 기억하건대, 옛적에 선인(先人 선친)의 가르침을 공경히 받들고 있었을 때에 말씀하시기를, "근래 고 덕계(德溪) 최공(崔公)은 효성이 도타운 사람이다."하셨고, 얼마 뒤 여러 장로(長老)들에게 들었을 때에도 또한 말이 한결같고 이간하는 말이 없었기에 당시 나이가 어렸음에도 마음속으로 삼가 앙모할 줄 알았다.
몇 해 전에 공의 자손 경렬(暻烈)과 인렬(寅烈) 두 어른을 따라 공의 장(狀)ㆍ전(傳)ㆍ천(薦)의 글을 보고서 어린 시절에는 온청(溫凊)을 살피는 일주 46)에 부지런했고, 상사(喪事)와 제사에 마음과 의례가 모두 극진했으며, 백발의 노령 때에는 어린아이 때처럼 부모를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했던 것이 참으로 '효성이 도타웠다'는 일컬음에 부합하였음을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덕(德)을 아는 말에 감복하면서도 오히려 공의 글을 미처 읽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 그러다가 이 해 가을에 또 공의 종손 민렬(敏烈) 군을 따라 공의 시와 글을 모두 다 읽을 수 있었는데, 영탄(咏歎 시)과, 기(記), 차(箚)의 사이에 드러난 것들이 대체로 육아(蓼莪)와 풍수(風樹)주 47)에 관한 뜻이 많았으니, 이른바 '한 번 말을 할 때에도 감히 부모를 잊지 않는다.'라는 것처럼 공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 나머지도 또한 모두 인륜을 바로잡고 의리를 독실하게 하며, 풍속을 교화시키고 후배를 권장하는 말이었는데, 겸손하고 온화하며 간절하고 진실한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하여 떨쳐 일어나게 하였으니, 이른바 효자와 어진 사람의 말이 이와 같은 것인가?
아, 공의 글은 적막하다고 이를 만하니, 그 저작이 또한 걸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몸소 실천한 끝에 터득하여 다른 사람에게 미쳐가는 바탕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아내에게 모범이 되어 맹광(孟光)주 48)과 같은 현숙한 부인이 있고, 형제간에 우애하여 계방(季方)주 49)과 같은 동생이 되기 어려운 동생이 있었으니, 한 가지 의절로 공을 총괄할 수 없음이 또 분명하다. 그런데 저 높다란 관을 쓰고 패옥을 늘어뜨린 채 세상에 자신을 내세우는 자들은 그 뛰어난 의론과 풍부한 작품이 의당 세도에 도움이 있을 것 같은데, 그 귀결을 궁구하면 혹 윤리를 거스르고 도의를 해치거나 풍속을 무너뜨리고 후배를 잘못되게 하는 것을 면치 못하고 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자신의 몸으로 실천한 데에서 터득함이 없어 학문이 진실하지 못한 때문이다.
나는 공에게 통가(通家 인척(姻戚)의 후생이 되기에 서문을 짓는 일을 감히 사양하지 못하였는데, 다행히 공의 글을 읽고서 더욱 깊이 공을 알게 되었으니, 일찍이 감탄했던 바를 써서 오늘날과 훗날의 상론가(尙論家 비평가)로 하여금 시와 글을 암송하고 읽는 것이 그 사람 때문이고, 그 문장 때문이 아님을 알게 하며, 삼가 추부자(鄒夫子 맹자)의 말 밖에 숨어 있는 뜻을 드러낼 따름이다.
주석 46)온청(溫凊)을 …… 일
부모님을 모시는 예절로, 추위와 더위에 손상되지 않도록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을 말한다.
주석 47)육아(蓼莪)와 풍수(風樹)
육아는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슬픔과 추모를 노래한 것이며, 풍수는 어버이가 세상을 떠나 다시는 봉양할 수 없는 슬픔을 말한 것으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주석 48)맹광(孟光)
후한(後漢) 때 양홍(梁鴻)의 아내로, 현숙한 아내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다. 본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학문을 좋아하고 벼슬을 구하지 않는 남편을 따라 패릉산(覇陵山)에 은둔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남편을 지극히 공경하여 밥을 지어 남편에게 올릴 때마다 밥상을 자기 이마의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는 거안제미(擧案齊眉)의 고사가 전해진다. 《後漢書 卷113 逸民列傳 梁鴻》
주석 49)계방(季方)
동한(東漢) 때 진식(陳寔)의 둘째 아들인 진심(陳諶)의 자로, 그의 형 진기(陳紀 원방(元方))과 함께 총명하고 효성스럽기로 유명하여 "원방은 아우가 되기 어렵고, 계방은 형이 되기 어렵다.〔元方難爲弟, 季方難爲兄.〕"라는 난형난제(難兄難弟)의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62 陳寔列傳》
《德溪遺稿》序 【乙丑】
孟子曰: "誦其詩讀其書, 不知其人可乎?" 竊嘗以爲旣知其人之賢, 而不誦讀其詩、書, 則尤不可也. 記昔敬承先人敎, 有曰: "近故德溪 崔公, 純孝人也. " 旣而聞諸諸長老, 亦一辭而無間, 時年尙幼, 然心竊識慕矣. 年前從公之孫暻烈、寅烈二丈, 得見公狀、傳、薦文, 備知齠齔溫凊之勤、喪祭情文之盡、白首孺慕之至, 允合純孝之稱, 而服知德之言矣. 猶以未及讀公之文爲恨, 是歲秋, 又從公從孫敏烈君, 盡得公詩若文而讀之. 其發於咏歎、記、箚之間者, 大抵多蓼莪、風樹之意. 所謂一出言而不敢忘父母者, 公其人焉. 其餘亦皆正倫篤義, 化俗獎後之言, 而謙和懇實, 令人感發, 所謂孝子仁人之辭者此耶? 噫, 公之文, 可謂寂寥矣, 其作亦非傑然者. 然惟其得於躬行之餘, 用於及人之地. 故刑于而有孟光之賢, 友于而有季方之難, 其不可以一節蔽公也又審矣. 彼岌冠委佩, 標榜乎世者, 其偉論豊作, 宜若有裨益世道, 而究其歸, 或不免乖倫害義, 敗俗誤後而止, 何哉? 無得乎躬行而學之不實故也. 余於公爲通家後生, 不敢辭弁卷之役. 旣幸讀公之文而知公益深, 且書所嘗感慨者, 使今與後尙論家, 知誦讀詩書之以其人, 不以其文, 竊以發鄒夫子言外之意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