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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 모현재에서 제군들을 전송하는 서문 【갑자년(1924)】(慕賢齋送諸君序 【甲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모현재주 27)에서 제군들을 전송하는 서문 【갑자년(1924)】
남산(南山)주 28)의 꼭대기에서 한스러운 마음을 읊고 영파(映波)의 강물주 29)에 이별의 정을 실어 보내니, 암담하게 넋이 나가고자 하는 것은 오늘 이별의 모습이 아니겠으며, 간절하게 나에게 한마디 말을 해 줄 것을 바라여 산중고사(山中故事)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제군(諸君)들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내가 비록 인자(仁者)가 아닌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기어이 말하라고 한다면 청컨대 산과 물의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행신(行贐 노자(路資))을 대신해도 되겠는가?
무릇 산은 높고 큰 것을 바라지 않겠으며, 물은 깊고 드넓은 것을 바라지 않겠는가. 남산의 높은 봉우리가 우뚝하게 솟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곤륜산(崑崙山)을 이고 있어야 조종(祖宗)이 되고, 영파의 물이 드넓고 깊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좌해(左海 동해(東海))라야 조종으로 삼을 바가 되니, 고대 성인이 천하를 작게 여기고 물이 되기 어렵다고 탄식한 것주 30)은 어찌 진실로 그렇지 않겠는가.
아, 옛 사람으로부터 감흥을 일으켜 준칙으로 삼은 선비만 어찌 홀로 그렇지 않겠는가. 남산을 돌아보고 저 영파를 바라봄에 천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풍모가 사라지지 않은 자는 신무장(申武壯 신호(申浩))과 이문정(李文靖 이식(李植))이 아니겠는가. 교룡산성(蛟龍山城)에서 왕의 일이 몹시 위급하여 옷과 치아를 집으로 보내고 죽음을 마치 집으로 돌아가듯 편안하게 여긴 것주 31)은 열렬한 충성이 아니겠는가. 택풍당(澤風堂)에서 홀로 덕을 세워 대가(大家)의 보불(黼黻 문장(文章))이 온 나라에 화려하게 빛난 것은 찬란한 문장이 아니겠는가. 두 공은 진실로 이 땅에서 나고 자랐으니, 이 땅에서 옛사람의 일을 논하는 자라면 두 공을 버려두고 누구를 논하겠는가.
그러나 이는 친근하고 감동하기 쉬운 사람으로 말한 것이니, 이러한 단계를 지나 더 나아가서 등급에 따라 위로 올라가고 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구한다면 반드시 성인에게 극처를 귀결시킨 뒤에 그쳐야 할 것이네. 때문에 "인(仁)이 요(堯) 임금만 못하고, 효가 순(舜) 임금만 못하고, 학문이 공자만 못하면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주 32)"라고 하였으니, 배우는 자가 뜻을 세우는 것이 다만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군자의 도는 작은 것을 먼저 하고 큰 것을 뒤로 하며, 아래로부터 사람의 일을 배워 위로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는 것이네. 그러므로 인은 반드시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게 되기를 바라고, 효는 반드시 신명(神明)과 통하고 사해(四海)에 빛나기를 바라며, 학문은 반드시 힘쓰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네. 그러나 또한 어린아이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과 겨울에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 앉아 있을 때는 시동처럼 하고 서 있을 때는 재계하는 것처럼 하는 것 등의 따위를 버려둔 채 단번에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자는 있지 않으니, 청컨대 제군들은 돌아가 가정 안에서 구하고 마음과 육체 사이에서 살펴서 그 규범을 크게 하고 그 공효를 세밀하게 함으로써 끝내 변화하여 천지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길러지는 묘리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경전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하고, 높은 곳을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한다.주 33)"라고 하였네. 또 말하지 않았는가. "흐르는 물의 속성은 구덩이를 다 채우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다.주 34)"라고 하였네. 나는 이로 인해 단정하여 "곤륜산을 오르는 것은 남산에서 시작될 것이고, 동해에 도달하는 것은 영파에서 시작될 것이다."라고 말하니, 제군들이여, 내 말을 믿고 힘쓰기를 바란다.
- 주석 27)모현재(慕賢齋)
-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남산리에 있는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전라관찰사를 지낸 이광(李洸)이 향풍을 바로잡고 학문을 권장하기 위하여 조직한 남산동 백발회(南山洞白髮會)에서 유래하였다. 그 뒤 이식(李植)이 종조부인 이광의 백발계(白髮契)를 다시 조직하여 향풍을 길러 향약을 실천하였는데, 한동안 기능이 약화되었다가 1862년(철종 13) 옛날 백발회 유지에 모현재를 창건하고, 동계(洞契)를 다시 실시하여 학문을 권장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주석 28)남산(南山)
-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00.1m이다. 고부면소재지 남쪽에 있는 산이라서 남산으로 불린다.
- 주석 29)영파(映波)의 강물
- 전북 정읍시 영파동에 위치한 영파정(映波亭) 근처에 흐르는 현 정읍천을 가리키는 듯하다. 영파정은 1601년(선조34) 이광(李洸 1541~1607)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창건한 누정으로 이곳에서 백발계회(白髮契會)를 조직하여 향풍을 기르고 학문을 권장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 주석 30)고대 …… 것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공자가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魯)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를 작게 여겼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다른 물은 물이 되기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 종유한 사람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은 말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주석 31)교룡산성(蛟龍山城)에서 …… 것
- 신호는 정유재란 때 남원(南原) 교룡산성(蛟龍山城) 수어장(守禦將)으로서 성 안으로 쳐들어오는 왜군과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했는데, 죽기 전에 말고삐를 잡고 다니는 노비에게 입고 있던 옷과 치아 하나를 노비에게 주고서 집으로 돌아가 오늘이 바로 내가 죽는 날임을 알리게 했다고 한다. 《息庵遺稿 樂安郡守贈刑曹判書申公諡狀》
- 주석 32)인(仁)이 …… 것이다
- 《맹자집주》 〈진심장 상(盡心章上)〉 29장 주에 여시강(呂侍講)이 "인이 요임금만 못하고, 효가 순임금민 못하고, 학문이 공자만 못하면 끝내 성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없고, 마침내 천도에 이르지 못할 것이니, 중도에 폐하여 스스로 앞의 공을 버리게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仁不如堯, 孝不如舜, 學不如孔子, 終未入於聖人之域, 終未至於天道, 未免爲半塗而廢, 自棄前功也.〕"라고 말한 구절에서 인용한 말이다.
- 주석 33)먼 …… 시작한다
- 《중용장구》 제15장에 보인다.
- 주석 34)흐르는 …… 않는다
- 《맹자집주》 〈진심장 상(盡心章上)〉에 보인다.
慕賢齋送諸君序 【甲子】
賦恨乎南山之巓, 送情乎映波之流, 黯然其欲銷魂者, 非今日別離景色乎? 懇懇乎其欲我一言有贈, 擬作山中故事者, 非諸君之意乎? 我則縱愧非仁者, 無已則請以山水喩喩之用, 替行贐可乎? 夫山不欲其高大乎? 水不欲其深廣乎? 南山之高. 非不聳拔超卓, 必戴崑崙而爲祖; 映波之水, 非不汪然而深, 必左海爲其所宗. 前聖所歎小天下、難爲水者, 豈不信然乎? 噫. 士之興感乎古人而準則之者, 奚獨不然? 睠焉南山, 瞻彼映波, 閱千秋而風不沫者, 非申武壯、李文靖乎? 蛟龍有城, 王事孔棘, 衣齒送家, 視死如歸者, 非烈烈焉忠乎? 澤風有堂, 獨立闕德, 大家黼黻, 華國光邦者, 非煥煥乎文乎? 二公固生且長乎玆地, 于玆地, 欲尙論者, 舍二公, 其誰乎? 然此自其親近易感者言, 過此以往, 等而上之, 遠而求之, 則必要其歸極於聖人而後已. 故曰: "仁不如堯, 孝不如舜, 學不如孔子, 皆自棄也. " 學者立志, 顧不當若是乎? 雖然, 君子之道, 先小而後大, 下學而上達. 故仁必欲其萬物各得其所, 孝必欲其通神明光四海, 學必欲其不勉不思而得. 而亦未有舍棄愛保赤子、冬溫夏凊、坐尸立齊之類, 而能一蹴而至焉者. 請諸君歸而求之家庭之際, 察之心身之間, 大厥規而細厥功, 終以致乎變化位育之妙也. 傳不云乎? "行遠必自邇, 登高必自卑. " 又不云乎? "流水之爲物, 不盈科不行. " 余乃因此而斷之曰: "陟崑崙者, 其自南山而始; 達東海者, 其自映波而始. " 諸君乎, 其尙信及而勉乎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