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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 농사지으며 은거한 것에 대한 설 【1947년】(耕隱說 【丁亥】)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농사지으며 은거한 것에 대한 설 【1947년】
내가 부풍(扶風)의 부곡(富谷)을 지나다가, 벗 정덕중(鄭德重)이 거처하는 곳에 편액을 했는데 '경은(耕隱)'으로 한 것을 보고 묻기를 "함께 짝이 되어 밭을 갈았던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주 150)은 옛날에 은거할 때에 중도에 지나치고 정도를 잃은 자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들을 사모하는가."라고 하니, 주인이 놀라서 말하기를 "내가 창평(昌平)에서 와서 이 땅에서 농사지은 지가 이미 30년이 되었으니, 다만 사실을 기록한 것은 모두 우연한 뜻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장저와 걸익에 혐의가 있다면, 빨리 이를 없애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상심하지 말라. 본래 일에는 이름은 같지만 실상이 다른 경우가 있으니, 동일한 학문이지만 위기(爲己)와 위인(爲人)주 151)의 구분이 있고, 동일한 인정(仁政)이지만 행동으로 하고 거짓으로 하는 다름이 있다. 그러니 저들이 은거하여 농사지으며 조수(鳥獸)와 함께 무리지어 산 것이 그대가 은거하여 농사지으면서 부모를 섬기고 자녀를 기르는데 책임을 다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겠는가.
게다가 지금 자네는 피로하여 이제 막 야전(野田)의 농사를 그만두고, 연전(硯田 문필)의 농사에 전념하여 문청공(文淸公)주 152)의 가학(家學)을 이엇다. 그리고 마침 나라가 새롭게 되었으니, 마음과 힘이 쇠하지 않고 평소의 뜻을 굳세게 실천하여 포부를 펼칠 날이 있다면, 어찌 일찍이 공부한 예학(禮學)으로써 상하를 분별하여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는주 153) 대종백(大宗伯 예조 판서)의 다스림을 도와서 이루지 못할 줄을 알겠는가. 만일 이와 같이 된다면 비록 오랫동안 경(耕)에 은거하고 싶어도 그렇게 될 수 없으니, 그대로 써두고 기다려라."라고 하였다.
- 주석 150)장저(長沮)와 걸익(桀溺)
- 춘추 시대 초나라 은자(隱者)이다. 이들에 관한 내용이 《논어》 〈미자(微子)〉에 나온다.
- 주석 151)
- 위기(爲己)와 위인(爲人) : 《논어》 〈헌문〉에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였는데, 지금의 학자들은 남을 위한 공부를 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 주석 152)문청공(文淸公)
- 정철(鄭澈, 1536~1593)의 시호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우의정, 좌의정, 전라도체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부친은 돈녕부판관 정유침(鄭惟沈)이다.
- 주석 153)상하를 …… 안정시키는
- 《주역》 〈이괘(履卦) 대상전(大象傳)〉에 "위의 하늘과 아래의 못이 이(履)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 상하를 분별하여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킨다.[上天下澤履, 君子以, 辨上下, 定民志.]"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상하존비(上下尊卑)의 위계질서를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耕隱說 【丁亥】
余過扶風之富谷, 見鄭友德重扁居而以耕隱, 問之曰: "耦耕沮溺, 古隱之過中失正者, 子何慕焉?", 主人瞿然曰: "吾自昌平來, 耕玆土已三十年, 只以記實, 幷非偶意. 然如其嫌於沮溺也, 請亟去之.". 余曰: "毋傷也. 事固有名同而實異者, 同一學問而有爲己爲人之分, 同一仁政而有以行以假之殊, 彼之隱耕而鳥獸同群, 何與於吾之隱耕而事育盡責乎? 且子今亦倦矣, 方舍野田之耕, 而專硯田之耕, 用紹文淸家學, 適玆邦國維新, 心力不衰, 壯行素志, 展步有日, 安知不以所嘗用功於禮學者, 助成大宗伯辨上下定民志之治也乎? 苟如是也, 雖欲久隱於耕, 亦不可得矣, 請書而俟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