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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 세속에서 문자의 호칭을 오용하는 것에 대한 변론(世俗文字稱號誤用辨)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세속에서 문자의 호칭을 오용하는 것에 대한 변론
공자가 '인(仁)하지만 말재주가 없다.'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어찌 말재주를 쓰겠는가. 넉넉한 말재주로 남의 말을 막아서 자주 남에게 미움만 받을 뿐이다.주 382)"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말재주가 없는 것은 바로 미덕(美德)이다. 고금에 문인들이 대부분 말재주가 없다는 것으로 자칭(自稱)하는데 이는 미덕으로 자처하는 것이니, 어찌 겸사(謙辭)이겠는가. 문인뿐만 아니라 중세 이후 현유(賢儒)도 대부분 이와 같았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들은 결코 그대로 따라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남의 조카를 일컬어 '함씨(咸氏)', '영함(令咸)', '종함(從咸)', '당함(堂咸)'이라 하니, 이는 무슨 의의(義意)가 되는가. 완함(阮咸)주 383)은 본래 완적(阮籍)주 384)의 조카이니, 다른 사람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게다가 완적과 완함은 숙질(叔姪)간으로, 예법의 밖에서 스스로 거리낌 없이 행동하였으니, 본래 사모할 만한 현자가 아닌데, 차용하여 체면을 세워주는 자가 어떻게 이로써 남을 일컬어 해를 끼치는가. 심지어 그 조카를 '함씨', 그 숙부를 '완장(阮丈)', '종완장(從阮丈)', '당완장(堂阮丈)'으로 일컫는데 이르러서는, 한번은 그 이름을 들고, 한번은 그 성을 들었으니 더욱 지극히 가소롭다.
증자가 자리를 바꾼 것은주 385) 비록 바름을 얻었다고 하지만, 결국 그가 자리를 바꾸기 전에는 스스로 살피지 못한 일이니, 촛불을 잡고 있던 동자(童子)가 아니었다면 혹 거의 바름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다만 마땅히 그가 바름을 얻은 것을 사모하여 배우고, 그 전에 살피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논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결국 이는 증자가 홀로 행한 일일 뿐인데, 어찌하여 후대에 유현(儒賢)이 몰(沒)했을 때, 이러한 일이 있지 않은데도 관례로 역책을 일컫는가.상례의 형식[易]과 슬퍼하는 마음[戚]은주 386) 모두 중도(中道)를 잃은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거상(居喪)을 잘한 사람을 일컬어 바로 '이척(易戚)이 모두 지극하다.'라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마땅히 '감정과 형식이 모두 지극하다.[情文備至]'라고 해야 한다.
아들의 죽음에 곡하다가 실명(失明)한 것은주 387) 자하(子夏)의 지나친 부분인데, 요즘 사람들은 자식을 잃은 사람을 일컬어 바로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 하니, 이러한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아내를 잃고 동이를 두들기면서 노래를 부른 것은 장자(莊子)의 방탕함이니주 388), 또 아내를 잃은 사람을 일컬어 '고분지통(叩盆之痛)'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마씨(馬氏)의 5형제 가운데 마량(馬良)주 389)의 자는 계상(季常)인데, 자라면서 눈썹이 하얗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씨의 오상(五常) 가운데 흰 눈썹[白眉 마량]이 가장 뛰어나다.주 390)"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남의 백형(伯兄)을 '백미(白眉)'로 일컫고 '가장 뛰어나다.'는 뜻을 취했으니, 아름다운 호칭인 듯하다. 그러나 '백미'는 결국 사람의 모습이 변이(變異)한 것이니, 이러한 호칭은 남의 형을 공경하는 도리가 아니다.
상고시대에 푸른 매화[靑梅], 풀명자나무[査上] 위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자녀의 혼사를 정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이 어떤 책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세속에서 신랑과 신부의 부모가 서로 '사돈(査頓)'으로 부른다고 하니, 이는 무의미한 말이다. 그렇다면 만일 풀명자나무 위가 아닌 꽃 아래[花下]에서 머리를 조아렸다면 마땅히 '화돈(花頓)'으로 일컬어야 하는가.
'윤(胤)'은 《자서(字書)》에 '계통을 잇다[繼]', '잇다[嗣]'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윤'은 장자(長子)를 일컫는 것이니, 지금 세속의 서찰과 언어에서 남의 아들을 일컬을 때 장자와 차자(次子)를 묻지 않고 공통으로 '윤우(胤友)', '윤군(胤君)'이라고 하는 것은 오류이다. 10년 전에 내가 사는 고을의 임 박사(林博士)가 박모(朴某)에게 편지를 보냈었는데, 그 차자에 대해 언급하면서 "윤군이 와서 배웠다. ……"라고 말하였다.
이때 마침 박모의 장자가 죄를 범해 밖에 피해있었는데, 일본 사람이 집 안의 문서를 탐색하다가 임 박사의 편지를 찾고는 와서 따져 물었다. 이에 임 박사가 말하기를 "내가 그의 차자를 가리켰고, 그의 장자는 애초에 무관하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일본 사람이 말하기를 "《자서(字書)》에서 '윤'은 장자의 칭호이고 공은 박사인데, 어찌 글자의 뜻을 모를 리가 있는가. 이는 임시로 말을 바꾼 것이니, 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 뒤에 박모의 장자를 잡고 난 뒤에야 임 박사가 무사할 수 있었다. 그가 비록 오랑캐이지만 오히려 자학(字學)에 정밀함이 이와 같았다.
내구(內舅)의 아들이 내종(內從)이고 고(姑)의 아들이 외종(外從)인데, 지금 통속적으로 대부분 바꾸어 부르니, 이는 무엇 때문인가? 세속에서 내구를 외숙(外叔)으로 부르기에 그 아들을 외종으로 부른다. 이미 이를 외종으로 불렀으니, 절로 마땅히 고의 아들을 내종으로 불러야 한다. 비록 그렇지만 이는 크게 옳지 않다. 모(母)의 형제가 구(舅)가 되는 것은 예경(禮經)에 드러나 있고, 그 '내구'라고 이른 것은 외구(外舅)와 구별한 것이다. 이미 '내구'라고 하였으니, 그 아들 되는 자가 어찌 내종이 되지 않겠는가. 이 아들이 이미 내종이 되었다면, 출가외인인 고의 아들이 어찌 외종이 되지 않겠는가.
부(父)의 처를 '모(母)'라 하고 부의 자매(姊妹)를 '고(姑)'라 한다. 따라서 고는 다만 마땅히 '고'로 일컬을 뿐이니, 만일 '고모(姑母)'라고 일컬으면 온당치 않다.
세속에서는 처의 형제를 '처남(處娚)'으로 부르는데, 남(娚)이 《자서(字書)》에 보이지 않으니 마땅히 '처형(妻兄)', '처제(妻弟)'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처의 자매(姊妹)를 '처형', '처제'라고 일컫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것은 마땅히 '처자(妻姊)', '처매(妻妹)'라고 해야 한다.
여자 가운데 나보다 먼저 태어난 자를 손윗누이[姊]라 하고, 나보다 뒤에 태어난 자를 누이[妹]라고 하는데, 요즘에는 세속에서 그다지 분별하지 않고 손윗누이의 남편을 '매부(妹夫)', '매형(妹兄)'이라 하고, 손윗누이의 집을 '매가(妹家)'라 한다. 부녀자와 아이들뿐만 아니라 장부로서 장년에 이른 자도 그렇게 부르니 이는 큰 망발이고, 매형이라고 이른 것은 더욱 우습다. 이미 '매(妹)'라고 하였는데 또 어찌 '형(兄)'이라고 하는가. 마땅히 '자부(姊夫)'라고 해야 한다. 만일 '자형(姊兄)', '매제(妹弟)'라고 이른다면 겨우 말이 된다.
'수(嫂)'는 형의 아내이니, 세속에서 '제수(弟嫂)'라고 일컫는 것은 터무니없다. 마땅히 '제부(弟婦)'라고 해야 한다.
시문(詩文) 사이에 세속 사람들이 '경성(京城)'을 '장안(長安)', '낙양(洛陽)'으로 일컫는 것은 잘못이다. 장안과 낙양은 본래 그 지역이 있는데 어느 곳에 해당되는가. 사실을 기록하는 글 및 장문(狀文)이나 갈문(碣文)을 지을 때 더욱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하(芐)'는 지황(地黃)이니, 지황은 가라앉아 내려가는 성질이 있기에 풀 초(艸)를 좇고 아래 하(下)를 좇는다.주 391) 그런데 요즘에는 '변[苄]'이 되었으니주 392), 예를 들어 '생변[生苄 생지황]', '숙변[熟苄 숙지황]', '변개(卞介)'라고 하는 것은 약성(藥性)에 있어서 어느 것에 해당하는가.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의 합장(合葬)은 〈단궁(檀弓)〉에서 무덤 안의 관(棺 속 널)과 곽(槨 겉 널)의 이합(離合)으로써 말하였다.주 393)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분묘(墳墓)의 합봉(合封)과 각봉(各封)으로써 말하니, 인가(人家)의 묘도 문자(墓道文字)에 사용하는 것은 사실에 근본한 것이 아니다.
옛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다만 그 자손만 보았을 경우, 그 아들을 평범한 사람이나 용렬한 사람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에 문 위에 '봉(鳳)'자를 써서 붙이고 돌아갔다.주 394) 그러나 글자가 비록 겉보기에 좋지만 실제로는 범조(凡鳥)주 395)이기에 당나라 시에 '문에 이르러 감히 범조(凡鳥)라고 쓰지 못한다.주 396)[到門不敢題凡鳥]'라고 이른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서찰에 '봉'자를 쓰고 돌아오는 것을 무난하게 사용하니, 이는 범조로 남의 자손을 대우하는 것이다.
양자로 나아가 과방(過房)주 397)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경전에는 보이지 않고, 조조(曹操)주 398)가 하후승(夏侯嵩)주 399)의 후사가 된 데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생각건대 그것(과방)은 이성(異姓)의 후사가 된 경우에만 사용하고, 동성(同姓)의 후사가 된 경우에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진 강공(秦康公)이 그 외삼촌을 전송하여 위양(渭陽)에 이르렀기에주 400) 다른 사람의 외삼촌을 '위양장(渭陽丈)'이라고 일컫는다. 주자가 사자(獅子)를 그려 외손(外孫)에게 주었기에주 401) 외손을 '사손(獅孫)'으로 일컫는데, 모두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만일 외삼촌을 전송하여 낙양(洛陽)에 이르렀다면 마땅히 '낙양장(洛陽丈)'이라고 해야 하고, 외손에게 호랑이를 그려주었다면 마땅히 '호손(虎孫)'이라고 해야 하는가.
좌태충(左太冲)이 〈삼도부(三都賦)〉를 지었는데, 황보밀(皇甫謐)주 402)의 서문(序文)을 얻은 뒤에 문장의 명성이 더욱 성대해졌다.주 403) 세상에서는 황보밀을 '현안 선생(玄晏先生)'으로 일컫기 때문에 문집의 서문을 '현안지탁(玄晏之託)', '현안지역(玄晏之役)'이라고 하니, 요즘 사람들이 묘도 문자(墓道文字)에 이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공자가 옛날에 머물렀던 관사(館舍) 주인의 상(喪)을 만나 참마(驂馬)주 404)를 벗겨 부의(賻儀)하게 하자, 문인이 너무 중하다고 의아해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한 번 (관사의 주인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으니, 나는 이유 없이 눈물 흘리는 자를 싫어한다. 소자들아, 부의를 행하라.주 405)"고 하였다.
이것은 '내가 이미 곡을 하고 나와서 눈물을 흘렸는데, 만일 부의를 하지 않으면 이 눈물은 내력(來歷) 없이 다만 흘리는 것이니, 이 어찌 인정(人情)에 마땅한 것이겠는가.'라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부의의 예를 행한 뒤에라야 바로 인정에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남의 만사(挽詞)주 406)에 바로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린다.[涕無從]'라는 말을 쓰고 말하기를 "눈물이 갑자기 나오기에 '무종(無從)'이라 한다."라고 하니, 그 잘못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근심스러워할 만하다. 무릇 이유 없이 눈물 흘리는 것은 공자가 미워한 것이니, 어찌 다른 사람을 애도하는 말에 사용할 수 있겠는가.
- 주석 382)인(仁)하지만 …… 뿐이다
-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나온다.
- 주석 383)완함(阮咸)
- ?~?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문인으로, 자는 중용(仲容)이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이다. 죽림칠현의 다른 한 사람인 완적의 조카이다. 술을 잘 마셨으며 종종 완적과 함께 음주를 즐겼다. 이 때문에 당대의 선비들에게 질시를 받았다.
- 주석 384)완적(阮籍)
- 210~263. 자는 사종(嗣宗)이다. 위나라 진류(陳留) 사람이다. 아버지는 후한(後漢) 말의 명사이자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완우(阮瑀)이다. 성격이 호방하고 예법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다.
- 주석 385)증자가 …… 것은
-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증자가 병으로 누워 위독했다. 그런데 구석에 앉아 촛불을 잡고 있던 동자가 '빛나고 화려하니 대부(大夫)가 사용하는 자리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증자가 듣고 두려운 기색을 띠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자가 반복하여 말하자, 증자가 '바른 것을 얻고서 죽으면 그뿐이다.'라고 붙들어 일으키고 자리를 바꾸었는데, 다시 자리에 누워 안정되기도 전에 몰(沒)했다."라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 주석 386)상례의 …… 마음[戚]은
- 《논어》 〈팔일(八佾)〉에서 공자가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상은 형식적으로 잘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라고 말한 데서 나왔다.
- 주석 387)아들의 …… 것은
- 《예기》 〈단궁 상〉에 "자하가 아들을 잃고 실명하였다.[子夏喪其子, 而喪其明.]"라고 한 데서 나왔다.
- 주석 388)아내를 …… 방탕함이니
- 《장자(莊子)》 〈외편(外篇) 지락(至樂)〉에 "장자의 아내가 죽어서 혜자(惠子)가 문상을 갔는데, 장자가 마침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동이를 두들기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莊子妻死, 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 鼓盆而歌.]"라고 말한 데서 나왔다.
- 주석 389)마량(馬良)
- 187~222. 자는 계상(季常), 백미(白眉)이다.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이고, 마씨의 5형제 가운데 장남이다. 눈썹이 흰색이라 백미(白眉)라고도 불렸다.
- 주석 390)당시 …… 뛰어나다
- 《삼국지(三國志)》 권39 〈촉서(蜀書) 마량전(馬良傳)〉에 "마량은 자가 계상으로 양양 의성 사람이다. 그의 집에 5형제가 있었는데 모두 재주가 출중했다. 고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씨의 오상 가운데 흰 눈썹이 가장 뛰어나다.'라고 하였다. 마량이 눈썹에 흰 털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일컬어졌다.[馬良字季常, 襄陽宜城人也. 兄弟五人, 並有才名, 鄉里爲之諺曰:'馬氏五常, 白眉最良.'. 良眉中有白毛, 故以稱之.]"라고 말한 데서 나왔다.
- 주석 391)풀 …… 좇는다
- '芐'자가 풀 초와 아래 하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 주석 392)'변(卞)'이 되었으니
- '芐'는 '지황 하'인데, '下'자가 '卞'자로 잘못 읽히면서 '변[苄]'이라는 한국식 한자가 생긴 듯하다. 따라서 '숙하(熟芐)'가 맞고 '숙변[熟苄]'은 잘못이지만, '숙변'을 '숙하'의 변한 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때문에 우리 사전에서도 '숙변'과 '숙하'를 모두 인정하여 이 두 단어를 서로 유의어로 보았다.
- 주석 393)노(魯)나라와 …… 말하였다
- 춘추 시대에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합장하였는데, 그 방식이 달랐다는 것을 말한다. 《예기》 〈단궁 하〉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위나라 사람들의 합장은 분리하였고, 노나라 사람들의 합장은 합하였는데, 노나라 방식이 더 좋다."라고 하였고, 소(疏)에 "부는 합장이다. 분리한다는 것은 겉 널 속에 어떤 물건으로 두 속 널의 사이를 격리시키는 것이다. 노나라 사람들은 합하였으니, 이는 두 속 널을 함께 겉 널 속에 두고 다른 물건으로 격리시키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 394)옛사람들은 …… 돌아갔다
- 《세설신어(世說新語)》 〈간오(簡傲)〉에 "(진(晉)나라) 여안(呂安)이 (절친) 혜강(嵇康)을 찾아갔는데, 마침 혜강은 없고 그의 형 희(喜)가 나와서 맞이하였다. 그러자 여안은 방 안에 들어가지 않고 문 위에 '봉'자를 써서 붙이고 떠났다.[安後來, 值康不在, 喜出戶延之. 不入, 題門上作鳳字而去.]"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손이 찾아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는 뜻이다.
- 주석 395)글자가 …… 범조(凡鳥)
- '봉'자를 파자(破字)하면 범조가 된다. 이는 시원찮은 새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이나 용렬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 주석 396)당나라 …… 못한다
- 왕유(王維)의 〈춘일여배적과신창리방여일인불우(春日與裴迪過新昌里訪呂逸人不遇)〉라는 시에 나온다.
- 주석 397)과방(過房)
- 아들이 없을 경우 형제 또는 일가의 친척을 양자로 삼는 일, 또는 그 사람을 말한다.
- 주석 398)조조(曹操)
- 155~220. 중국(中國) 후한(後漢) 말기(末期)의 무장(武將)이다. 본성은 하후(夏侯)이고 자는 맹덕(孟德)이다. 황건(黃巾)의 난(亂)을 다스려 군공(軍功)을 세웠다. 원소(袁紹)와 같이 도적과 흉노(匈奴)를 토벌하면서 세력을 확장하여, 동탁(董卓)의 사후 정권을 장악하였다.
- 주석 399)하후승(夏侯嵩)
- 본래 조조의 아버지 조숭(曹嵩 ?~194)이다. 자는 거고(巨高)다. 성은 본래 하후씨(夏侯氏)였는데, 환관 조등(曹騰)의 수양아들이 되었다.
- 주석 400)진 강공(秦康公)이 …… 이르렀기에
- 춘추 시대 진 강공이 망명 생활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삼촌 중이(重耳), 즉 진 문공(晉文公)을 전송할 때에 "내 외삼촌을 전송하여 위양에 이르렀노라.[我送舅氏, 曰至渭陽.]"라고 노래한 내용이 《시경》 〈진풍(秦風) 위양(渭陽)〉에 나온다.
- 주석 401)주자가 …… 주었기에
- 주희가 사위 황간(黃榦)에게 한 폭의 사자 그림을 보내면서, '외손 황로(黃輅)가 떨쳐 일어나 포효하는 사자를 닮기 바란다.'라고 하는 내용이 《주자대전 속집(朱子大全 續集)》 권1 〈답황직경(答黃直卿)〉에 보인다. 또 《서산문집(西山文集)》 권35 〈화사첩(畫師帖)〉에 "주 문공이 육탐미가 그린 사자상을 그 외손 황로에게 보내 주었다. 황로의 자는 자목이니, 면재의 장자이다.[朱文公以陸探微所畫師子像, 遺其外孫黄輅. 輅字子木, 勉齋長子也.]"라는 내용이 나온다. 육탐미는 육조(六朝) 시대 송(宋)나라의 유명한 화가이다.
- 주석 402)황보밀(皇甫謐)
- 215~282. 위(魏)나라와 진(晋)나라 사이의 의사이자 문학가이다. 자는 사안(士安)이고 어릴 때 이름은 정(靜)이며, 현안 선생(玄晏先生)이라 자호(自號)하였다.
- 주석 403)좌태충(左太冲)이 …… 성대해졌다
- 태충은 좌사(左思, ?~?)의 자이다. 서진(西晉)의 시인이다. 좌사가 10년 동안 구상하여 〈삼도부(三都賦)〉, 즉 〈촉도부(蜀都賦)〉, 〈오도부(吳都賦)〉, 〈위도부(魏都賦)〉를 지었는데, 황보밀이 서문을 써주어 칭찬하자 부귀한 자들이 서로 다투어 베껴서 낙양의 종이값이 폭등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晋書)》 권92 〈문원전(文苑傳) 좌사(左思)〉
- 주석 404)참마(驂馬)
- 《예기》 〈단궁 상〉의 주에 "수레에 멍에를 멜 때, 가운데 두 마리는 복마(服馬), 양쪽 바깥의 각각 한 마리는 참마가 된다.[駕車者, 中兩馬爲服馬, 兩旁各一馬爲驂馬.]"라고 하였다.
- 주석 405)공자가 …… 행하라
- 《예기》 〈단궁 상〉에 나온다.
- 주석 406)만사(挽詞)
- 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지은 글이다.
世俗文字稱號誤用辨
孔子答仁而不侫之問曰: "焉用侫?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則不侫乃美德也. 古今文人多以不侫自稱, 是以美德自居也, 烏在其爲謙辭也? 非惟文人, 中世以降, 賢儒亦多如此, 然後之人決不可襲用.
稱人之姪曰咸氏令咸從咸堂咸, 是爲何等義意? 阮咸自是阮籍之姪, 他人何關? 且籍咸叔姪, 自放禮法之外, 則本非可慕之賢, 借用生光者, 何以是稱人而累之也? 至於稱其姪爲咸氏, 稱其叔爲阮丈從阮丈堂阮丈, 一擧其名, 一擧其姓, 尤極可笑.
曾子易簀, 雖云得正, 而終其未易之前, 自是未察之事, 若非執燭童子, 或幾乎不得正矣. 後之人只當慕其得正而學之, 不必論其前之未察. 然終是曾子獨行之事而已, 胡爲乎後世儒賢之沒也, 非有此事而例稱易簀也?
喪之易戚, 皆失中者也, 今人稱人之善居喪也, 乃曰易戚備至, 此何謂也? 當曰情文備至.
哭子喪明, 子夏之過處, 今人稱人之喪子, 乃曰喪明之痛, 此不可用. 喪妻叩盆而歌, 莊子之放狂也, 亦不可稱人喪妻, 曰叩盆之痛.
馬氏五兄弟, 良字季常주 3), 居長而眉白. 時人語曰: "馬氏五常, 白眉最良.". 以是今人稱人之伯兄曰白眉, 取其最良之義, 則似爲美稱. 然白眉終是人形之變異者, 則是稱非敬人兄之道也.
上古之有頓首於靑梅査上, 而定子女婚者, 此未知出於何書, 而今俗壻婦之父母, 相稱曰査頓云, 此無意味之說. 若頓首不於査上而於花下, 則當稱花頓乎?
胤《字書》繼也嗣也. 然則胤是長子之稱, 今俗書札言語間, 稱人之子, 不問長次, 通謂胤友胤君誤也. 十年前, 吾鄕林博士書于朴某, 語及其次子曰: "胤君來學云云.". 適朴之長子, 有犯避外, 日人探索家中文書, 得林札來詰, 林曰: "吾指其次子, 其長子初無關.". 日人曰: "《字書》胤長子之稱, 公爲博士, 豈有不知字義之理乎? 此是臨時易辭, 吾不信.". 其後得朴之長子, 然後林得無事, 彼雖夷虜, 猶精於字學如此.
內舅之子爲內從, 姑之子爲外從, 今俗擧多換稱, 此何以故? 俗呼內舅爲外叔, 故呼其子爲外從. 旣呼此爲外從, 則自當呼姑之子爲內從矣. 雖然, 此大不然. 母之兄弟爲舅, 著於禮經, 而其云內舅者, 別於外舅也. 旣云內舅, 則爲其子者, 豈不爲內從乎? 此旣爲內從, 則嫁外之姑之子, 豈不爲外從乎?
父之妻曰母, 父之姊妹曰姑, 姑只當稱姑, 若稱姑母, 未安.
俗呼妻之兄弟曰處娚, 娚《字書》無見, 當曰妻兄妻弟, 而今乃稱妻之姊妹曰妻兄妻弟, 何也? 此則當曰妻姊妻妹.
女子之先己而生者爲姊, 後己而生者爲妹, 今俗不甚分別, 稱姊之夫曰妹夫妹兄, 姊家曰妹家. 非惟婦孺, 丈夫而壯者亦然, 大是妄發, 妹兄之云, 尤可笑. 旣云妹, 又何兄? 當曰姊夫矣. 若姊兄妹弟之云, 僅成說.
嫂兄妻也, 俗稱弟嫂者妄也. 當云弟婦.
詩文間, 俗稱京城爲長安洛陽者非也. 長安洛陽自有其地, 何所當乎? 至於記實之文及狀碣之作, 則尤不可用.
芐地黃也, 地黃性沈下, 故從艸從下. 今作苄, 例曰生苄, 熟苄, 卞介也, 於藥性, 何所當乎?
魯祔衛祔, 〈檀弓〉以壙內棺槨離合而言, 今人以墳墓之合封各封而言, 用於人家墓道文字, 非本實也.
古人有訪人不遇, 只見其子, 其子凡庸, 故題鳳字於門上而歸者. 字雖外好, 而其實凡鳥也. 故唐詩云到門不敢題凡鳥. 今人書札題鳳而歸, 無難用之, 是以凡鳥, 待人之子也.
謂出後爲過房, 經傳無見, 而始見於曹操爲夏侯嵩之後, 意其但用於爲後異姓, 而不可用於爲後同姓也.
秦康公送其舅, 至渭陽, 故稱人之舅曰渭陽丈. 朱子畵獅子, 贈外孫, 故稱外孫曰獅孫, 皆不可用也. 若使送舅至洛陽, 則當曰洛陽丈, 畵贈外孫以虎子, 則當曰虎孫乎?
左太冲作〈三都賦〉, 得皇甫謐序文, 然後文章之名益盛. 皇甫謐世稱玄晏先生, 故稱文集序爲玄晏之託, 玄晏之役, 今人於墓道文字, 亦用之此誤也.
孔子遇舊館人之喪, 脫驂而賻之, 門人疑其已重. 孔子曰: "吾遇於一哀而出涕주 4), 吾惡夫涕之無從者, 小子行之!" 此言吾旣哭之而出涕, 若不賻則此涕爲無來歷而徒出, 是豈人情之當然乎? 故必行賻禮, 然後乃當於人情也. 今人挽人之詞, 乃用涕無從之語而曰: "涕淚忽然而出, 故曰無從.", 其錯解誤用可㦖. 大抵涕之無從, 孔子之所惡者, 烏可用於悼人之詞乎?
- 주석 3)良字季常
- 대본에는 '謖字幼常'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을 살펴 수정하였다.
- 주석 4)遇於一哀而出涕
- 대본에는 '一於遇哀而哭之'로 되어 있는데, 《예기》 〈단궁 상〉의 원문에 근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