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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 '변'자설 【1940년】(辨字說 【庚辰】)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3.0001.TXT.0012
'변'자설 【1940년】
〈열명(說命)〉에서 처음으로 지(知)와 행(行)을 상대하여 거론하자주 119), 사람들은 모두 "성인의 학문은 지와 행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대성인(大聖人)이니,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독행(篤行)주 120)은 학문의 큰 조목이다. 대성(大聖 공자)이 학문의 큰 조목을 세우는데 지와 행 두 글자를 상대시키지 않고, 바로 학문사변(學問思辨)주 121) 네 글자를 행(行 독행) 한 글자에 상대시켰지만, 학문사(學問思)주 122) 세 글자는 또한 모두 명변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변(辨)'자는 바로 '지(知)'자를 대신하는 말로, '행(行)'자의 적확한 상대가 되니, 변이 바로 지이고 지가 바로 변이기에 또한 성문의 학문은 변과 행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중용》의 명변(明辨)이 바로 《대학》의 치지(致知)이다."라고 말하겠다. 행은 한 조목일 뿐인데 변이 네 조목을 합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행은 오직 일심(一心)의 추기(樞機)주 123)와 관계되지만, 변은 대부분 온갖 이치의 두서(頭緖)를 일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치지의 방법을 논하면 천하의 물리를 궁구하지 않음이 없고, 성의(誠意)의 요점을 말하면 '스스로 속이지 마라[毋自欺]'는 세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배우는 자들이 평생 하는 독서(讀書), 강의(講義), 잠심(潛心), 연기(硏幾 기미를 궁구함), 종사(從師), 문학(問學), 자우(資友 벗에 의지함), 광문(廣聞), 입론(立論), 진견(陳見 견해를 말함), 기의(記疑)주 124), 대오(待悟) 등 허다한 일들이 '변'자 공부가 아님이 없다. 행에 이르러서는 이것을 들어 조처하는 것으로, 다만 심력(心力)을 전일하게 하면 가능할 뿐이다. 그러므로 성덕(成德)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 '행도(行道)'라고 하지 않고 '지도(知道)'라고 하니, 《주역》의 〈문언(文言)〉에서 말한 군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知)' 한 글자로 덮었다. 무릇 세상에서 성인에 대해 말하는 자들은 반드시 '무슨 일이든지 두루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다.'라고 말하고, 《중용》에서는 순임금을 '대지(大知)'라고 일컬었으니주 125), 그 의사의 귀추를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성현이 스스로 행했던 사업에 이르러서는, 공자는 《춘추(春秋)》를 지어 향원(鄕原)주 126)을 미워했고, 맹자는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물리치고주 127) 제동(齊東)주 128)을 배척하였으며, 주자는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하여 육구연(陸九淵)주 129)과 진량(陳亮)주 130)을 논하였으며, 우리 선사 간옹이 심종(心宗)을 논박하고주 131) 김평묵(金平默)주 132)의 뇌문(誄文 제문(祭文))을 물리치는데 이르러서는주 133), 한 번도 '변'자로 뜻을 주로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대개 이러한 분들은 평소 마음속으로 생각할 때에 성위(誠僞)의 기미와 사정(邪正)의 구분을 자세히 헤아려서 조금의 사특함이 혹시라도 잠복해 있지 않게 하였고, 목전에서 응접할 때에 득실(得失)과 당부(當否)의 관계를 정밀히 살펴서 혹시라도 과실이 남아 있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또한 사람의 선악, 덕의 진가(眞假), 학문의 정이(正異), 말의 허실(虛實)에 스스로 지나쳐 버려 자기 시비의 본심을 어둡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니, 이를 두고 내외가 서로 합하고 심사(心事)가 일치한다고 이르는 것이다. 군부(君父)와 성현과 사우(師友)와 관계된 것과 같은 것은 일이 또 특별하여 더욱 그만둘 수 없다. 괴이하다! 지금의 학자들은 옛날 현성(賢聖)이 행한 것을 스스로 힘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사람들이 부사(父師)의 무고(誣告)를 분변하는 것에 대해서 다투는 마음과 이기려는 기개로 돌려서 이를 경시하니, 어쩌면 이러한 사람들은 평소에 마음의 숙특(淑慝 선악)과 일의 가부(可否)를 분변한 적이 없기에 또한 이러한 것에 대해서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주 134)"라고 하고, 또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주 135)"라고 하였으니, 사람으로서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어찌 그 지를 다할 수 있겠으며, 또한 어찌 알지 못하고서 행할 수 있는 자가 있겠는가. 이러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평상시에 말하는 지와 행에 대해서도 말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성문(聖門)의 학문은 변과 행일 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듣는 사람과 이를 함께 말할 수 있겠는가. 슬프구나!
주석 119)〈열명(說命)〉에서 …… 거론하자
《서경》 〈열명〉에서 부열(傅說)이 말하기를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다.[非知之艱, 行之惟艱.]"라고 하였다.
주석 120)박학(博學) …… 독행(篤行)
《중용장구(中庸章句)》 20장에 "이를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변하며, 독실히 행해야 한다.[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라고 하였다.
주석 121)학문사변(學問思辨)
박학, 심문, 신사, 명변이다.
주석 122)학문사(學問思)
박학, 심문, 신사이다.
주석 123)추기(樞機)
사물의 관건이나 핵심, 근본을 뜻하는 말로,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언행은 군자의 추기이다.[言行君子之樞機.]"라고 하였다.
주석 124)기의(記疑)
의심나는 곳을 기록하는 것이다.
주석 125)《중용》에서는 …… 일컬으니
《중용장구(中庸章句)》 제6장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순임금은 매우 지혜로운 분이시다.[舜其大知也與!]"라고 하였다.
주석 126)향원(鄕原)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가 "향원은 덕의 적이다.[鄕原德之賊也.]"라고 하였다.
주석 127)양주(楊朱)와 …… 물리치고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내가 이 때문에 두려워하여 선성의 도를 보호하여 양주와 묵적을 물리치고, 부정한 말을 추방하여 삿된 학설이 나오지 못하게 한다.[吾爲此懼, 閑先聖之道, 距楊墨, 放淫辭, 邪說者不得作.]"라고 하였다.
주석 128)제동(齊東)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서 맹자가 "이것은 군자의 말이 아니고, 제나라 동쪽 야인들의 말이다.[此非君子之言, 齊東野人之語也.]"라고 말한 데서 나온 말로, 이는 제나라 동쪽에 사는 야인들이 길에서 퍼뜨리는 근거 없는 말을 뜻한다.
주석 129)육구연(陸九淵)
1139~1193. 자는 자정(子靜)이고, 호는 상산(象山) 또는 존재(存齋)이다. '마음이 곧 이(理)이다.[心卽理]'라는 설을 주장하였다. 유교의 고전인 육경(六經)도 '내 마음의 주각(註脚)'이라 하여 주자와 대립하였다.
주석 130)진량(陳亮)
1143~1194. 송대(宋代)의 사상가이다. 원래 이름은 여능(汝能)인데 뒤에 량(亮)으로 개명하였다. 자(字)는 동보(同甫)이고 학자들이 용천 선생(龍川先生)이라고 불렀다. 주희(朱熹)가 진량에게 편지를 보내서 '의리쌍행(義利䨇行), 왕패병용(王霸並用)' 8글자에 대해 경계했다는 내용이 《회암집(晦庵集)》 권36 〈여진동보(與陳同甫)〉에 나온다.
주석 131)심종(心宗)을 논박하고
간재는 성사심제(性師心弟)를 기본 강령으로 하여, 심을 이(理)와 스승로 보는 심종을 자신의 저서 여러 곳에서 반박하고 있다.
주석 132)김평묵(金平默)
1819~1891. 호는 중암(重菴)이고, 자는 치장(穉章)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주석 133)김평묵(金平默)의 …… 이르러서는
김평묵이 임헌회(任憲晦)의 제문을 지었는데, 여기에 기롱하는 뜻이 있었다. 이에 간재와 임헌회의 아들 임진재(任震宰)가 편지를 보내 절교를 선언하고 제문을 돌려보낸 일을 말한다. 《간재집 전편(艮齋集前篇)》 권2 〈답유치정(答柳穉程)〉.
주석 134)시비지심은 …… 단서이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요,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요,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요,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라고 하였다.
주석 135)시비지심이 …… 아니다
《맹자》 〈공손추 상〉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럽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라고 하였다.
辨字說 【庚辰】
自〈說命〉始以知行對擧, 人皆曰: "聖門之學, 知與行而已.". 然而孔子大聖人也, 博學, 審問, 愼思, 明辨, 篤行, 學之大目也. 以大聖立學之大目, 不以知與行二字相對, 乃以學問思辨四字對一行字, 而學問思三字, 又皆所以爲明辨地也. 然則辨字卽知字之代辭, 乃行字之的對, 辨卽知, 知卽辨, 而亦可曰聖門之學辨與行而已. 吾故曰: "《中庸》之明辨卽《大學》之致知也.". 行只一目, 辨合四目者, 何也? 行單係於一心之樞機, 辨多事於萬理之頭緖. 故論致知之方, 則天下物理無不窮之, 語誠意之要, 則不過毋自欺三字. 是故學者一生, 讀書, 講義, 潛心, 硏幾, 從師, 問學, 資友, 廣聞, 立論, 陳見, 記疑, 待悟許多事, 無非辨字工夫. 至於行則擧此而措之, 只得心力專一則斯可已. 故及其成德也, 不曰行道者, 而曰知道, 《易》之〈文言〉語君子, 則以知之一字冒始終. 凡世之語聖人者, 必曰無不通知, 《中庸》稱舜爲大知, 其意思歸趣可知矣. 至於從古以來聖賢所自爲之事業, 則孔子之修《春秋》, 惡鄕原, 孟子之闢楊墨, 斥齊東, 朱子之編《綱目》, 論陸陳, 以至我先師艮翁之駁心宗, 逐金誄, 無一非辨字主義. 蓋其平日心上意念, 誠僞之幾, 邪正之分, 細勘之, 不使纖慝之或藏, 目前應接, 得失之係, 當否之關, 精察之, 不欲過錯之或留. 故亦於人之善惡, 德之眞假, 學之正異, 言之虛實, 自不容放過以昧我是非之本心, 此之謂內外相合, 心事一致也. 若其關於君父聖賢師友者, 則事又自別而尤不容己也. 異哉! 今之學者, 非惟不以古昔賢聖所爲自勉, 更於人之辨父師誣也, 歸之爭心勝氣而鄙夷之, 豈此輩人不曾辨心之淑慝, 事之可否於平日, 故亦於此, 自不能不爾歟. 孟子曰: "是非之心, 智之端.", 又曰: "無是非之心, 非人.", 人而無是非, 安能以致其知? 亦安有不知而能行者乎? 於此人乎, 尙難以語恒言之知與行, 況可與言聖門之學辨與行而已之創聞者乎? 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