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역/표점
- 국역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 율옹집 중간 서문 【을축년(1925)】(栗翁集重刊序 【乙丑】)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율옹집주 44) 중간 서문 【을축년(1925)】
사람들은 언제나 글이 사람 때문에 전해진다고 말하는데, 이는 참으로 옳은 말이거니와 나는 삼가 사람이 글 때문에 전해진다고 생각하니, 이것도 또한 옳을 것이다. 율옹 선생(栗翁先生) 송공(宋公 송징(宋徵))은 충효(忠孝)와 대절(大節)로 《춘추(春秋)》의 대의(大義)를 밝혔으니, 선조(宣祖) 임진년(1592)에 어머니를 모시고 난리를 피할 때에는 험한 일을 두루 겪으면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성껏 봉양하면서 난리 가운데에 있음을 잊게 하였고, 광해군의 조정에서 모후(母后)를 폐하자는 논의가 일어났을 때에는 상소를 올려 이이첨(李爾瞻)을 배척하고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인조 갑자년(1624) 이괄(李适)의 변란 때에는 의병을 모집하여 왕의 일에 힘썼고, 병자년(1636) 태학(太學 성균관)에 있을 때에는 오랑캐의 사신을 참수할 것을 청하였으며, 정축년(1637) 이후로는 문을 닫고 자취를 감춘 채 세상에 나아가 공명을 이루는 것을 구하지 않았다. 공이 천지를 지탱하고 인륜의 기강을 부지하는 데에 수립한 것이 이미 이와 같았으니, 공의 손에서 나온 문장은 비록 천년의 오랜 세월이 지난다 하더라도 어느 누가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마치 공을 보듯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글이 사람 때문에 전해진다는 것이다.
정축년 이후에 저술한 것들은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는[尊華攘夷] 의리 아닌 것이 없었으니, 〈종루(鍾樓)〉라고 제목한 시에서 "어찌 차마 신종황제의 덕을 배반하며, 무슨 얼굴로 선조대왕의 영령을 대하겠는가[忍背神宗皇帝德, 何顔宣祖大王靈]"라고 한 것이 더욱 절실하고 통쾌하여 사람들이 비록 공의 손에서 나온 작품인 줄 미처 알지 못했지만 먼저 입에 오르내렸으니, 공의 시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또 이와 같다. 지금 300여 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다투어 그 시를 암송하면서 그 사람을 알게 된다면 이는 사람이 글 때문에 전해진다고 이를 수 있으니, 그렇지 않은가?
요약하면 공의 글은 사람과 글 때문에 모두 전할 만 하니, 이것이 인릉(仁陵 순조(純祖)) 병술년(1826)에 이미 간행하고, 갑자(甲子)가 두 번 지난 올 해 기축년(1949)에 다시 간행하는 이유이다. 나는 더욱 오래될수록 더욱 간행되어 전하는 데에 쇠퇴함이 없을 줄 알겠다. 추월산은 무너지지 않고, 담양의 강물은 장구히 흐르면서 공의 인품과 글이 함께 존재할 것이니, 또 어찌 흩어지고 빠진 나머지 권부(卷部)가 적다고 개탄할 수 있겠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높은 산을 우러러 보며, 큰 길을 따라간다.주 45)
"라고 하였는데, 나는 공에게 실로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라 10대손 환욱(煥郁)이 와서 중간(重刊)의 서문을 청하기에 공경하고 앙모하는 마음을 써서 돌려보낸다.
- 주석 44)율옹집
- 송징(宋徵, 1564~1643)의 저서인 《율옹유고(栗翁遺稿)》를 가리킨다. 초판본은 불분권 1책이고, 목판본이며, 1826년(순조 26) 6대손 재일(在一)과 이신(以新) 등이 처음 편집ㆍ간행하였고, 권두에 송치규(宋穉圭)의 서문과 권말에 이헌승(李憲承)의 발문이 있다.
- 주석 45)높은 …… 따라간다
- 《시경》 〈거할(車舝)〉에 보인다.
栗翁集重刊序 【乙丑】
人恒言文以人傳, 此固然也. 余竊謂人以文傳, 亦可也. 栗翁先生 宋公, 有忠孝大節, 明《春秋》大義. 宣祖壬辰, 奉母避難, 備經險阻, 而一心忠養, 使之忘在難中. 昏朝廢母議起, 疏斥爾瞻, 卽日還鄕. 仁廟甲子适變, 募義旅以勤王事, 丙子在太學, 請斬虜使. 丁丑以後, 杜門遯跡, 不求進取, 公之所樹立撑天地扶人紀者, 旣如此, 則文之出自公手者, 雖曠千載之遠, 孰不愛重之, 若見公乎? 此所謂文以人傳也. 丁丑後述作, 無非尊華攘夷之義, 而其題〈鍾樓〉詩, "忍背神宗皇帝德, 何顔宣祖大王靈?" 尤深切痛快. 人雖未及知出自公手, 而先已膾炙于口, 公之詩感發人心, 又如此. 至今三百有餘年, 人爭誦其詩, 而知有其人, 則此可謂人以文傳者, 不其然乎? 要之公之文以人以文, 皆可傳焉. 此所以旣刊於仁陵丙戌, 而重刊於再周甲今年己丑者也. 吾知其愈久愈刊, 傳之無替矣. 秋山不崩, 潭水長流, 公之人、文, 與之俱存, 又烏足以散逸餘卷部之少致慨也哉? 《詩》云: "高山仰止, 景行行止. " 吾於公實有之. 十世孫煥郁來請重刊序,. 爲之書敬慕之意而歸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