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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 대암서사에서 제군에게 보임 【1926년】(臺巖書社示諸君 【丙寅】)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3.0001.TXT.0046
대암서사에서 제군에게 보임 【1926년】
농부가 살이 익고 땀이 비 오는 듯하며, 손바닥과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여도 수고로움을 모르는 것은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백공(百工 온갖 장인)이 공장에 있을 때 구상하고 애쓰되, 좋지 않으면 일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기물(器物)을 정밀하게 하고자 해서이다. 적녀(績女 길쌈하는 여자)가 삼으로 실을 만들고 고치에서 실을 뽑을 때 일찍 일어나서 늦게 자며, 척(尺)과 촌(寸)을 쌓아서 장(丈)과 필(匹)을 이룬다. 상인이 길에서 생각하며 견주어 헤아리는 데에 정신을 소모하면서도 꺼리지 않는 것은 행상(行商)주 470)하여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어부와 수렵인은 깊은 숲으로 달려가고 큰 바다로 들어가 거의 호랑이와 고래의 먹잇감이 된 후에 얻는 것이 있다.
선비는 무엇을 하는 자인가. 편안히 지내면서 사민(四民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으뜸이 되니,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윤상(倫常)의 도를 익히고 정치와 교화의 방법을 궁구하여 이를 자신의 몸에 체득하고 남에게 시행하여 백성들에게 생업을 편안히 하고 성품을 이루게 하며, 포부를 펼칠 수 있는 때를 얻으면 그 혜택이 성대하고, 비록 곤궁할지라도 풍의(風義 풍도와 의리)와 서론(緖論 조리 있는 언론)이 오히려 세상을 유지할 수 있는 자는 선비이다. 그러므로 편안히 지내면서 으뜸이 되어도 너무 지나침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실제를 살펴보면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어 먹는 것은 농부의 곡식이고, 입는 것은 길쌈하는 자의 베이며, 장인의 기물, 상인의 물품, 어부와 수렵인의 음식물을 의지하고 사용하니, 이는 백성의 좀으로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선비가 되려고 배우는 그대들은 명산(名山)의 큰 집에 양식을 가져가서 먹고 계절에 맞게 옷을 입으며 모든 공구(供具 필요한 물품)가 여유롭지만 이는 본디 당연한 것이라고 하여 스스로 편안하게 여긴다면 어찌 업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자가 경학과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크게 명실(名實)을 이루어 장차 퇴폐한 풍조에서 홀로 우뚝한 기둥이 되어 혼란한 세상에서 한 줄기 희망을 부지하면, 조만간에 천운이 안정되어 크게 인간 세상에 꾀함이 있을 것이다. 군자는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소인은 몸을 수고롭게 하니,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수고롭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편안하다. 그런데 이제 미치지 못한 자질로 백성을 구제하는 바람에 응하니, 수고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만히 보건대 그대들이 마음을 쓰는 것이 도리어 농부, 장인, 상인, 소인의 노력만 못하니, 나는 그대들이 백성의 으뜸이 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 혹 백성의 좀이 될까 두렵다. 이와 같을 바에야 차라리 돌아가서 각자 농부, 장인, 상인의 한 가지 일을 하여 스스로 그 일에 부끄러움과 죄가 없는 것을 누리는 것만 못하니, 각자 두려워하고 힘써 노력할 줄을 알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용렬한 스승이 남의 자제를 그르치는 것은 용렬한 의사가 사람을 죽이는 것과 죄가 같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남의 스승된 자를 위한 따끔하고 매서운 교훈이다. 내가 여기에 한 마디 덧붙여 말하기를 "제자가 스승을 어기고 자신을 그르치는 것은 병든 사람이 의사를 꺼려 자신을 죽이는 것과 죄가 같다."라고 하니, 이 또한 마땅히 남의 제자가 된 자를 위한 따끔하고 매서운 교훈이다.
이를 통해서 반론해보면, 훌륭한 스승이 남의 자제를 이루어 주는 것은 훌륭한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것과 공이 같고, 제자가 스승을 따라 자신을 이루는 것은 병든 사람이 의사를 믿고 자신을 구제하는 것과 공이 같으니, 이 또한 마땅히 남의 스승이 된 자와 남의 제자가 된 자를 위한 하늘의 복음(福音)이다. 형편없는 내가 그대들과 함께 따끔하고 매서운 교훈에 조심하며 복음에 나아가고자 한다.
주석 470)행상(行商)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일이다.
臺巖書社示諸君 【丙寅】
夫農者炙膚沐汗, 腁手胝足而不知勞者, 爲百畝易也. 百工居肆, 運思費力, 不善事不措者, 欲器物精也. 績女緝麻繅繭, 早興晏寢, 積尺寸以就丈匹. 商者用慮於道途, 弊精於較量而不憚者, 以行貨而贏利也. 漁與獵者馳深林, 入大洋, 幾爲虎鯨食然後, 有所獲也. 夫士者何爲者也? 安居而爲四民首, 不以泰乎? 講倫常之道, 究政敎之術, 得之身而施之物, 俾百姓之安業遂性, 得其時, 其澤沛然, 雖窮焉, 風義緖論, 猶足以持世者士也. 故安且首焉, 而不爲泰也. 若考其實而無有, 食農者粟, 衣績者布, 工之器, 商之貨, 漁獵之味, 是資是用焉, 是爲民蠹, 厥罪罔赦. 諸君學爲士者, 名山傑舍, 齎粮而食, 適節而衣, 一應供具裕如也, 而以爲是固然而自安, 豈非謂業乎? 斯者窮經硏理, 隆成名實, 將以峙頹流之獨柱, 扶一陽於純坤, 早晩天定, 大有猷爲於人世乎. 夫君子勞心, 小人勞力, 勞心者勞, 勞力者逸, 今以不逮之資, 酬大發願, 顧不勞而得乎! 竊覵諸君之用心, 反不若農工商賈小人之勞力, 吾恐諸君之難望乎民首而或歸乎民蠹也. 與其如此, 曷若歸而各作農工商賈之一業, 自食其功之爲無愧無罪也, 其各悚惕而知勖. 昔人云: "庸師誤人子弟, 與庸醫殺人同罪.", 此爲爲人師者頂門針. 余有一言足之曰: "弟子違師誤身, 與病人忌醫殺身同罪.", 此亦當爲人弟者頂門針. 由是反而論之, 良師成人子弟, 與良醫活人同功, 弟子從師成身, 與病人信醫濟身同功, 此又當爲爲人師爲人弟者天福音, 請淺拙與諸君之兢兢乎頂針, 進進乎福音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