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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 아이들에게 보임 경진년(1940)(示兒輩 庚辰)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2.0001.TXT.0047
아이들에게 보임 경진년(1940)
세상의 변고가 날로 심해져 귀로는 차마 들을 수 없고 눈으로는 차마 볼 수가 없구나. 오직 바라는 것은 빨리 죽는 것만 다행으로 여길 뿐인데 그럴 수 없으니 어쩌겠느냐. 내가 죽음으로써 옛것을 지켜 너희 네 사람과 함께 모두 머리카락을 보전하였으니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지금 이 창씨개명(創氏改名)의 변고는 단발(斷髮)에 비해 한 층 더 가혹하다. 외양(外樣)의 형식도 오히려 죽음을 무릅쓰고 지켰는데 내면(內面)의 실지를 어찌 재앙을 두려워하여 바꿀 수 있겠느냐.
구한(舊韓)의 유족(遺族)들이 생활의 이해(利害)에 관계된 것과 자손의 귀천(貴賤)에 관한 얘기에 동요되어 서로 앞 다투어 바꾸는 꼴은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비록 그렇지만 우리들 생활은 본래 구덩이에 있는 것을 준칙으로 삼고 있으니 참으로 말할 필요가 없다. 인작(人爵)의 귀천은 무상하여 천작(天爵)의 고귀함만 못한 것은 또한 옛날에도 오히려 그러하였다. 하물며 오늘날에 저들의 귀천이 무상한 인작을 얻는 것이, 어찌 우리의 고귀한 천작을 구하는 것과 같겠느냐. 다만 자손들이 선행에 힘쓰기를 바랄 뿐이다. 창씨개명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보다 심한 일이다. 그러므로 죽음으로서 지킬 결단이 더했으면 더했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이런 뜻을 너희들은 진실로 이미 알고 있을 게다.
다만 인정에 있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먹을 것이 가난하여 수모를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것이 하루 이틀이 아닐 것이니 뒷날 너희들 중에서 혹 내 명을 어기고 내 도장을 만들어 저들의 명을 따름이 근래에 기호지방의 아무개 무리 같을까 두렵다. 그 아비를 속이고 벼슬과 돈을 받는 행위는 나로 하여금 길이 몸을 욕되게 하고 의를 잃어 천지간에 부끄러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비록 그러나 너희들이 어찌 차마 이런 짓을 하겠느냐. 나의 지나친 염려가 그렇다는 거다. 그러므로 이에 가르침을 보이니 마땅히 두려워하며 염두에 두도록 하여라.
示兒輩 庚辰
時變日甚, 耳不忍聞, 目不忍見.惟願速死之爲幸, 而不可得, 奈如之何? 吾之以死守舊, 而與汝四人, 皆得保髮, 可謂俯仰無怍.然今此變姓之變, 比諸薙髮, 更加一層.外樣形式, 猶抵死以守之, 裏面實地, 豈可畏禍而改之! 舊韓遺族, 爲生活利害之關, 子孫貴賤之說所動, 爭相先變, 亦口不忍言.雖然, 吾人生活, 本以在溝壑爲準的, 固不須言.人爵貴賤無常, 不如天爵之良貴, 亦在古猶然.況於今日, 與其得彼貴賤無常之人爵, 豈若自求我良貴之天爵乎? 只要子孫勉於爲善而已.變甚薙髮.故死守之決, 有加無減.吾之此志, 汝輩固已知之.但人情之最難堪者, 食貧受侮.而又非一日二日, 則恐異時汝輩中, 或有矯我命造我印, 而從彼之令, 如近者畿湖間某某輩.欺其父, 受爵金之爲, 使我永作辱身失義, 俯仰慙怍之人也.雖然, 汝輩豈忍爲此者? 吾之過慮則然.故玆示喩, 宜加惕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