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 국역/표점
  • 국역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 계제 여안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季弟汝安 戊辰)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2.0001.TXT.0025
계제 여안에게 답함 무진년(1928)
편지를 보니 품행이 단정치 못한 것을 뉘우침이 자못 절실하구나. 이를 기준으로 삼아 나간다면 무슨 덕인들 세울 수 없겠는가. 요즘 들어 일마다 세세한 절목(節目)은 때마침 우연히 그런 것이다. 그러나 세세한 행동에 신중하지 않으면 끝내 커다란 덕에 누를 끼치고, 잠시 풀어 놓으면 천 리로 달아난다. 세세한 절도가 우연히 그렇다고 하여 통렬히 징치(懲治)하지 않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나 또한 이 잘못을 끊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는데 젊고 팔팔하기는 고사하고 더군다나 이젠 늙었다. 지금 뜻한 바를 보니 깨우친 것이 많구나.

엄숙하고 통명(通明)한 사람은 人之齊聖
술을 마셔도 온공(溫恭)히 이겨내거늘飮酒溫克
저 어둡고 어리석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彼昏不知
한결같이 취함이 날로 심해지도다 壹醉日富
각기 너의 위의를 경건히 할지니 各敬爾儀
천명은 다시 오지 않느니라주 80)天命不又

이는 옛사람이 형제를 경계시키는 시이자, 실로 우리를 위해 준비된 말이다. 지금 마땅히 이 시를 희생 위에 올리는 글주 81)로 삼아서 지금부터 관을 덮을 때까지 맹세코 범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이 일 하나를 마치면 다른 허물을 고치는 것도 쉬이 힘을 얻을 것이다. 주자가 말한 "한결같이 밖으로 내달려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을 모두 술을 끊은 예를 기준으로 하여 끊었습니다."주 82)라고 한 것에 가까울 것이다. 어떠한가?
앞의 편지에서 스승의 학문을 이어 담당하고 후생을 고무시켜 나아가게 할 사람이 없는 것으로 "사문(斯文)이 길이 어두워지고 천도(天道)가 의지할 데 없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는 도가 없다고 하여 필시 천하를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육조(六朝)와 오대(五代)의 수백 년간에 성인의 학문을 이어서 후학을 고무시켜 나아가게 한 이가 있음을 보지 못하였지만, 끝내는 송(宋) 나라 제현이 사도(斯道)를 창명(昌明)하는 데 이르렀으니, 지난 일에서 징험할 수 있다. 또 천하는 지극히 넓고 태어나는 사람은 지극히 많으니, 일방(一方)에서 떨쳐 일어나 의연히 도를 담당하는 이가 없으리란 걸 어찌 알겠는가. 이제 눈앞의 한 문하에 사람이 없다고 미루어 단정해 버린다면, 일세(一世)의 사람을 모조리 기만하는 데 가깝지 않겠는가?
또 하늘이 나에게 순수하고 지극히 선한 성품과 텅 비었으면서도 신령스러워 어둡지 않은 마음과 굳세고 씩씩하며 바르고 빼어난 형체를 부여해 주었다. 만약 과연 일문(一門)과 일세에 사람이 없다면, 내가 품부 받은 선과 여러 미덕으로 유독 이 임무를 감당할 수 없겠는가. 익주(益州)는 피폐하고 유선(劉禪)주 83)은 암약(闇弱)하여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공명(孔明)이 알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국운이 영영 끝났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성패(成敗)는 미리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주 84)라고 말하고는, 몸소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힘을 다하였다. 하물며 사도(斯道)는 하늘이 다하도록 떨어지지 않으리니, 국가의 흥망에 견줄 바가 아니다. 이른바 "하늘이 변하지 않으니, 도 역시 변하지 않는다.",주 85) "천년이 되어도 반드시 돌아오는 것이 항상 그러한 도의 이치이다."주 86), "양(陽)에는 다하는 이치가 없다."주 87) 등의 설은 천고의 격언이다.
도를 배운다는 선비가 어찌하여 믿음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성급히 스스로 억측하여 단정하는가? 이는 일세를 속이고 천하를 버리는 것일 뿐만이 아니다. 혹 이로 인하여 풀이 죽고 타성에 젖어 마침내는 자신을 속이고 자신을 버리는 부류로 돌아갈까 저어되니,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과 시비를 따지고 다투지 않아야 함은 참으로 말한 바와 같다. 하지만 이는 다만 일이 자기 한 몸에 관련된 것일 때 말이고, 부형(父兄)과 선사(先師)에 관련된 것이 있다면 자제와 문생 된 자로서 어찌 편안히 아무 일이 없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세교(世敎)와 학술의 커다란 관건에 미쳐서는 더욱 입을 닫고 침묵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맹자는 양주(楊朱)ㆍ묵적(墨翟)에 대해서, 주자는 육구연(陸九淵)주 88)ㆍ진량(陳亮)주 89)에 대해서 일찍이 '시비를 다투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하였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금일에 있어서는 '부강(富强)한 것이 윤리나 강상보다 중하다.'거나 '예수가 공자보다 성인이다.'라는 등의 일종의 괴이한 논의는, 우리가 마땅히 다투고 그만두어서는 안 되는 것에 해당한다. 다만 덕이 정립되지 못하고 식견이 투철하지 못하며 필력이 장대하지 못하면 우선 날카로움을 비축했다가 발휘해야 될 것이다. 대개 이 두 가지 조목은 네가 세상의 도에 절망하고 자기 편한 데 안주하여 큰 성취에 방해될까 염려되어 나도 모르게 말이 여기에 이르렀다. 헤아려서 주의하길 바란다.
함께 모여 사는 즐거움은 참으로 갑작스레 마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마음이 진실로 함께 모이면 몸이 하나로 모이지 않더라도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너와 내가 뜻을 두는 것은 선성(先聖)의 도이고, 힘쓰는 것은 선인(先人)의 가르침이며, 좋아하는 것은 경전(經傳)의 의리(義理)이고, 싫어하는 것은 세속의 더러움과 비루함이다. 빛깔 없는 아가위 꽃주 90)이 두 곳에서 서로 비추고, 소리 없는 질 나발과 젓대주 91)가 날마다 서로 화응하니, 그 함께 모임은 무엇이 이보다 더하겠는가. 만약 지상(志尙)은 길이 다르고, 호오(好惡)는 취향이 다르다면, 비록 탁자를 같이 하고 이불을 나란히 하여 밤낮으로 함께 한들 어찌 그 마음이 연(燕)나라와 월(越)나라처럼 멀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이것으로 서로 위로하며 천천히 도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동기와 골육이 구렁에 나뒹구니 세상을 사는 즐거움이 더욱 싫습니다."라는 말에서는 우려가 매우 깊고 천륜의 정이 지극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언사가 절박하고 뜻이 애상(哀傷)하니 어찌하여 굳이 그리하는가? 무릇 몸이 구렁에 있음은 지사(志士)가 잊지 않는 것이고, "하늘이 살리고 하늘이 죽인다."주 92)는 것은 달인(達人)의 말이니 생각이 이에 미치면 다소 유쾌해질 것이다. 또 옛사람이 이르기를, "죽어서는 마땅히 아귀(餓鬼)가 되어야지, 다시 수귀(愁鬼)가 되어 한 몸으로 두 가지 일을 해서는 안 된다."주 93)라고 하였다. 이는 참으로 이치에 닿은 견해이다.
옛사람이 또 말하기를, "곤란이 극심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데 이르면, 항상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고 슬기롭게 스스로 마음을 너그러이 풀어놓으라."주 94)라고 하였다. 지금 우리가 비록 곤궁함이 심하나 또한 앉아서 서책을 보고 학도를 지도하고 여력으로 조금이나마 집안을 다스려 여전히 먹고 입으며 죽지 않으니, 밭을 갈거나 삯일을 하거나 등짐을 지면서 자질구레한 재물을 얻어 입에 풀칠하는 자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이로 헤아려 보면 한바탕 더욱 유쾌해질 것이다. 일전에 규모를 조금 바꾸어 조그만 사업을 경영하겠다고 말한 것은 너의 지상(志尙)으로 헤아려 보건대, 이것이 일시의 충동에서 일어난 것이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그러나 털끝만큼의 생각이라도 아직 마음속에 있다면 일찍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
무릇 사농공상(士農工商)은 고루 네 갈래 신분의 백성이지만 청탁(淸濁)과 아속(雅俗)의 품격이 절로 다르다. 성인의 "채찍을 잡는다."주 95)는 말 역시 유래가 있는 말이지만 실제에서 나온 게 아니라 다만 부귀는 결코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평소에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일에 몸을 굽혀 나아가서 종신토록 좋아할 즐거움을 버릴 수 있겠는가.
사람의 앎에 있어서 자신을 아는 데 밝은 것을 귀히 여긴다. 스스로 예전을 징험하고 장래를 헤아려 보면, 우리의 타고난 복과 심력이 과연 풍족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다만 현재의 분수를 따라 살아감만 못할 것이다. 만약 앞으로 생활이 조금 풀린다면 참으로 싫지 않겠지만, 끝내 여기서 그치더라도 편안히 여길 뿐 다른 게 없다. 불행히도 구덩이 속 시체가 되어도 또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마땅히 분수를 편안히 여기고, 천명을 알며, 덕을 세우고, 자신을 이루는 도가 될 것이다. 어떠냐?
주석 80)엄숙하고……않느니라
《시경》 〈소완(小宛)〉의 시 구절이다.
주석 81)희생……글
《맹자》 〈고자 하〉에 다음 구절이 보인다. "오패 중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가장 강성하였는데, 규구(葵丘)의 회맹(會盟)에서 제후들을 모아놓고 희생을 묶어, 그 위에 맹약하는 글을 올려놓고 희생의 피를 마시는 의식을 하지 않고 명령하였다."
주석 82)한결같이……끊었습니다
《주자대전》 권31 〈답장경부(答張敬夫)〉에 나오는 대목으로 일부 생략되었다.
주석 83)유선(劉禪)
중국 삼국 시대 촉(蜀)나라 유비(劉備)의 아들이다. 소열제(昭烈帝) 유비가 죽자 제위를 이어받은 그는, 제갈량(諸葛亮) 등 어진 신하들이 죽은 뒤 황호(黃皓) 등 간신을 중용하여 국정을 문란하게 하다가 나라를 잃었다.
주석 84)성패(成敗)는……아닙니다
제갈량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 나오는 말이다.
주석 85)하늘이……않는다
동중서(董仲舒)가 말하기를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오나니, 하늘이 변하지 않으면 도 또한 변하지 않는다.[道之大原, 出於天, 天不變, 道亦不變.]" 라고 하였다.
주석 86)천년이면……이치이다
"千秋必返 理(古)之常"이란 말이 순경(荀卿)의 말로 전하여 온 것 같다.
주석 87)양(陽)에는……없다
《주역(周易)》 박괘(剝卦)의 정전(程傳)에 "박괘는 모든 양이 다 떨어져 없어지고 유독 상구 일효만 남아 있어 마치 큰 과일 하나만 먹히지 않아서 장차 다시 생겨날 도리가 있는 것과 같으니, 상구 일효 또한 변하면 순음으로 되어 버리긴 하지만, 양이 완전히 다 없어질 리는 없으므로, 위에서 변하면 아래서 생겨 잠시도 멈출 틈이 없는 것이다.[剝之爲卦, 諸陽消剝已盡, 獨有上九一爻尙存, 如碩大之果不見食, 將有復生之理, 上九亦變則純陰矣, 然陽無可盡之理, 變於上則生於下, 無間可容息也.]"라고 하였다.
주석 88)육구연(陸九淵)
1139~1192. 자는 자정(子靜), 호는 존재(存齋)ㆍ상산(象山)이다. '심즉리(心卽理)' 설을 주장하였고, 그 결과 유교의 고전인 육경(六經)조차도 '내 마음의 주각(註脚)'이라 하여 주자와 대립하였다.
주석 89)진량(陳亮)
1143~1194. 자는 동보(同甫), 호는 용천선생(龍川先生)이며, 시호는 문의(文毅)이다. 금(金)나라와의 화의(和議)를 강력히 반대하여 1183년 절교를 이끌어 낸 송나라의 학자 관료이다. 그는 주희와 친하면서도 학문적 지향은 달랐으니, '사공지학(事功之學)'을 주장하여 실제적인 공용(功用)과 효과를 중시하고 이학가(理學家)들의 '의리(義理)'를 실질이 없는 빈말이라고 비판하였다. 저서로 《용천문집(龍川文集)》ㆍ《용천사(龍川詞)》 등이 있다.
주석 90)아가위 꽃
아가위 꽃은 《시경》 〈상체(常棣)〉에 "아가위 꽃 그 꽃송이 울긋불긋 아름답네. 오늘의 모든 사람 중에 형제보다 좋은 건 없네.[常棣之華, 卾不韡韡.凡今之人, 莫如兄弟.]"라고 한 구절에서 나온 것으로, 우애 있는 형제를 가리킨다.
주석 91)질나발과 젓대
서로 가락이 잘 맞는 두 개의 관악기로서 보통 형제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시경》 〈소아 하인사(何人斯)〉에 "형은 질 나발 불고, 아우는 피리 분다[伯氏吹塤, 仲氏吹篪.]"라 하였다.
주석 92)하늘이……죽인다
《주자어류》 권132에 보인다. "어떤 이가 호방형(胡邦衡)이 신주(新州)에 17, 8년간 있어도 아무 탈 없는 것을 물었다. 선생이 말하기를, '하늘이 살리고 하늘이 죽이는 것이니, 도의 이치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93)죽어서는……된다
《송자대전》과 김규오(金奎五, 1729~1791)의 《최와집(最窩集)》에 따르면, 임숙영(任叔英, 1576~1623)이 유배지에 있을 때 어떤 이가 전혀 근심 어린 빛이 없는 까닭을 묻자, 답한 말이라 한다.
주석 94)곤란이……갖는다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와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에 초록된 《복수총서(福壽叢書)》라는 책의 질병을 물리치는 열 가지 방법 중 세 번째 "늘 나보다 못한 자를 생각하며 스스로 너그러운 마음을 갖도록 노력한다."와 흡사하다.
주석 95)채찍을 잡는다
《논어》 〈술이(述而)〉에 보이는 공자의 말이다. "만약 부가 추구해서 되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 잡는 천한 일이라도 내가 하겠지만, 만일 추구해서 될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子曰 :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答季弟汝安 戊辰
見書, 以行修未端, 悔懊頗切.稱此以進, 何德之不可立哉.至於近日, 事事細節, 時適偶爾.然不矜細行, 終累大德, 晷刻放之, 千里其奔.其不可以細節適爾而不痛懲也, 審矣.吾亦未斷此失, 迄至于今, 舍曰少壯, 矧玆老大.今見所志, 警發多矣."人之齊聖, 飮酒溫克.彼昏不知, 壹醉日富.各敬爾儀, 天命不又." 此古人兄弟相戒之詩, 而實爲吾輩準備語也.今當以此詩作牲上載書, 從玆至于蓋棺, 誓不相犯焉, 已矣.了此一事, 他過之改, 亦易得力.朱子所謂"一種向外走作, 心悅之者, 皆準止酒例絶之"者, 可庶幾矣.如何如何? 前書, 以無有承當師學而鼓進後生者, 謂"斯文之永晦、天道之無恃, 從可知矣." 此非以無道必天下而棄之者乎? 六朝五季數百年間, 不見有承聖學而鼓進後學者.然卒至於有宋, 諸賢倡明斯道, 已事可驗也.且天下至廣, 人生至衆, 安知不有奮起一方, 毅然任道者.而乃以目前一門之無人, 而推斷而已, 則不幾於盡欺一世之人乎? 且天賦我以純粹至善之性, 虛靈不昧之心, 强壯正秀之形.若果一門一世之無人焉, 則以我所稟之備善衆美, 獨不可以當此任乎? 夫以益州疲弊, 劉禪闇弱, 孔明非不知其無可如何.然而不曰:"國運永訖.", 但曰:"成敗非所逆覩.", 而自盡鞠躬盡瘁之力.而况斯道之極天罔墜, 非比國之有興亡.若乃所謂"天不變, 道亦不變."、"千秋必返, 道之常."、"陽無可盡之理."等說, 千古之格言也.士之學道者, 胡不信及乎此, 而遽自臆斷也.是則非惟欺一世、棄天下.恐或因此而沮喪偸墮, 終歸於自欺自棄之科, 可不省哉.不宜與人較爭是非, 固如所喩.然此但以事涉一己者言, 若有關於父兄、先師者, 則爲子弟、門生者, 豈可晏然無事而已.且若至於世敎、學術之大關, 則尤爲不容含黙者.故孟子之於楊ㆍ墨、朱子之於陸ㆍ陳, 曾不以不宜較爭是非已之.在今日則如"富强重於倫綱"、"耶蘇聖於孔子"等一種怪論, 吾輩在所當爭而不可已者也.但德未立, 識未透, 而筆力未壯, 且可蓄銳而發之耳.蓋此二款, 有慮汝之望絶世道, 安於自便, 有妨大就.故不覺言之至此, 想諒加意也.團聚之樂, 固難猝辦.然心苟團聚, 則身不團聚, 何病焉.彼此所志者, 先聖之道;所勉者, 先人之敎;所好者, 經傳義理;所惡者, 世俗汚陋.隔色棣花, 兩地交暎, 無聲塤篪, 逐日相和, 其爲團聚, 孰加於此.如使志尙殊途, 好惡異趣, 雖同卓聯被, 以日以夜, 安能捄其心之燕越哉? 用是相慰而徐圖之, 可也."同氣骨肉, 宛轉溝壑, 益厭生世之樂."之喩, 可見憂慮之遠、倫情之至.然辭涉切迫, 情犯哀傷, 何必乃爾也.夫身在溝壑, 志士不忘, 天生天殺, 達人有言, 思之到此, 多少快活.且昔人云:"死當爲餓鬼, 不宜復爲愁鬼, 以一身供兩役." 此眞理到之見.昔人又云: "到困極難勘處, 常將不如我者, 巧自寬解." 今吾輩雖窮甚, 亦坐而看書, 課學徒, 餘力略些幹家, 猶得喫著不死, 其視耕田行傭負任而得零財糊口者, 可謂遠勝.以此算來, 更快一場.前以少變舊規經營些業見告.揆以汝之志尙, 知是發於一時衝激, 非由中而出也.然不免一毫念頭尙在裏許, 則不如早早刷刷棄去之也.夫士農工商, 均爲四民, 淸濁雅俗, 品格自殊.聖人"執鞭", 亦有爲之言, 非出實際, 特以明富之決不可求.則吾輩安可俯就平日不屑之業, 分却終身所好之樂乎? 人之有知, 貴其自知甚明.試自驗前量來, 吾輩之福分心力, 果能豊足者乎? 不如且隨現分活去.如得前頭稍紓, 則固所不厭.終止於斯而已, 亦安之無他.不幸而至爲溝中瘠, 又無如之何矣.此當爲安分、知命、立德、成身之道.如何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