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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 가규 【1944년】(家規 【甲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가규 【1944년】
제사(祭祀)는 자손의 정성을 모아 조상의 신령을 이르게 하는 것이니, 자손의 행위는 항상 조상에게 명을 듣는 것처럼 해야 한다. 이는 바로 인륜의 궁극(窮極)이고 가정의 대관(大關 매우 중요함)이기 때문에 정성껏 제사 지내면 자손이 번창하고, 정성 없이 제사 지내면 자손이 쇠퇴하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당(祠堂)은 제사 지내는 장소이니, 정성껏 제사 지내지 않을 수 없다면 사당을 세우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군자가 장차 궁실(宮室)을 지으려고 할 때 먼저 사당을 세우니, 매우 가난할지라도 기필코 힘을 다해 세워야 하고, 거실 한쪽 구석의 벽장에 사판(祀版 신주(神主))을 구차하게 안치해서는 안 된다.
제사는 시제(時祭)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니 비록 가난할지라도 시제를 지내야 하지만, 전혀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봄과 가을에 두 번 행하는 것도 괜찮다. 사당의 삭망참(朔望參)주 260)은 만일 가난이 심하면 옛날에 '사는 월반전(月半奠)이 없다.주 261)'라고 하는 예에 따라 삭참만 행해도 괜찮다.
사당의 신주를 받드는 사람은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배알(拜謁)하는 예를 행한 뒤에 집안사람들에게 각자 자기의 일을 행할 것을 명한다.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 인사를 올리는 것은 자손이 부조(父祖)를 섬기는 간소한 예절로 본래 큰일이 아니었는데, 근대 이후에 윤리가 땅에 떨어져 이를 행하는 자도 매우 적으니 매우 한심하다. 이러한 것도 행하지 않으면 어찌 자손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경계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이를 행하되 새벽에 주인이 사당에 배알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한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제사는 반드시 부부가 친히 지내야 한다.주 262)"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풍속은 상중에 제사 지낼 때 이외에는 주부(主婦)가 아헌례(亞獻禮)를 행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이는 본받아서는 안 되니 더욱 반드시 예에 따라 행해야 한다.
상중에 예를 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의 자식이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반드시 '너무 가난하여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예를 행할 수 없다.'라고 하는데,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사농공상(士農工商)에게는 각자 자신의 업(業)이 있으니, 선비 이외에 어떻게 최질(衰絰)주 263)을 하고 흙덩이처럼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다만 마음으로 슬퍼하면서 스스로 예법을 범하지 않으면 이는 괜찮다. 음악을 듣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에 이르러서는 인류가 아니라고 이르더라도 괜찮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나라에서 바로잡는 법이 있다.주 264)"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다시 논하지 않겠다.
관혼상제(冠婚喪祭)는 모두 대사(大事)인데 속어에서 다만 혼인만을 대사라고 일컫는 것은 진실로 이치가 있으니,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구혼(求婚)의 방법은 온공(溫公)이 논한바 '사위나 며느리의 성품과 행실 및 가법(家法)이 어떠한가를 먼저 살펴야 하고, 그 부귀만을 사모해서는 안 된다.주 265)'라는 것과 같은 등의 설은 더할 것이 없으니, 이는 마땅히 따라서 행해야 한다. 그리고 선대의 문벌과 덕행이 없고 한갓 부귀한 자에 이르러서는, 당장에 소소한 칭찬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함께 혼인하지 않는 것이 지극히 옳다.
사람들은 반드시 혼인할 때 생기(生氣)를 보아야 하고 그 선대를 묻지 말아야 한다고 하니, 이른바 생기라는 것은 자손이 번성하고 식도(食道)가 넉넉한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아! 일반적인 집안과 한미한 집안은 생기에만 전념하는데 사대부 집안은 사기(死氣)를 모으는구나.
나는 부부란 두 성(姓)의 합이라고 들었고 같은 성의 합이라고는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신라와 고려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동성끼리 혼인하여 오랑캐의 풍속을 바꾸지 못한 것은 진실로 통한스러운 일이다. 나라에 이미 금한 것이 있는데 선배들은 또 무엇 때문에 함부로 행하였단 말인가. 내가 혼인을 주관한 이후 절대 행하지 않아 이미 가법이 되었으니, 만일 뒷날 자손들이 준수하지 않으면 이는 그 부조(父祖)의 죽음을 다행스럽게 여기면서 스스로 오랑캐로 돌아가는 것을 달게 여기는 것이다.
장지(葬地)는 무덤을 파내어 팔아넘기는 산을 매입하지 말고【일찍이 이미 파간 것은 논할 것도 없다.】, 절대로 다른 사람의 선산이나 금한 땅에 투장(偸葬)하지 말며, 평장(平葬)하는 것은 시신을 버리는 것과 같으니 이를 '적자(賊子)'라고 한다.
선대의 지장(誌狀)주 266)을 남에게 함부로 맡기지 말라는 것은 선사(先師 간재)의 가규(家規) 중의 말인데, 진실로 이치가 있는 말이기 때문에 이를 표출하였다.
종손(宗孫)은 조상의 사당을 받드는 자이니, 종손을 공경하는 것은 조상을 존중하는 것이다. 무릇 생전의 봉양과 사후의 장례에 관계된 것은 모두 마땅히 종손을 먼저 하고 지자(支子)주 267)와 서자를 뒤에 해야 하며, 언어와 배읍(拜揖)하는 것도 한 층 더 공경해야 한다.
서자와 서손도 똑같이 내 부조(父祖)의 혈기를 받았으니, 마땅히 천시하고 소원하게 해서는 안 된다. 명분(名分)은 하늘이 정한 것이고 사람의 사사로움을 쓴 것이 아니다. 따라서 대우하는 예절도 너무 헤아림이 없어서는 안 되니, 만일 그들에게 예법을 범하게 하면 결국 적자를 능멸하게 될 것이다.
빈궁(貧窮)함을 핑계하여 자식에게 문자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그 자식을 해치고 스스로 아버지로서의 도리를 끊는 것이니, 어찌 그 자식이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행하여 그 아버지를 해치지 않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종족의 남녀가 내외를 통하는 한계는 삼종(三從 8촌) 숙질(叔姪)의 처에 이르고, 사종(四從 10촌) 수숙(嫂叔)주 268)에서부터는 서로 보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지금 세속에서 출가한 고모, 손위 누이, 손아래 누이, 딸이 죽은 뒤 그 남편이 재취(再娶)한 처에 대해 '아고(芽姑)', '아자(芽姊)', '아매(芽妹)', '아녀(芽女)'라 이르고 서로 보면서 왕래가 빈번하며, 그들이 또 그 남편의 전처(前妻)의 친척들을 부르는데도 부형(父兄)과 제질(弟姪)로써 하여 부끄러움이 없다. 심한 경우 친정으로 보면서 해마다 빠짐없이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는 자도 있어서, 그 망령되고 도리에 어긋나며 추하고 무람없음이 더할 수 없이 심하니 절대로 경계해야 한다.
붕우(朋友)는 10년 이상이 많으면 자(字)를 불러서는 안 되지만 나이가 뒤이면 한 번 절해도 괜찮다. 《예기(禮記)》에 "10년 이상이면 형처럼 섬겨라.주 269)"고 하지 않았는가.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남들이 보지 않은 곳에서 예를 삼가라. 이는 음덕과 지극히 착한 행실이 되어 하늘이 반드시 도와줄 것이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주석 260)삭망참(朔望參)
- 삭망참례(朔望參禮)로, 초하루와 보름에 올리는 간단한 제사이다.
- 주석 261)사는 …… 없다
- "사는 보름에 은전을 올리지 않는다.[士月半不殷奠]"라는 말이 《의례(儀禮)》 〈사상례(士喪禮)〉에 나온다.
- 주석 262)제사는 …… 한다
- 《예기》 〈제통(祭統)〉에 나온다
- 주석 263)최질(衰絰)
- 상중에 입는 삼베옷을 말한다.
- 주석 264)나라에서 …… 있다
-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상중에 있으면서 음악을 듣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자는 나라에서 바로잡는 법이 있다."라고 하였다. 《소학》 〈가언(嘉言)〉
- 주석 265)사위나 …… 된다
- 사마온공이 《소학》 〈가언〉에서 "무릇 혼인을 논의할 때에는 마땅히 그 사위나 며느리의 성품과 행실 및 가법(家法)이 어떠한가를 먼저 살펴야 하고, 그 부귀만을 사모해서는 안 된다.[凡議婚姻, 當先察其婿與婦之性行及家法何如, 勿苟慕其富貴.]"라고 하였다.
- 주석 266)지장(誌狀)
- 지문(誌文)과 행장(行狀)을 말한다.
- 주석 267)지자(支子)
- 맏아들 이외의 아들이다.
- 주석 268)수숙(嫂叔)
- 형제의 아내와 남편의 형제를 이른다.
- 주석 269)예에 …… 섬기라
-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나이가 배가 더 많으면 아버지처럼 섬기고, 10년이 더 많으면 형처럼 섬기며, 5년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되 조금 뒤처져서 따라간다."라고 하였다.
家規 【甲申】
祭祀者萃子孫之誠, 致祖考之神靈, 而子孫所爲, 常若聽命於祖考然. 乃人倫之究竟, 有家之大關, 故祭祀誠則子孫昌, 祭祀無誠則子孫衰替, 可不愼哉?
祠堂者祭祀之所也, 祭祀不可不誠, 則祠堂不可不建. 故君子將營宮室, 先立祠堂, 雖甚貧, 期於極力營建, 不可苟安祀版於居室一隅之壁龕也.
祭莫重於時祭, 雖貧, 當行時祭, 萬不得已, 而只行春秋二次爲可. 祠堂朔望參, 若貧甚則依古者士無月半奠之禮, 只行朔參亦可.
奉祠堂之主人, 每晨早起, 行拜謁禮, 然後命家衆各執其業.
昏定晨省, 子孫事父祖之疏節, 本不足爲大事, 而近世以來, 倫理墜地, 行此者亦絶少, 甚可寒心. 此猶不行, 安得爲子孫? 必須惕念行之, 而當先於主人晨謁之前.
《禮》云: "祭也者必夫婦親之.", 今俗於喪中祭以外, 主婦行亞獻禮者甚鮮. 此不可效, 尤必須依禮行之.
喪不執禮, 何可謂人子? 人必稱貧窮服役, 不能執禮, 此不成說. 士農工商, 各有其業, 士以外, 安得衰絰塊坐? 但心有哀戚, 而自不犯禮防則斯可矣. 至於聽樂嫁娶者, 雖謂之非人類可也, 司馬溫公固曰: "國有正法.", 此不復論.
冠婚喪祭, 俱是大事, 而俗語獨稱婚姻爲大事者, 良亦有理, 其不可以盡心乎? 求婚之方, 如溫公所論察壻婦性行及家法何如, 勿苟慕其富貴等說, 蔑以加矣 此當遵行, 至於無先世閥德而徒然富溫者, 目下雖有小小稱譽, 切勿與婚, 至可.
人必稱婚姻, 當觀生氣, 不問其先世, 所謂生氣者, 指子孫繁衍, 食道豊裕而言也. 噫! 常微之家, 獨專生氣, 而士夫之家, 獨萃死氣乎!
吾聞夫婦二姓之合, 未聞同姓之合也. 東方之自羅麗以降至今, 猶有同姓之婚, 而未變夷狄之俗者, 實所痛恨. 國旣有禁, 先輩亦胡爲而冒行也? 吾自主婚以來, 截然不行, 已成家法, 後日子孫, 若不遵守, 是幸其父祖之死而自甘夷狄之歸也.
葬地勿買掘塚賣渡之山【曾已掘去者勿論.】, 切勿偸葬於他人先山當禁之地, 至於平葬者, 與棄尸同, 名之曰賊子.
先世誌狀, 毋得妄託於人, 此是先師家規中語, 而實爲理到者, 故表而出之.
宗孫是奉祖廟者, 敬宗孫, 所以尊祖也. 凡干生養死送, 皆當先宗孫而後支庶, 至於言語拜揖, 亦當一層加敬.
庶子庶孫亦同受吾父祖血氣, 不當賤而疎之, 乃其名分, 天之所定, 非人之容私也. 待遇之節亦不可太沒斟量, 使之越防犯閑, 竟至凌嫡也.
托於貧窮而不敎子以文字者, 是賊其子, 而自絶於父道也, 安可望其子之行子道, 不賊其父乎?
宗族男女通內外之限, 當至於三從叔姪之妻, 自四從嫂叔不許相見.
今俗於出嫁姑姊妹女死後, 其夫再娶之妻謂之芽姑芽姊芽妹芽女, 相見而往來頻煩, 彼又呼其夫前室之黨, 而父兄弟姪而無愧, 甚則視爲親庭, 而課歲覲寧者有之, 其爲妄悖醜褻莫甚矣, 切宜戒之.
朋友十年以上, 不可呼字, 而歲後一拜可也. 《禮》不云: "十年以上, 則兄事之."乎?
施惠於人所不報之地, 謹禮於人所不見之處. 是爲陰德至行, 天必佑之, 可不勉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