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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 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묘년(1927)(與季弟汝安 丁卯)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묘년(1927)
눈 쌓인 궁벽한 시골 방안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으니 의연히 교량을 끊어버린 스님주 70) 같구나. 마땅히 성성적적(惺惺寂寂)하여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건만,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네가 그리워 봉래산(蓬萊山)과 영해(瀛海)주 71)로 두루 유랑하니 골육지간이 무엇이란 말이냐?
이 엄동설한에 사방 벽만 있는 집에서 한 표주박 물만 마시는주 72) 신세는 피차일반이니 천륜(天倫)의 지친(至親)이 어찌 한 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 옛사람 중 천하에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자기가 그를 굶주리게 한 듯이 생각한 이도 있었고, 큰 집을 지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를 덮어주기를 원한 이도 있었다. 천하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는데 하물며 골육에 있어서는 어떻겠느냐! 우리가 비록 힘은 서로 보탤 수 없지만 늘 이 마음을 갖는 것이 옳다. 자신이 살아갈 계책은 오직 자신이 힘을 쓰는 데 달려있으니 절대로 친속(親屬)에게 의지하거나 기대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참으로 학문하는 자는 모름지기 자기 힘으로 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는 어렵다. 이 또한 지당한 이치이다.
살아갈 계책은 다만 논밭에 종사하는 하나의 일에 있을 뿐 그밖에 좋은 방책은 없다. 옛날 방공(龐公)주 73)은 몸소 쟁기와 보습을 잡고 처자(妻子)는 앞에서 김을 매었다. 이때 천하가 비록 어지러웠으나 한(漢) 나라는 아직 있었다. 선비가 먹을 것을 취하는 데에 다른 길이 없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이와 같이 하였거늘, 지금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없어 인류가 멸절된 때에 있어서는 어떻겠는가? 다만 아득히 큰 이 세상에 밭 갈 땅이 없다면 또한 호연히 지사(志士) 불망(不忘)주 74)의 자리를 따르는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뜻은 기(氣)를 제어하는 장수이고 배움은 업을 보전하는[居業] 집이다. 장수가 아니면 군대는 반드시 무너지고 집이 아니면 사람이 살지 못한다. 곤란을 당하였다고 변한다면 어찌 장수가 될 수 있으며, 잠깐이라도 버릴 수 있으면 집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예부터 누구나 다 죽지만,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서지 못한다."주 75)와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곧 금수에 가깝다."주 76)라는 말을 경계로 삼아라.
우리 형제가 태어나 이때를 당하여 궁액(窮厄)이 지극하다만, 신학문을 힘써 배척하고 단발(斷髮)에 죽음을 맹세하신 벽봉(碧峯)주 77) 선자(先子)께서 남겨주신 몸을 받았고, "저 사람들에 청원하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구산(臼山)주 78) 선사(先師)가 남긴 가르침을 지키고 있다. 비록 아홉 번 죽고 열 번 살며, 천 번 맵고 만 번 쓰라려도, 세속을 따르고 더러운 데 부합하여 누린내 나는 고기를 주워 먹으며 구차히 입과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오직 이 한 생각은 피차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족이 떨어져 지낸 지가 4년째다.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근심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을 비록 열흘이나 한 달 만에 서로 듣지만, 상을 나란히 하고 이불을 함께 덮는 것은 갑자기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 같구나. 구름을 보는 눈에 어찌 해가 뚫고 비추지 않겠느냐.
한 해가 끝나가는 이때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구나. 이 편지를 쓴 이후 큰 요지는 〈소완(小宛)〉 시의 "나는 해로 너는 달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욕되게 함이 없기를."주 79) 이라는 뜻이다. 마음으로 깨우쳐 주의하길 바란다.
- 주석 70)교량을……스님
- 송시열의 8대손인 송근수(宋根洙)가 지은 《송자대전수차(宋子大全隨箚)》 권4 〈권지41 서(書)〉의 단교승 주(註)에 "옛날에 어떤 승려가 다리[橋]를 끊고 참선하였기에 단교 화상(和尙)이라 칭하였다.[古有僧斷橋而修禪, 謂之斷橋和尙.]"라고 보인다.
- 주석 71)봉래산(蓬萊山)과 영해(瀛海)
- 영해는 동쪽 바다, 봉래산은 동쪽 바다에 있는 신선이 사는 산으로 삼신산의 하나이다. 대개는 전설상의 공간이며, 간혹 금강산과 동해의 이칭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비유인지 실제인지 분명치 않다.
- 주석 72)표주박……마시는
- 《논어》 〈옹야(雍也)〉에 "한 대광주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먹으며 궁벽한 시골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았다.[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라고 하였다.
- 주석 73)방공(龐公)
- 후한(後漢) 때의 인물인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킨다.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서로 손님을 대하듯 공경하였으며,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초빙하자 나아가지 않고 가솔을 모두 거느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 주석 74)지사(志士) 불망(不忘)
- 공자가 이르기를 "의지가 굳은 선비는 곤궁하여 자기 시체가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언제라도 자기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下》
- 주석 75)예부터……못한다
-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사(政事)에 대해 묻자 양식과 무기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답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다 죽지만 믿음이 없으면 살더라도 제대로 설 수가 없다고 한 데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論語 顔淵》
- 주석 76)사람이……가깝다
-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인간에게는 도리가 있다. 그런데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으면서 편안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을 받는 일이 없으면 금수와 가깝게 되고 말 것이다.[人之有道也.飽食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라는 말이 보인다.
- 주석 77)벽봉(碧峯)
- 김택술의 부친 김락진(金洛進, 1859~1909)의 호이다.
- 주석 78)구산(臼山)
- 김택술의 스승 전우(田愚, 1841~1922)의 호 중 하나이다.
- 주석 79)소완(小宛)……없기를
- 《시경》 〈소완(小宛)〉에 "題彼脊令, 載飛載鳴. 我日斯邁, 而月斯征. 夙興夜寐, 無忝爾所生."라는 구절이 있다. 이에 대해서 주희는, "저 할미새를 보건대, 날며 지저귀도다. 나는 날마다 나아가고, 너는 달마다 나아가,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들며, 부모님을 욕되게 말자."라고 풀이하였다.
與季弟汝安 丁卯
積雪窮巷, 塊坐一室, 依然若斷橋和尙.宜其惺惺寂寂, 不動一念, 而不覺憧憧爾思, 周流蓬山瀛海.骨肉之間, 何也? 當此窮冬祈寒, 四壁一瓢, 彼此一般, 天倫之親, 安得不發一體之念也.古之人, 有思天下有飢者, 若己飢之者, 有願庇天下寒士者.天下猶然, 而況於骨肉乎.吾輩雖力不能相資, 常存此心, 可也.至於自身活計, 只在自身用力, 切勿生依賴親屬之心.正如爲學者之須用其力, 難仰他人.此又至當之理也.活計只有服田一事, 外無良策.昔龐公, 親執耒耟, 妻子耘前.是時天下雖亂, 漢室尙在.士之取食, 不無他道而猶如此, 而在今日國破君亡、人類殄滅之秋乎? 但廣漠大界, 無田可耕, 則又有浩然從志士不忘處一道耳.志是御氣之帥, 學乃居業之宅.非帥, 軍必僨;非宅, 人不活.顚沛而可變, 豈得爲帥;造次而可棄, 非所謂宅.要當以"自古皆有死, 人無信, 不立."、"人不學, 卽近禽獸"爲戒.吾兄弟生丁此辰, 窮厄極矣.然受遺體於力排新學、誓死薙變之碧峯先子, 守遺訓於"請願彼人, 決是自辱."之臼山先師.雖九死十生、千辛萬苦, 其不可隨俗合汚、拾腥吃羶, 以苟充口腹也, 明矣.惟此一念, 彼此無他者.而但一舍分居, 于玆四霜.病健憂樂, 雖旬朔相聞, 聯床共被, 似猝未易遂.看雲之眼, 何日不穿? 當此歲窮, 益切孔懷.聊書此以往, 大要〈小宛〉詩"我日而月, 夙夜無忝."之義也.想會心加意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