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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 조카 형수에게 답함 경진년(1940)(答從子炯洙 庚辰)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조카 형수에게 답함 경진년(1940)
편지를 보고서 네가 의관(衣冠)을 지킬 마음이 있고,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의리를 알고 있으며, 가업을 밑바탕으로 집안의 명성을 계승하고자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이르기를 "마땅히 순수한 본성을 지켜 비루한 무리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난초는 잡초에 섞여 있어도 그 향기를 잃지 않고, 봉황은 같은 조류일지라도 그 깃드는 곳이 다릅니다."라고 하였다. 현재 마땅히 행할 것을 말하자면 "사방의 원대한 뜻"이라고 하겠지만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니 자신을 깨끗이 하고 인륜을 바로잡으며 독서하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제일(第一)의 의리이다.
나는 참으로 네가 말이 없고 단정하여 심지가 요즘 젊은이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로 뜻이 이렇게 견고한 줄은 헤아리지 못하였다. 혹시 네 조부 벽봉 선생(碧峰先生)의 영령이 저승에서 네 마음을 이끌어 너로 하여금 선조의 뜻과 일을 계승하게 한 것인가 싶다. 네 편지를 보고 밤새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런데 여러 번 가난을 상심하는 탄식주 163)을 일으키곤 하는데 참으로 이러면 안 된다. 나는 재주와 뜻이 없어서 자신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보았지만 재물이 없어서 덕에 나아가지 못한 사람은 듣지 못하였다. 이 또한 근심할 것이 못된다. 도리어 이를 바탕으로 덕을 이룬 사람도 있다. "가난하고 곤궁한 처지가 너를 옥으로 만든다.주 164)"고 말하지 않았더냐. 또 "나에게 부곽전(負郭田) 한 이랑이라도 있었다면, 어찌 육국(六國)의 재상 인장을 찰 수 있었겠는가."주 165)라고 말한 경우도 있다.
저것은 비록 부귀로써 말하였지만 그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정을 참게 하는 점은 동일하다. 만약 너로 하여금 따뜻하고 배부르며 편안하고 즐겁게 하였다면 또한 이런 뜻을 가질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니 가난은 불행이 아니다. 이를 다행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절대로 기력이 꺾이거나 기운을 잃지 말고 더욱 매진하길 바란다. 아! 나는 늙어 이룬 것이 없다만 다만 자식과 조카, 손자 가운데 성취한 이가 몇 사람만 있어도 나는 미련없이 눈을 감고 돌아갈 수 있을 게다. 기쁜 나머지 감회가 생겨 여기까지 썼으니 이 마음을 더욱 헤아릴 수 있을게다.
- 주석 163)가난을……탄식
-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일찍이 말하기를 "속상해라 가난함이여, 생전에는 봉양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돌아가셔서는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가 없구나.[傷哉, 貧也! 生無以爲養, 死無以爲禮也.]"라고 하였다. 《禮記 檀弓》
- 주석 164)가난하고……만든다
- 송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빈천과 곤궁한 상황의 근심은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했다. 《張子全書 卷1》
- 주석 165)부곽전(負郭田)……있었겠는가
- 성곽 부근의 비옥한 토지를 부곽전이라고 하는데, 전국 시대 소진(蘇秦)이 "가령 나에게 낙양(洛陽)의 부곽전이 2경(頃) 쯤만 있었다면, 내가 어떻게 육국(六國) 정승의 인(印)을 찰 수가 있었겠는가."라고 말했던 고사가 있다. 1경(頃)은 2경(頃)의 오류이다. 《史記 卷69 蘇秦列傳》
答從子炯洙 庚辰
見書, 知汝有衣冠之心, 識尊攘之義, 欲資箕裘而繼家聲.又謂"當準純粹之性 而不歸汚下之流.", 而曰:"蘭雜於蕪, 而不泯其薰, 鳳雖鳥類, 其棲不同." 言當下當行, 則曰:"四方之志", 今非其時, 潔身正倫, 讀書自靖, 第一義也.吾固知汝沈默端莊, 心知其非同今世年少, 實不料志尙堅固之乃爾也.或者汝祖考碧峰先生之靈, 冥誘其衷, 使之繼述志事歟! 自見汝書, 連夜喜而不寐.至於累興傷哉之歎, 正不當爾也.吾見無才志而未成身者, 未聞無錢財而不進德者也.且也不足以爲病.反資而成德則有之.不曰:"貧賤憂戚, 庸玉汝成乎!".又有言 "使我有負郭田一頃, 豈能佩六國相印"者.彼則雖以富貴言, 其動心忍性則一也.若使汝得煖飽逸樂, 亦安知有此志乎? 然則貧者, 非不幸也.謂之幸也, 亦非過言.切勿沮喪益加勉勵焉.噫, 吾則雖老而無成, 但得子姪孫中, 有成就者幾人, 吾可以浩然瞑目而歸矣.喜餘生感, 書之至此, 此心尤可諒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