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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4
- 잡저(雜著)
- 오진영이 찬술한 〈정절사전〉의 뒷부분 의논에 대하여 논하다 【1935년】(論吳震泳所撰〈鄭節士傳〉後論 【乙亥】)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4 / 잡저(雜著)
오진영이 찬술한 〈정절사주 174)전〉의 뒷부분 의논에 대하여 논하다 【1935년】
초야의 선비는 간언의 책임과 관직의 지킴이 없으니, 나라가 망할 때에 죽지 않는다 하더라 도 책망할 것이 없지만 몸을 지켜 깨끗한 데로 귀결하는 의리는 오랑캐와 중화의 엄중한 경 계와 관계되어 천하가 우러러보는 사람이 된다. 만약 천하 사람이 오랑캐가 된다 하더 라도 선비가 오랑캐가 되지 않으면 오히려 천하는 중화의 천하가 되고, 천하 사람이 중화 사람이 된다 하더라도 선비가 중화 사람이 되지 못하면 천하는 오랑캐 천하가 되니, 그 중 함은 단지 간언의 책임과 관직의 지킴의 정도일 뿐만이 아니다. 그래서 옛사람은 "선비가 절개를 지키는 것이 하늘을 꺾는 것이 된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선비가 죽음을 두려워 하고 절개를 잃어 중화를 망하게 하는 것은 죄가 간언의 책임과 관직의 지킴이 있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절개를 잃어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보다 더 심한 점이 있으니, 얼마나 엄중한가. 절사(節士)께서는 아마도 이러한 의리를 들었나보다. 아, 위대하고 장열하다.
무릇 말이란 효험을 우선시해야 하니, 말이 있으면 반드시 이런 효험이 있게 되어 자신에게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있고, 오늘날에 있지 않으면 훗날에 있게 된다. 말이 있고서 효험이 없는 경우는 아직 있지 않았다. 장자(張子 장횡거(張橫渠))가 "말에 잘못이 없는 뒤에야 일을 결단함에 실수가 없다.주 175)"라고 한 것은 대개 이 때문이다. 그래서 군자는 반드시 입언(立言)할 적에 조심하고 신중하였다.
내가 보건대 오진영이 〈정절사전〉에서 말하기를, "만약 천하 사람이 오랑캐가 된다 하더라도 선비가 오랑캐가 되지 않으면 오히려 천하는 중화의 천하가 된다." 하였는데, 이러한 논리는 가능하다. 이어서 말하기를, "천하 사람이 중화 사람이 된다 하더라도 선비가 중화 사람이 되지 못하면 천하는 곧 오랑캐 천하가 된다." 하였는데, 이것은 선비가 중화 사람도 될 수 있고 오랑캐도 될 수 있으며, 중화 사람이 선비도 될 수 있고 오랑캐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중화 사람이나 오랑캐가 선비가 될 수도 있고, 선비나 오랑캐가 중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뒤섞어버리면 선비와 중화 사람의 본래 진면목이 모두 어디에 있겠는가. 이름을 따라 실제를 구한다면 선비가 구덩이에 묻히고 중화가 어지럽게 되는 것을 기다릴 것도 없이 망하고 없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을 것이다.
겸애(兼愛)는 묵자(墨子)의 한마디 말이었지만 끝내 부모와 군주가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주 176), 사람의 본성이 버드나무와 같다는 것은 고자(告子)의 한마디 말이었지만 끝내 천하 사람을 이끌어 인의(仁義)에 화를 끼치는 지경에 이르는 것주 177)이 세도(世道)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성현(聖賢)이 이미 말했다. 이것으로 그의 말을 헤아려보면 그의 한마디 말의 매서운 화가 어찌 이미 효험으로 드러났던 묵자와 고자 두 사람의 말보다 덜하겠는가. 그래서 내가 특별히 붓을 떨쳐 논한다.
- 주석 174)정절사
- 정승원(鄭升源, 1868~1934)를 가리키는 것으로, 자는 덕여(德汝)이고,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일제가 강제로 머리를 자르려고 하자 1934년(67세) 10월에 "이 백의(白衣)와 백발(白髮)을 보존하여 지하로 돌아가 부모를 뵐 것이다.〔存此白衣白髮, 歸見父母地下.〕"라는 말과 절명시(絶命詩), 절명사(絶命詞)를 남기고 목을 매어 순절하였다고 한다. 《石農集 卷31 鄭節士傳》
- 주석 175)말에 …… 없다
-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14 〈관성현(觀聖賢)〉에 나오는 말이다. 장자(張子)가 일찍이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학문이 마음에 얻어지면 말을 닦아야 한다. 말에 잘못이 없는 뒤에야 일을 결단하고, 일을 결단함에 실수가 없어야 내가 비로소 패연(沛然)하게 되니, 의리를 정밀하게 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은 미리 대비할 뿐이다.〔吾學旣得於心, 則修其辭, 命辭無差, 然後斷事, 斷事無失, 吾乃沛然, 精義入神者, 豫而已矣.〕" 하였다.
- 주석 176)겸애(兼愛)는 …… 이르고
-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한다는 묵적(墨翟)의 겸애주의와 자신만을 위한다는 양주(楊朱)의 개인주의의 유폐(流弊)를 지적한 맹자의 말로,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양주는 자신만을 위하니, 이것은 군주를 없이 여기는 것이다. 묵적은 모두 사랑 하니, 이것은 부모를 없이 여기는 것이다. 부모와 군주가 없다면 이것은 금수와 다를 바가 없다.〔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라는 구절이 보인다.
- 주석 177)사람의 …… 것
- 고자(告子)가 "사람의 본성은 버드나무와 같고, 의는 버드나무로 만든 그릇과 같으니, 사람의 본성으로 인이나 의를 하게 하는 것은 마치 버드나무를 구부려서 버들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性猶杞柳也, 義猶桮棬也, 以人性爲仁義, 猶以杞柳爲桮棬.〕"라고 하자, 맹자가 "만약 버드나무를 상하게 하면서 그릇을 만든다면 또한 장차 사람을 상하게 하면서 인의를 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인가. 천하 사람을 몰아 인의를 해치게 하는 것은 반드시 그대의 이 말일 것이다.〔如將戕賊杞柳而以爲桮棬, 則亦將戕賊人以爲仁義歟? 率天下之人而禍仁義者, 必子之言.〕"라고 하여 그 유폐(流弊)를 지적하였다. 《孟子 告子上》
論吳震泳所撰〈鄭節士傳〉後論 【乙亥】
野儒無言責官守, 國亡不死無責. 然其守身歸潔之義, 關華夷防重而爲天下之望. 使天下夷, 而 儒能不夷, 則天下猶華也, 天下華, 而儒不能華, 則天下卽夷也, 其重不特言責官守. 故古人謂" 儒者守節爲拗天." 然則儒者畏死失節而亡華, 罪有甚於言責官守畏死失節而亡國, 其嚴乎. 節 士其有聞於此義者歟. 嗚呼! 偉哉烈哉.
夫辭者, 效之先也, 有其辭, 則必有是效, 不於身則於人, 不於今則於後, 未有有其辭而無其效者也. 張子曰: "命辭無差, 然後斷事無失." 蓋爲此也. 故君子必於立言而謹愼焉. 余觀吳震泳〈鄭節士傳〉有曰: "使天下夷, 而儒能不夷, 則天下猶華也." 此則可也, 而繼之曰: "天下華, 而儒不能華, 則天下卽夷也." 則此以儒爲可華可夷者, 以華爲可儒可夷者之說也. 混華夷爲儒, 儒夷爲華, 儒華之本面, 皆安在也? 徇名求實, 則儒華之不待坑猾而亡滅者, 業已久矣. 兼愛, 墨子之一言也, 終至於無父無君矣, 性猶杞柳, 告子之一言也, 終至於率天下而禍仁義者. 世道之卽事, 聖人之已言也. 以此準彼, 彼其一言之禍烈, 豈減於墨告二子之言之已效者耶? 故余特奮筆論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