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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 정통론 상 【1944년】(正統論上 【甲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3.0001.TXT.0024
정통론 상 【1944년】
정(正)은 천하를 정도로써 얻은 것이고, 통(統)은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니, 비록 통일했지만 정도로써 얻지 않았다면 정통(正統)이 될 수 없고, 비록 정도로써 얻었지만 통일하지 못했다면 정통이 될 수 없다. 한번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아 이러한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삼대(三代 하은주(夏殷周)) 이외에 정통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漢)나라와 명(明)나라뿐이다. 예를 들면 당(唐)나라가 정치를 밝히고 송(宋)나라가 관인(寬仁)을 숭상하여 국운을 장구하게 누렸지만 그들이 정도로써 얻지 않은 것은 동일하니 또한 정통에 들어갈 수 없다.
묻기를 "그렇다면 그대는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의 범례(凡例)에 어긋나는 것이니주 190), 어찌하겠는가."라고 하여, (내가) 말하기를 "의리(義理)는 천하의 공정한 것이기 때문에 의리를 잘 살펴보는 자는 오직 옳은 것만을 좇고, 그 말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왔는지는 묻지 않는다. 《자치통감강목》에서 이미 진(秦)나라, 진(晉)나라, 수(隋)나라가 정도로써 얻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들 나라가 능히 통일했기 때문에 정통으로 인정한 것은주 191) 이러한 예를 미룬 것이다. 만일 신(新)을 세운 왕망(王莽)주 192)이 처형되지 않고 나라를 자손에게 전해주었다면주 193) 또한 장차 정통으로 인정하겠는가. 이 때문에 나는 《자치통감강목》을 미완성의 책이라고 본다. 주자도 진실로 수정(修正)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무릇 《시경》 중에서 정(正)이 될 수 없는 것은 변풍(變風)과 변아(變雅)주 194)가 되니, 진(秦)나라, 진(晉)나라, 수(隋)나라, 당(唐)나라, 송(宋)나라를 변통(變統)이라 이르면 진실로 옳을 것이다.
사군자가 입론(立論)할 때에는 마땅히 충분히 지당(至當)한 것으로 귀결시켜 선에 권장하는 바를 두고 악에 징계하는 바를 두게 하면, 저 사지(私智)와 강한 힘으로 못하는 짓이 없이 천하를 취하는 자일지라도 오히려 후세의 사책(史策)에서 비난하고 주벌하는 것을 꺼릴 것이다. 예를 들면 조조(曹操)가 한나라 제위(帝位) 곁을 배회하면서도 감히 바로 취하지 못한 것과 같다.주 195) 그러니 선비 가운데 붓을 잡은 자가 다만 정(正)과 부정(不正)을 궁구하지 않고 그 이룬 것만 보고 정통으로 인정한다면 무엇을 권장하고 경계할 것인가. 만일 《자치통감강목》을 편찬하는 날에 이러한 말로써 명백히 아뢰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면, 주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이를 따르지 않았을 줄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묻기를 "그대의 말과 같다면 후세에 다시는 정통이 없이 몇천 년의 변통 가운데 지나가 버릴 것이니,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겠는가."라고 하여, 내가 말하기를 "90일간의 봄에 맑은 날이 항상 적고 예로부터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으니, 세상에 변이 많고 정이 적은 것도 이러한 이치이다. 우선 변통이라고 말하지 말라. 비록 무통(無統)주 196)이라도 어찌하겠는가. 육조(六朝)주 197), 오계(五季)주 198)와 지금의 천하는 다만 무통일 뿐이다. 그러나 한나라가 망한 때부터 명나라가 일어날 때까지 천여 년에 비로소 정통이 있게 되었으니, 또한 어찌 후대에 결국 정통이 없는 것을 근심하겠는가. 만일 지금 세상에 정도로써 천하를 얻어 왕노릇 하는 자가 있다면, 어찌 정통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묻기를 "이러한 것은 옳다. 또 주자가 천하를 통일시키지 못하면 또한 정통이 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자치통감강목》에서 촉한(蜀漢)의 정통에 대해서 다른 말이 없으니주 199)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여, (내가) 말하기를 "비록 천하를 잃고 겨우 한쪽 모퉁이를 보존하였지만 그 선대의 전통이 그래도 남아 있어 진실로 없어지지 않았다면 이를 빼앗을 수 없으니, 내가 어떻게 비방하겠는가. 다만 《자치통감강목》에서 동주(東周)의 임금주 200)이 정통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매우 의심스럽다."라고 하였다.
묻기를 "동진(東晉)과 남송(南宋)은 어떠한가."라고 하여, (내가) 말하기를 "이는 또한 마땅히 서진(西晉)과 북송(北宋)을 계승한 변통으로 인정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주석 190)《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의 …… 것이니
《자치통감강목》의 범례에서는 당나라를 정통으로 분류하였다.
주석 191)《자치통감강목》에서 …… 것은
주자는 《자치통감강목》의 범례에서 "무릇 정통은 주(周)나라, 진(秦)나라, 한(漢)나라, 진(晉)나라, 수(隋)나라, 당(唐)나라를 이른다.[凡正統, 謂周秦漢晉隋唐.]"라고 하였다.
주석 192)왕망(王莽)
B.C.145~A.D.23. 전한의 정치가이다. 자는 거군(巨君)이다. 자신이 옹립한 평제(平帝)를 독살하고 제위를 빼앗아 국호를 신(新)으로 명명하였다. 한(漢)나라 유수(劉秀)에게 피살되었다. 재위 기간은 8~23년이다.
주석 193)신(新)을 …… 전해주었다면
《자치통감강목》의 범례에서는 왕망을 '찬적(簒賊)'으로 분류했는데, 이는 "정통에게서 찬위(簒位)했지만 자손에게 전하지 못한 것을 이른다.[謂簒位于統, 而不及傳世者.]"라고 하였다.
주석 194)변풍(變風)과 변아(變雅)
《모시(毛詩)》 〈대서(大序)〉에 "왕도가 쇠퇴하여 예의가 폐해지고 정교가 잘못되니 나라마다 정치가 다르고 집집마다 풍속이 달라져서 변풍과 변아가 지어졌다.[至于王道衰, 禮儀廢, 政敎失, 國異政, 家殊俗, 而變風變雅作矣.]"라고 하였다. 《시경》에서 변풍(變風)은 〈패풍(邶風)〉부터 〈빈풍(豳風)〉까지 13개국의 작품을 가리키며, 변아(變雅)는 〈소아(小雅) 유월(六月)〉 이후의 작품을 이르는 변소아(變小雅)와 〈대아(大雅) 민로(民勞)〉 이후의 작품을 이르는 변대아(變大雅)를 합하여 말한 것이다.
주석 195)조조(曹操)가 …… 같다
조조는 중국(中國) 후한(後漢) 말기(末期)의 무장(武將)으로서 제위를 차지하고 싶어하면서도 명분과 의리를 두려워하여 찬탈하지는 않았는데, 뒤에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찬탈하였다.
주석 196)무통(無統)
《자치통감강목》의 범례에서 무통(無統)은 주(周)와 진(秦) 사이 24년, 진(秦)과 한(漢) 사이 4년, 한(漢)과 진(晉) 사이 16년, 진(晉)과 수(隋) 사이 170년, 수(唐)와 당(隋) 사이 5년, 오대(五代) 53년을 이른다.
주석 197)육조(六朝)
양자강 남쪽의 건강(建康)에 도읍을 정한 오(吳)와 동진(東晉), 그리고 남조(南朝)의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을 가리킨다.
주석 198)오계(五季)
오대(五代)이다. 당말(唐末)의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를 가리킨다.
주석 199)촉한(蜀漢)의 …… 없으니
사마광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한 헌제(漢獻帝)가 폐위된 건안(建安) 25년부터 위(魏)를 정통으로 삼았는데, 주자는 《자치통감강목》에서 위의 기년(紀年)을 버리고 유비(劉備)가 세운 촉한을 정통으로 삼았다.
주석 200)동주(東周)의 임금
평왕(平王)이 견융(犬戎)을 피해 동쪽 낙읍(洛邑)으로 수도를 옮겼는데, 이후를 '동주(東周)' 혹은 '성주(成周)'라고 한다. 이때부터 주 왕실의 힘은 약해졌고 정권은 제후에 의해 유지되어 제후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는 춘추시대로 접어들었다.
正統論上 【甲申】
正者得天下以正也, 統者統一天下也, 雖統一, 而得不以正 則不得爲正統, 雖得之以正, 而不能統一則不得爲正統矣. 試質千人萬人, 此言不當乎理則已, 不然, 三代以外, 可得爲正統者, 惟漢明而已. 如唐之明政治, 宋之尙寬仁, 而享國長久, 其得不以正則均矣, 亦不可與於正統也. 曰: "然則子違乎《綱目》之例, 柰何?". 曰: "義理者天下之公, 故善觀理者惟是是從, 不問其言之出自何人. 《綱目》旣於秦晉隋之得不以正者, 以其能統一, 與以正統, 推是例也.". "若使新莽身不受誅, 而傳之子孫, 亦將與以正統耶?". 吾故曰: "《綱目》未成之書, 朱子固以未修正爲恨矣. 夫詩之不得爲正者, 爲變風變雅, 秦晉隋唐宋謂之變統則固可矣. 夫士君子立論, 當以十分至當者爲歸, 使善有所勸, 惡有所懲, 彼以私智强力, 無所不至而取天下者, 猶憚後世史策之譏誅, 如曹操者徘徊漢鼎之傍, 而不敢直取, 士之秉筆者, 顧不究正與不正, 但視其所成與以正統, 則何所勸戒乎? 如使編《綱目》之日, 有人以此說明白稟質, 則安知朱子不莞爾而從之也耶?". 曰: "如子之言, 後世更無正統, 而幾千年變統中過了矣, 豈有是理?". 余曰: "九十之春, 晴景常少, 從古以來, 亂日常多, 世之多變少正亦是理也. 且莫說變統. 雖無統, 柰何? 若六朝五季與今之天下直無統耳. 然自漢亡至明興, 千有餘年, 始有正統, 亦何憂後世之終無正統乎? 使今世有以正得天下而王者, 豈不爲正統乎?". 曰: "此則然矣. 朱子又以不能一天下, 亦不得爲正統, 而《綱目》蜀漢之正統, 無異辭, 何也?". 曰: "雖失區宇而僅保一隅, 其先世之正統猶在, 苟不至於亡, 則不可得而奪之也, 吾何間焉? 但於《綱目》, 東周君之不與正統, 深疑之也.". "東晉南宋, 如之何?". 曰: "此亦當與其繼西晉北宋之變統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