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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 형복에게 보냄 신유년(1921)(寄炯復 辛酉)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2.0001.TXT.0036
형복에게 보냄 신유년(1921)
일전에 부탁한 "책을 읽어라, 도량을 너그럽게 하라, 술을 경계하라."는 세 가지 일은 과연 생각해 보았느냐? 사람들은 "집안일을 주관하면 독서할 겨를이 없다."고 하는데, 그러나 나는 '집안일을 주관하는 사람은 더욱 독서에 힘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대저 독서는 다른 게 아니라 이를 밑바탕으로 해서 용무에 응함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오로지 독서만을 일삼으면서 용무에 응하는 번거로움이 없는 경우엔 오히려 조금 느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집안일을 주관하는 사람은 하루 책을 읽지 않으면 하루의 일에 응대할 것을 잃고, 이틀 책을 읽지 않으면 이틀의 일에 응대할 것을 잃으니, 어찌 더욱 독서가 급한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가난한 집안 살림을 맡아 비록 바쁘다고는 해도, 몸소 낫이나 호미를 잡을 정도는 아니니 진실로 뜻만 있다면 어찌 겨를이 없는 걸 걱정하겠느냐. 다만 네가 근면하고 독실함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옛 사람 중에 넓고 큰 도량으로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스린 분은 더할 나위 없지만, 너그럽고 온화함에 힘쓰고 성급하고 경박한 것을 경계하여 한 집안을 태평하게 하는 것이 또한 불가능하겠느냐.
대개 집안에 있어서 너그럽고 온화하지 않으면, 부모에게는 효를 잃게 되고 집안사람에게는 덕을 잃게 되어, 끝내 은혜로운 정의는 야박해지고 형제간은 어그러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좁은 도량으로 구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못지않다. 유관(劉寬)은 더럽혀진 옷에 대해 화를 내지 않았고주 128), 왕공(王公)은 검은 먼지를 싫어하지 않았다.주 129) 이것은 타고난 자질에 달려 있어 비록 여기에 미치기는 쉽지 않겠지만 동래(東萊)가 통렬하게 이전의 습관을 고쳤듯주 130) 본인이 만약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 어려워 못하겠느냐. 네가 빨리 고치지 않으면 덕에 누가됨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큰 복을 받는 데 방해가 될까 내 몹시 우려되는구나.
술이라는 물건은 마시면 안 된다하면 너무 편협한 듯하고, 마셔도 된다하면 함부로 행동하기 쉬우니 당연히 기혈(氣血)의 허실과 심력(心力)의 강약을 살펴 대처해야 할 것이다. 만약 기운이 좋고 마음이 왕성하여 함부로 행동할 염려가 없다면 그뿐이지만, 만약 행여 그렇지 않은데도 좋아하면 이는 짐독(鴆毒)주 131)이다. 너는 몸이 약하여 기운이 충실하지 못하고 나이가 어려 뜻이 굳세지 못하다. 나는 네가 차라리 심히 편협하여 문제가 될지라도 행여 짐독을 가까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 글을 읽지 않으면 만사(萬事)는 이치를 잃고 인도(人道)는 무너진다. 도량이 너그럽지 못하면 친족이 화목하지 못하고 집안일은 엉망이 된다. 술을 경계하지 않으면 일신(一身)이 법도를 잃어 재화(災禍)는 예측할 수 없다. 이 세 가지는 네가 마땅히 급선무에 두어야한다. 그러므로 특별히 열거하여 거듭 부탁하니, 부디 네 마음에 깊이 새기고 면려하여 소홀하지 않길 바란다.
주석 128)유관(劉寬)은……않았고
유관(劉寬)은 후한(後漢)의 남양 태수(南陽太守)이다. 그가 화를 내는지 시험해 보려고 시비(侍婢)를 시켜 일부러 뜨거운 국물을 그의 조의(朝衣)에 엎지르게 하였을 때 안색을 변치 않고 "혹시 손을 데지나 않았느냐.[羹爛汝手]"고 한 일화가 유명하다. 《後漢書 卷55》
주석 129)왕공(王公)은……않았다
동진(東晉) 때 사람인 왕도(王導)이다. 동진 성제(成帝)의 장인인 유량(庾亮)이 서쪽의 지방관으로 있으면서도 조정의 권력을 주무르자, 왕도가 불쾌하게 생각하여 서풍이 불면 그때마다 부채를 들어 바람을 막으며 말하기를 "원규(元規 : 유량의 자)의 먼지가 사람을 더럽히려 하는구나." 하였다. 《晉書 권86 王導傳》
주석 130)동래(東萊)가……고쳤듯
여조겸(呂祖謙)의 호이다. 《심경부주》 〈징분질욕장(懲忿窒慾章)〉에 주자(朱子)가 "지난번에 여백공을 만났더니, 그가 이런 말을 하였다. 그가 젊었을 적에 성질이 거칠고 사나워서 음식이 마음에 안 들면 언짢게 여겨 집안의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곤 하였는데, 뒷날 오래도록 병을 앓으면서 단지 《논어》 한 책을 가지고 조석으로 익히 보다가, '자기를 책망함은 후하게 하고 남을 책망함은 적게 한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홀연히 마음속 생각이 한순간에 평온해짐을 깨달았으며, 그 뒤로는 죽을 때까지 분노를 폭발하는 일이 없었다고 하였다. 이는 기질을 변화시키는 법으로 삼을 만하다.[向見呂伯恭說 少時性氣粗暴, 嫌飮食不如意, 便打破家事, 後日久病, 只將一冊《論語》, 早晩閑看, 至"躬自厚而薄責於人.", 忽然覺得意思一時平了, 遂終身無暴怒.此可爲變化氣質法.]"라고 말한 내용이 실려 있다.
주석 131)짐독(鴆毒)
집안에 액을 가져온다는 상징적인 새의 깃에 있는 맹렬한 독을 말한다.
寄炯復 辛酉
日前所囑 "讀書、寬量、戒酒"三事, 果能動念否? 人言幹家務, 不暇讀書, 余謂'幹家務者, 尤當急於讀書也.' 何也? 夫讀書非爲他也, 欲資此而不失應務也.其專事誦讀, 而無應務之煩者, 猶可少緩.至於幹家者, 一日不讀, 則一日之務失其應;二日不讀, 則二日之務失其應, 豈非尤急者乎?
汝之食貧幹蠱, 雖曰"滾沓.", 不至躬執鎌鋤, 苟有其志, 豈患無暇? 只在汝勤篤如何耳.古人之弘量大度, 安邦濟民者, 尙矣, 至於務寬和, 戒急遽, 以底一家泰平者, 亦不可能乎!
蓋居家而不寬和, 則失孝於父母, 失德於家衆, 終至恩義衰薄, 骨肉乖異.其非狹量攸濟, 又不下爲國也.劉寬之不恚汚服, 王公之無嫌埃墨.係是天分, 縱難及之, 東萊之痛改前習, 我苟欲之, 何難而不爲? 汝不速改, 非惟累德不細, 亦恐有妨遐福, 吾深慮之.
酒之爲物, 以爲不當飮則似太偏, 以爲當飮則易至亂, 當量其氣血虛實, 心力强弱而處之.若我氣實心强, 無慮乎亂則已, 苟或未然而嗜之, 是鴆毒也.汝淸弱而氣未實, 年少而志未堅.吾欲汝寧失太偏, 而無或近鴆毒也.
噫, 書不讀, 則萬事失理, 而人道壞矣.量不寬, 則九族失和, 而家政戾矣.酒不戒, 則一身失度, 而禍不測矣.此三者, 汝當下之急務.故另擧申勖, 幸體若心, 勉旃毋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