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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4
  • 잡저(雜著)
  • 《신라김씨세보》 중 의심스러운 점을 논변하다 【1937년】(《新羅金氏世譜》中辨疑 【丁丑】)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4 / 잡저(雜著)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4.0001.TXT.0036
《신라김씨세보》 중 의심스러운 점을 논변하다 【1937년】
옛사람이 말하기를, "말이 뒤섞여 어지러운 것은 성인의 도로 절충해야 한다.주 226)"고 하였는데, 나는 반신반의한 역사는 이치로 결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릇 사람이 장성하면 가정을 이루어 자식을 낳고, 나이가 들면 정력이 쇠퇴하여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이 이치이다. 비록 장수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백 년이 지나지 않아 죽게 되니, 만약 "백 년이 지나 자식을 두었다."라고 말한다면 이치가 아니다. 지금 우리 김(金)씨 중에 《신라김씨세보(新羅金氏世譜)》 중 "이부상서공(吏部尙書公)은 경순왕(敬順王)의 증손(曾孫)이고, 마의태자(麻衣太子)의 손자이며, 기로(箕輅)의 아들이다."는 문구를 가져와 우리 족보의 상계(上系)로 기재해 넣고, 옛 가첩(家牒)에 기재된 "상서공은 경순왕의 육세손(六世孫)이다."는 문구와 나란히 세워 대치시켜 뿌리를 둘로 함으로써 반신반의하면서 결정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청컨대 시험 삼아 나의 변론을 들어보기 바란다.
태자가 입산(入山)한 때가 고려 태조(太祖) 을미(乙未)년이 아닌가. 상서공이 과거에 급제한 때가 선종조(宣宗朝)가 아닌가. 을미년부터 선종 초말(初末)까지 백오륙십 년이 아닌가. 가령 상서공이 나이 오십이 되었을 때에 선종 원년(元年) 갑자(甲子)년에 처음으로 과거에 급제하였다고 한다면 충생한 해로부터 위로 태자가 입산한 을미년까지의 세월이 백년이 아닌가. 《신라보》에 "기락이 아버지를 따라 입산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당시의 나이가 적어도 10세 이상보다 낮지는 않겠는가. 가령 오십에 아들을 낳았다면 아래로 상서공이 과거에 급제한 갑자년까지의 세월이 백 년이 아니겠는가. 천하에 어찌 백십 세에 과거에 급제한 자가 있겠는가. 오십에 과거에 급제한 것으로 기준하면 "그 아버지가 백십 세에 아들을 낳았다."고 말한 이후에야 가능하니, 어찌 이치이겠는가. 이치로 결단하여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힐난하는 자가 말하기를, "그대는 《신라보》를 믿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시기는 증거로 취한 것인가?" 하니, 내가 말하기를, "그대는 《맹자》를 읽지 않았는가? 맹자는 〈무성(武成)〉에서 '하늘을 받들어 포악한 사람을 정벌했다.[奉天伐暴]'는 말은 이치로 결단하여 합당하기 때문에 취하였고, '피가 흘러 절굿공이가 떠내려갔다.[血流漂杵]'는 말은 이치로 결단하여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았다.주 227) 내가 《신라보》에서 증거를 취하여 우리 김 씨가 태자의 종파(宗派)이지만 태자 이하 상서공 이상 대서(代序)를 믿지 못한 것과 부령(扶寧)주 228)ㆍ부안(扶安)의 선계(先系)를 나누어 둘로 한 것은 맹자에게 받은 바가 있어서이다." 하였다. 【고려 선종의 재위(在位)는 십일 년이다.】
주석 226)말이 …… 한다
한나라 양웅(揚雄)의 《양자법언(揚子法言)》 〈오자편(吾子篇)〉에 나오는 말이다.
주석 227)맹자는 …… 않았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서경》의 내용을 모두 믿는다면 《서경》이 없는 것만 못하니, 나는 《서경》의 〈무성〉에서 두세 쪽만을 취할 뿐이다.〔盡信書, 則不如無書. 吾於武成, 取二三策而已矣.〕" 하였는데, 집주(集註)에서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하늘을 받들어 포악한 사람을 정벌한 뜻과 정사를 돌이켜 인을 베푼 법을 취할 뿐이다.〔取其奉天伐暴之意反正施仁之法而已〕"하였다. 이어서 맹자가 말하기를, "인자한 사람은 천하무적인데, 지극히 인한 사람이 지극히 불인한 사람을 정벌하였으니 어떻게 그 피가 흘러 절굿공이를 떠내려가게 할 수가 있겠는가.〔仁人無敵於天下, 而至仁伐至不仁, 而何其血之流杵也?〕" 하였는데, 집주에서 "맹자는 이것이 믿을 수 없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孟子言此則其不可信者〕" 하였다.
주석 228)부령(扶寧)
부안의 옛 이름으로, 백제시대에는 개화현(皆火縣)이라 칭했다가 나당연합군에 백제가 망한 뒤 신라 경덕왕 때부터 부령현이라 칭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新羅金氏世譜》中辨疑 【丁丑】
古人云: "言之淆亂折諸聖." 余謂史之疑信決諸理. 夫人壯有室而生子, 老精衰而不生理也. 雖壽者, 不過百年而死, 若曰: "過百年而有子." 則非理也. 今於吾金之中, 取《新羅金氏世譜》中"吏部尙書公, 爲敬順王曾孫, 爲麻衣太子孫, 爲箕輅子"之文, 而載入於吾譜上系, 與古家牒所載"尙書公爲敬順王六世孫"之文, 幷立對峙, 作爲二本, 使之疑信莫決者, 請試聽吾辨. 太子入山, 非麗太祖乙未乎? 尙書公登科, 非宣宗朝乎? 乙未之於宣宗初末, 非百五六十年乎? 假使尙書公年五十, 始登科於宣宗元年甲子, 其生年上去太子入山之乙未, 非百年乎? 《新羅譜》云: "箕輅從父入山." 則時年非少不下十歲以上乎? 假使五十生子, 下去尙書公登科之甲子, 非百十年乎? 天下焉有百十歲而登科者乎? 準以五十登科, 則將曰"其父百十歲生子"而後可也, 豈理也乎? 決諸理而不合, 故不可信也. 難之者曰: "子不信《新羅譜》, 則何以有時取證乎?" 曰: "子不讀《孟子》乎? 孟子之於武成, 奉天伐暴之辭, 則決諸理而合, 故取之, 血流漂杵之語, 則決諸理而不合, 故不信. 吾於《新羅譜》取證, 吾金之爲太子宗派而不信太子以下尙書公以上之代序及分扶寧扶安先系而二之者, 有所受於孟子也."【麗宣宗在位十一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