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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 존의계안 서문 【갑자년(1924)】(尊義契案序 【甲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20.0001.TXT.0007
존의계안 서문 【갑자년(1924)】
간재(艮齋) 전 선생(田先生 전우(田愚))이 돌아가신 지 3년이 되는 갑자년 9월9일에 문하의 제자들이 현동(玄洞)의 묘사(墓祀)에 나아가 참여하고서 제사가 끝나자 모두 한숨을 지으며 말하기를,
"선생은 도가 높고 의리가 정밀한데다 학문이 바르고 가르침이 갖추어져 학문하는 자에게 아름다운 은혜를 베풂이 지극하였다. 그런데 용과 뱀이 위험을 알림에 산이 이미 무너졌고주 19), 오토(烏兎)가 번갈아 달려감에 영실(靈室)이 또 철거되었다주 20). 봄바람이 부는 자리가 아득하니주 21), 가을달의 마음주 22)을 누가 전해주겠는가? 오직 이 현동 한 언덕은 선생께서 만년토록 의탁할 곳으로, 넋이 아래에서 영원히 편안하고, 정령이 위에서 오르내리실 것이니, 우리 무리들이 국과 담장[羹墻]에 어른거리는 모습을 보거나 강한(江漢)을 그리워함에주 23) 이곳을 버려두고 어디로 가겠는가.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이곳에서 강학하여 선생의 전함을 영구히 하는 것이 여기에 있을 것이니. 어찌 서로 안(案)을 연합하여 규례을 세우고 의연금(義捐金)을 내어 계를 수립함으로써 장구토록 추모하고 강학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도모해 구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니, 이것을 힐난하는 자가 말하기를,
"대저 추모는 마음에 달려 있고, 학문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니, 어느 날인들 잊으리오.주 24)'라고 하였으며, 또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겠는가.주 25)'라고 하였다. 스스로 진실하고 스스로 힘쓸 수 있다면 한 꽃님 만큼의 조그마한 향기를 피우는 공경을 오히려 펼 수 있을 것이며,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도(道)가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무엇 때문에 사물을 빙자하여 진실함을 드러내고 남에게 가탁하여 공효를 바라는 일을 일삼겠는가."
하였다. 바른말로 질책하는 자가 말하기를,
"아니, 그렇지 않다. 훌륭한 일은 권면해야 하고 잘못된 일은 경계해야 하는 것이 옛날의 도이니, 만약 홀로 공부한다면 이는 권면하고 경계해야 하는 도를 사용할 곳이 없게 된 지 오래되었을 것이고, 만약 마음으로 추모하고 저 사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뒤에 죽을 사람이 숭상하여 받드는 책무는 어디에 그 정성을 다하겠는가? 더욱이 지금 사문(師門) 내에 변괴가 갖가지로 나와서 인허에 대한 무함주 26)이 유행함에 태양처럼 빛나던 고결함이 거의 어두워졌고, 제토(祭土 제전(祭田))을 팔아버림에 제물[粢牲]을 갖추지 못하여 요행을 바랄 수 없게 되었으니, 우리 소자들이 서로 닦고 힘을 합쳐 평소 지극히 정대했던 가르침을 복종하여 지키고 아울러 사후(死後)의 대사를 이루지 않는다면 어떻게 선생께서 전수하신 한 학맥을 이어 밝혀서 부처와 같은 은혜를 만분의 일이나마 갚을 수 있겠는가? 오늘의 이 일은 단연코 그만 둘 수 없다."
하니, 힐난했던 자가 예! 예! 하며 수긍하였다. 이에 여러 사람의 의론이 모두 동일하자 규례를 수정하고 이름을 차례대로 앞뒤에 기록해 넣었으며, 물건은 힘에 따라 마련하고 회강(會講)은 봄가을의 향사(享祀)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음날 계안이 완성한 뒤에 '존의계(尊義契)'라 명명하였으니, 대체로 이 계안에 참여하는 문인과 후학들로 하여금 모두 선생의 도의를 추존하여 앙모할 수 있게 하고, 만나는 변고도 오직 그 의리를 존숭하여 대응하게 할 따름이다.
주석 19)용과 …… 무너졌고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죽음을 예언하고 비유한 말이다. 용과 뱀이 위험을 알렸다는 것은 현인군자의 죽음을 예언하는 말로, 후한의 대유(大儒)인 정현(鄭玄)의 꿈에 공자(孔子)가 나타나 이르기를 "빨리 일어나라. 금년은 용의 해이고 내년은 뱀의 해이니라.〔起起! 今年歲在辰, 來年歲在巳.〕"라고 하자, 잠을 깨고서 자신이 죽을 것을 알았으며, 그해 6월에 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으며, 《後漢書 卷35 鄭玄列傳》 산이 이미 무너졌다는 것은 스승의 죽음을 비유하는 말로, 공자가 자신이 죽을 꿈을 꾸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짚은 채 문 앞에서 한가로이 거닐며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들보가 부러지겠구나, 철인이 죽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주석 20)오토(烏兎)가 …… 철거되었다
세월이 흘러 3년상이 끝났음을 비유한 말이다. 오토(烏兔)는 해 속에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있고 달 속에 옥토끼가 있다고 하는 신화에서 유래하여 세월을 가리킨다.
주석 21)봄바람이 …… 아득하니
봄바람처럼 온화한 스승이 세상에서 떠났음을 비유한 말이다. 송(宋)나라 때 주광정(朱光庭)이 정호(程顥)를 찾아뵙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봄바람 속에서 한 달을 앉아 있었다.〔某在春風中坐了一箇月.〕"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近思錄 卷14》
주석 22)가을달의 마음
스승의 고결한 인품을 형용한 말이다. 등적(鄧迪)이 주자(朱子)의 스승인 연평(延平) 이통(李侗)의 인품을 말하면서 "마치 빙호추월(氷壺秋月)과 같아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니 우리들이 미칠 수 없다."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빙호추월은 얼음으로 된 호로병에 맑은 가을 달이 담겼다는 뜻이다. 《宋史 卷428 李侗列傳》
주석 23)국과 …… 그리워함에
돌아가신 스승을 경모(敬慕)하고 추념(追念)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권63 〈이고열전(李固列傳)〉에 "옛적에 요 임금이 돌아가신 뒤에 순 임금이 3년 동안 우러러 그리워하여 앉으면 담장에서 요 임금을 보았고, 밥을 먹으면 국에서 요 임금을 보았습니다.〔昔堯殂之後, 舜仰慕三年, 坐則見堯於墻, 食則睹堯於羹.〕"라고 하였고, 공자 사후에 문인(門人)인들이 공자를 추모하여 유약(有若)이 공자와 비슷하다는 연유로 그를 공자를 섬기던 예로 섬기려고 하자, 증자(曾子)가 "옳지 않다. 부자의 도덕은 마치 강한의 물로 씻고 가을볕으로 쬔 듯이, 하도 희고 깨끗하여 더할 수가 없다.〔不可. 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주석 24)마음속에 …… 잊으리오
《시경》 〈소아(小雅) 습상(隰桑)〉에 보인다.
주석 25)인을 …… 있겠는가
《논어집주》 〈안연(顔淵)〉 1장에 보인다.
주석 26)인허에 …… 무함
전우가 생전에 일제하에서 자신의 문집를 간행하지 말도록 유언하였는데, 문인 오진영(吳震泳)이 스승으로부터 일제의 인허를 받아 간행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한 일을 가리킨다. 《後滄先生文集 券14 徧告同門僉公》
尊義契案序 【甲子】
惟艮齋 田先生旣沒之三年甲子九月九日, 門弟子進參於玄洞之墓祀. 祀畢, 衆皆咨嗟而言曰: "先生道尊而義精, 學正而敎備, 嘉惠學者至矣. 龍蛇告厄, 山已頹矣, 烏兎迭奔, 靈又撤矣. 春風之坐邈焉, 秋月之心孰傳? 惟玆玄洞一邱, 先生萬年之宅, 體魄永安于下, 精靈陟降乎上, 吾儕羹墻之見, 江漢之思, 捨此焉奚之? 祀於斯, 講於斯, 以永先生之傳, 其在斯矣, 盍相聯案立規, 出義樹契, 圖夫慕之講之之具於久遠也乎?" 有難之者曰: "夫慕在乎心, 學在乎己. 故曰: '中心藏之, 何日忘之?' 又曰: '爲仁由己, 而由人乎?' 能自誠而自力, 一瓣之敬, 尙可伸也. 文武之道, 庶不墜地, 何事乎藉物而見誠, 假人而責效乎?" 有正言而質之者曰: "否, 不然. 善之當勸, 過之當戒, 古之道也. 如獨學之, 是當勸戒之道之無所用也久矣. 苟慕之以心, 而不用夫物, 後死者崇奉之責, 安所盡其誠乎? 況今門墻之內, 變怪百出, 認誣行而日光之潔幾晦矣, 祭土斥而粢牲之闕無幸矣. 不有我小子輩, 交修協力, 服守平日至正之敎 幷濟身後之大事, 其何以紹明先生一脈之傳, 而報佛恩之萬一乎? 今日此擧, 斷不可已也. " 難者唯唯. 乃僉議詢同, 修定規例, 序名以入錄 先後, 而物則隨其力, 會講用春秋享祀. 翼日案旣成, 命名曰尊義契, 蓋欲使門人後學之參是案者, 皆有以尊仰先生之道義, 而所値之變, 亦惟尊其義而應之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