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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 《만은유고》 서문(《晩隱遺稿》序)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0.0001.TXT.0010
《만은유고》주 37) 서문
삼가 일찍이 보건대, 예나 지금이나 가문에서 뛰어난 선비와 석학을 배출하여 집안의 명성을 창성케 한 것은 대체로 그 선대의 학문을 바탕으로 하여 나온 경우가 많은데, 지금 만은 처사(晩隱處士) 황공(黃公 황전(黃㙻))에게서 그것이 진실로 그렇다는 것을 더욱 증험할 수 있다. 우리 호남의 황이재 선생(黃頤齋先生 황윤석(黃胤錫))은 온 나라의 석학이고, 공은 바로 그의 대인(大人 부친)이니, 위로는 취은(醉隱)ㆍ산촌(山村)ㆍ구암(龜巖)주 38)의 학문을 계승하고 아래로는 이재의 어짊을 열어 주었다. 만약 이재만 있는 줄 알고 만은이 있는 줄 모른다면 이는 비유하자면 한낱 서산(西山)의 학문이 정심하고 해박한 것만 알고 목당노인(牧堂老人)이 있는 줄 모르는 것이니주 39), 어찌 옳겠는가.
공은 어려서부터 과거 공부를 하여 공부가 이미 정밀하고 지극하였으나 일곱 차례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지 못하자 만년에 선포(仙浦) 구양(龜陽)의 거처에 은둔하여 영화로운 벼슬길에 대한 생각을 끊고 경학(經學)에 마음을 침잠하여 백수(白水)ㆍ목산(木山)ㆍ두호(杜湖 조정(趙晸)) 등 명성과 덕망이 있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장려와 인정을 받았으며, 일대 유림의 종장인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와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와 같은 두 선생께서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하는 데에 이르렀으니 여기에서 공을 알 수 있다.
수사(修辭)에 드러난 것은 소박하고 진실한데다 상세하고 분명하여 일에 나아가 실정을 논하고 사물로 인하여 이치를 말했을 뿐, 기이함을 숭상하거나 꾸밈을 다하여 사람의 눈과 귀를 기쁘게 하는 모습이 없었으니, 대체로 이른바 '말은 뜻이 통하게 하면 그만이다.주 40)'라는 것이 이것일 것이다. 언지(言志)의 작품주 41)은 천기(天機)에서 얻은 것이 깊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즉시 쏟아 내면서도 태연자약하여 여유가 있었고, 다듬고 수식하지 않아도 청아하고 울림이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외고 읊조림에 저절로 흥이 느껴지는 정취가 있었다. 늘 말하기를, "시는 모든 문장 체재의 조종이다."라고 하였으니, 어쩌면 성정(性情)의 발현에 통하지 않은 데가 없는 묘리를 스스로 징험했을 것이다. 총괄하면 공은 덕행과 학문, 식견이 성대하게 모범이 되었으니, 당시에 비록 이옹(頤翁)의 높은 재주로도 또한 공의 영향을 받아 성취한 것이 있었음은 속일 수 없다.
임오년(1942) 봄에 구양(龜陽)에 와서 이재 속집(頤齋續集)의 교정을 끝내고, 아울러 공의 유문(遺文)을 교정하였는데, 8대손 서구(瑞九)가 이 일로 인하여 서문을 지어 줄 것을 청하니, 내가 일어나 말하기를,
"아, 또한 성대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옹은 진실로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황씨(黃氏)의 선학(先學)이 공에 이르러 더욱 완비된 것이 또 이와 같으니, 아버지가 북돋우고 아들이 창달시켜 서로 뜻을 얻음이 더욱 빛나고 아름답구나. 이것을 어찌 크게 써서 서문으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시경》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 그 덕을 닦을지어다.주 42)"라고 하였으니, 내가 바라건대, 이 유고를 읽은 후손들은 가문의 명성이 창성한 근본을 생각하여 가업[箕裘]을 무궁토록 이어가야 할 것이다. 《주역》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자식이 있으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된다.주 43)"라고 하였으니, 내가 바라건대, 이 유고를 읽은 후생들은 전대 현인들이 입신양명하여 어버이를 현양한 자취를 생각하여 힘써 따라야 할 것이다.
주석 37)《만은유고》
조선후기 학자 황전(黃㙻, ?~1771)의 시·서(書)·제문·만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4권 2책. 석인본. 1943년 8대손 서구(瑞九)가 편집ㆍ간행하였다.
주석 38)취은(醉隱)ㆍ산촌(山村)ㆍ구암(龜巖)
취은은 황전의 조부인 황세기(黃世基)의 호이고, 산촌은 황전의 부친인 황재만(黃載萬)의 호이다. 구암은 미상이다.
주석 39)서산(西山)의 …… 것이니
서산은 남송 때 경학가인 채원정(蔡元定, 1135~1198)의 호이고 목당노인은 채원정의 아버지인 채신여(蔡神與, 1089~1152)의 호이다. 채신여로부터 아들 원정, 손자 연(淵)ㆍ원(沅)ㆍ침(沉), 증손자 격(格)ㆍ모(模)ㆍ항(杭)ㆍ권(權)에 이르기까지 남송의 대유(大儒)로, 이들을 아울러 "채씨사세구유(蔡氏四世九儒)"라 불렀다.
주석 40)말은 …… 그만이다
《논어집주》 〈위령공(衛靈公)〉에 보인다.
주석 41)언지(言志)의 작품
시를 말하는 것으로, 《서경)》 〈순전(舜典)〉에 "시는 뜻을 말한 것이요, 노래는 말을 길게 읊은 것이요, 소리는 길게 읊음에 따른 것이요, 음률은 읊는 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다.〔詩言志, 歌永言, 聲依永, 律和聲.〕"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주석 42)너의 …… 닦을지어다
《시경》 〈문왕(文王)〉에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 그 덕을 닦을지어다. 길이 천명에 짝하는 것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이 되느니라.〔無念爾祖? 聿修厥德. 永言配命, 自求多福.〕"라고 하였다.
주석 43)자식이 …… 된다
《주역》 〈고괘(蠱卦) 초육(初六)〉에 "초육은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돌아간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된다.〔初六, 幹父之蠱, 有子, 考无咎.〕"라고 하였다.
《晩隱遺稿》序
竊嘗觀夫古今人門之出鴻儒碩匠而昌家聲者, 蓋多本其先學而來. 今於晩隱處士 黃公, 益驗其信然矣. 我湖之黃頤齋先生, 通國之鴻碩, 而公卽其大人, 上承醉隱、山村、龜巖之學, 下以啓頤齋之賢. 如使知有頤齋而不知有晩隱, 則是譬之徒知西山之精博而不知有牧堂老人, 豈可乎哉? 公少治科業, 業旣精至, 七擧而猶不中, 晩而隱於仙浦 龜陽之居, 絶意榮途, 潛心經學, 爲白水、木山、杜湖諸名德所獎與, 一代儒宗如渼湖、屛溪二先生, 至以好學稱之, 斯可以見公矣. 其著於修辭, 則平實詳明, 就事論情, 因物說理而已, 無尙奇致飾, 悅人耳目之態, 庶所謂辭達者是也. 至於言志之作, 得之天機者深. 故卽寫境遇而紆餘有地, 不事雕琢而淸越有響, 使人諷詠, 自有興感之趣. 常曰: "詩者, 文章百體之宗. " 抑有以自驗性情之發, 無往不通之妙也歟. 總之公德行文識, 蔚然望範乎. 當時雖以頤翁高才, 亦有所受而成, 不可誣也. 壬午春余來龜陽, 校訖頤齋續集, 而幷及公遺文. 八世孫瑞九, 因請序之. 余作而曰: "吁, 不亦盛乎. 頤翁固尙矣, 黃氏先學, 至公益備者又如此, 父而培之, 子而達之, 相得益章猗歟哉. 是烏可不大書之, 以爲序乎?" 《詩》不云乎? "無念爾祖, 聿修厥德. " 吾願後孫之讀是稿者, 宜思家聲所昌之本, 紹箕裘於無窮也哉. 《易》不云乎? "有子, 考无咎. " 吾願後生之讀是稿者, 宜思勉追前修立揚而顯其親也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