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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 기미년 생일 아침에 스스로 경계함(己未生朝自警)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3 / 잡저(雜著)
기미년 생일 아침에 스스로 경계함
내가 어려서 조숙하다고 일컬어지고 타고난 바탕이 실제로 허약하여 30세가 못 되어 초라하게 늙은 안색이 있었고, 작악(作噩)주 50)의 다독(荼毒)에 정신이 이미 쇠약해지고 집서(執徐)주 51)의 거듭된 화(禍)에 기혈(氣血)도 다하였다. 게다가 10년 동안 가난과 병이 서로 계속 이어져 경학(經學)하는 사람으로서 견디지 못하였고, 금일의 패업(敗業)에 이르러 방황이 극에 달했다. 이 해(1919) 6월 6일은 내가 태어난 날인데, 부모를 그리워하는 슬픔으로 집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 하루 전에 화양(華陽)에 들어가 간옹(艮翁 전우(田愚))을 모시고 서론(緖論 강론(講論))을 들으면서 스스로 위로하였다.
다음 날 아침에 세수하고 빗질할 때에 갑자기 하나의 흰 물건이 오른쪽 귀밑머리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티끌로 생각하여 닦아냈는데 제거되지 않았고, 실오라기라고 생각하여 잡아당겼는데 나오지 않았으니, 분명히 이는 한 가닥 흰 모발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모발이 흰 것은 간혹 진짜가 아닌 것이 있으나, 오직 귀밑머리가 흰 것은 때가 되지 않으면 희지 않는 만큼 참으로 흰 것이라고 들었다. 아! 모발이 흰 것은 늙었다는 징후이고 늙었다는 것은 죽음의 징후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늙고 늙으면 죽는 것은 떳떳한 이치이다.
안연(顔淵)의 덕으로도 29세에 머리가 희었고, 문장가인 반악(潘岳, 247~300)은 32세에 백발이 되었는데, 내가 올해 36세이니 어찌 슬퍼하겠는가. 슬픈 점은 고인(古人)과 같은 덕과 문장이 없는 것이고 일찍 머리가 센 것은 고인과 같을 뿐이다. 게다가 생각건대 집안이 대대로 명이 짧아 고조와 증조 이후로 모두 61세를 채우지 못했고, 돌아가신 부친과 조부의 빼어남과 건장함으로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온갖 근심과 화를 다 겪은 잔약하고 용렬한 나 같은 자가 어찌 감히 수명이 늘어 덕을 쌓고 학문을 닦아 물려주신 몸을 이루어 조상을 욕보이는 일이 없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것이 거듭 슬퍼할 만하다.
비록 그렇지만 맹자가 "요절하거나 장수함에 의심하지 않고 몸을 닦으면서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 명을 세우는 일이다.주 52)"라고 이르지 않았는가. 금일에 해야 할 일은 오직 힘써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고 예와 복에 자신을 신칙하며, 조상의 뜻을 대대로 이어나가 불효를 면하는 데 있을 뿐이다. 곁에서 흰 것을 뽑아내라고 권하는 자가 있었는데, 내가 일부러 듣지 않은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으니, 공도(公道)주 53)는 사람들이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 하나이고, 이를 남겨 두어 거울을 잡고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자료를 갖추려는 것이 하나이다.
- 주석 50)작악(作噩)
- 고갑자(古甲子)에서, 십이지(十二支)의 열째인 유(酉)를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문맥을 살펴볼 때 기미년(1919) 이전인 기유년(1909)으로 보인다.
- 주석 51)집서(執徐)
- 고갑자에서, 십이지의 다섯째인 진(辰)을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문맥을 살펴볼 때 병진년(1916)으로 보인다.
- 주석 52)요절하거나 …… 일이다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온다.
- 주석 53)공도(公道)
-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는 것을 말한다. 두목(杜牧)의 시에 "세간에 공정한 것은 오직 백발뿐, 귀인의 머리라고 해서 너그럽게 해 주지 않는다.[公道世間惟白髮, 貴人頭上不曾饒.]"라는 구절이 있다. 《번천시집(樊川詩集)》 권4 〈송은자(送隱者)〉
己未生朝自警
余幼以夙成稱, 而稟質實虛, 未三十有老蒼色, 作噩之荼毒, 精魄旣霣, 執徐之荐禍, 氣血亦竭, 加以十年間, 貧病相仍, 經人不堪, 以至今日之敗業, 漂泊而極矣. 是歲之六月六日, 余懸弧辰也, 悲切蓼莪, 不堪家居, 前一日入華陽, 陪聽艮翁緖論而自遣. 翌朝巾櫛之際, 忽見一白物在右鬂邊, 意爲塵芥也, 而拭之不去, 意爲絲縷也, 而抽之不出, 歷歷是一箇白毛. 余聞人之髮白, 容有非眞者, 惟鬂白非時至不白, 乃眞白也. 噫! 毛白者老徵也, 老者死候也. 人生則老, 老則死, 理之常也. 顔淵之德焉, 而卄九而白, 潘岳之文章焉, 而卅二而白, 余今年三十六, 烏足悲也? 所悲者無德與文之似古人者, 惟早白古人是似爾. 且念家世短祚, 自高曾以下, 皆壽不滿周甲, 先父祖之秀俊, 壯完尙如此, 況如不肖之孱庸, 飽經憂禍者, 安敢望假年進修, 成遺體而無忝生乎? 是重可悲也. 雖然, 孟聖不云乎? "殀壽不貳, 修身而俟之, 所以立命也.". 今日之務, 惟在勉遵典訓而飭身禮禔, 繼述先志而獲免不孝已矣. 傍有勸以揥白者, 而余故不聽者有二道, 公道不可以人强一也, 存之以備把鏡警惕之資一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