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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 《성주이씨족보》 서문 【간재 선생을 대신하여 짓다. 임자년(1912)】(《星州李氏族譜》序 【代艮齋先生作. 壬子】)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0 / 서(序)
《성주이씨족보》 서문 【간재 선생을 대신하여 짓다. 임자년(1912)】
씨족이 족보를 둔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으니, 주관(周官)은 나라의 세대를 잇는 직책을 맡았고주 7), 정자(程子)는 친족을 수록하여 풍속을 도탑게 하라는 가르침을 두었다. 대체로 위로는 유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그 근원을 돈독히 하고, 옆으로는 분파(分派)까지 그 은혜를 독실하게 하는 것으로는 족보보다 절실한 것이 없으니, 씨족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성산 이씨(星山李氏)가 우리나라에 드러난 것은 신라(新羅)와 고려(高麗) 때부터 이미 그러하여 이름난 정승[名卿]과 큰 스승[碩匠]이 역사서에 빛나고, 예천(醴泉)의 근원과 영지(靈芝)의 뿌리에서 갈래가 많아지고 가지가 번성하듯 훌륭한 조상에서 수많은 자손이 나와 각 도에 흩어져 있는 자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지난 날 순조(純祖) 경인년(1830)에 대보(大譜)를 만든 뒤로 다시 수찬할 겨를이 없게 된 지 지금 80여 년의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먼 후손들이 더욱 번창하여 갑자기 모이기 어렵게 되었으니, 친함이 다하여 길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탄식이 진실로 염려할 만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이씨의 제공(諸公)들이 파보(派譜)를 편찬한 이유이니, 친한 종족으로부터 먼 종족까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급선무로 삼았다고 이를 만하다.
족보를 수찬하는 중요한 뜻이 삼가 생각건대, 여기에만 있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선대의 아름다움을 이어 자신에게 두터이 하고 후손에게 넉넉하게 해야 비로소 선(善)을 다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시경》에 이르기를,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 그 덕을 닦을지어다.[無念爾祖, 聿修厥德.]"라고 하였다. 내가 이씨 선대의 덕행을 살펴보건대, 농서공(隴西公)의 공경과 검약ㆍ문열공(文烈公)의 충성과 정직ㆍ경원공(敬元公)의 겸양ㆍ문경공(文敬公)의 도학(道學)ㆍ 귀암공(龜巖公)의 효성과 우애와 같은 것들은 모두 후대의 본보기가 될 만한데, 하물며 후손에게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지금 이 족보에 기록된 제공들이 가깝게는 자신의 몸가짐과 집안에서의 처신으로부터 조정에 서서 세상에 보답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선대의 덕행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욕됨이 없기를 기약한다면 말과 행실에 나타나는 것들이 저절로 응당 예의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고, 사업에 조처하는 것들이 반드시 도의에 꼭 맞게 될 것이다. 이것을 후손들에게 미루어 가서 모두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된다면 선대의 공열을 빛나게 드러내고 후손들을 편안하게 살도록 도와주는 도가 이에 성대해질 것이다. 이것으로 보건대, 또 어찌 계통을 밝히고 친족을 수록하는 것으로 근본을 돈독히 하고 은혜를 도탑게 하는 바탕을 삼아서 족보를 수찬하는 것이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에 서문을 써서 이공 병민(李公秉玟)의 청에 부응한다.
- 주석 7)주관(周官)은 …… 맡았고
- 주관은 《주례(周禮)》 〈소사(小史)〉에 "소사는 나라의 기록을 관장하여 계세(繫世)를 정하고 소(昭)와 목(穆)을 분변한다.〔小史掌邦国之志. 奠繫世, 辨昭穆.〕"라는 기록에 의하면 소사(小史)를 가리키는 듯하다.
《星州李氏族譜》序 【代艮齋先生作. 壬子】
族之有譜, 其來遠矣. 周官掌邦國繫世之職, 程子有收族厚俗之訓. 蓋上溯所自, 以敦其本, 旁及所分, 以篤其恩者, 莫切於譜, 而有族之不容已者也. 星山 李氏之顯於東方者, 自羅、麗已然, 而名卿碩匠, 光史耀乘, 醴源芝根, 派衆枝繁, 散在各省者, 不億其麗矣. 往在純廟庚寅大譜之後, 不遑再修者, 今爲八十餘年之久, 而雲仍彌蕃, 猝難湊合而親盡塗人之歎, 誠爲可慮. 此今日李氏諸公派譜之所爲編也, 可謂由親及遠而當務爲急矣. 至於修譜之要義, 竊謂不在於此而已. 必也紹厥先懿, 禔之於身, 而裕之於後, 乃爲盡善也. 故《詩》曰: "無念爾祖, 聿修厥德. " 余觀李氏世德, 如隴西公之恭儉、文烈公之忠直、敬元公之謙退、文敬公之道學、龜巖公之孝友, 皆可爲來世之準繩, 況在於後承乎? 今諸公之譜於斯者, 近自持身處家, 以至立朝酬世, 苟能念念先德, 期於無忝, 則發於言行者, 自應不背於禮矣, 措諸事業者, 必將脗合於道矣. 以此推及於後承, 而莫不皆然, 則其光闡先烈燕翼來昆之道, 於斯爲盛. 此又豈可以明系收族爲敦本篤恩之地, 作修譜能事而已哉? 於是乎序之, 以副李公 秉玟之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