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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 계제 여안 억술에게 답함 병진년(1916)(答季弟汝安 億述 丙辰)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계제 여안 억술에게 답함 병진년(1916)
비가 계속 내리는 좁은 여막에서 우두커니 홀로 앉아있으니 부모님을 잃은 아픔주 45)과 형제를 그리는 마음주 46)으로 정히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는데 이러한 때에 네 편지를 받으니 비할 데 없이 위로가 되는구나. 같은 가족끼리 잘못을 뉘우친다하니 내 마음이 슬픔에 복받치는구나. 무릇 이렇게 서로 질책하는 것은 모두 곤궁한 처지를 구제하는 계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모두 내가 어리석고 못나 사업을 그르쳐서 너에게 걱정을 안겨주었으니 참으로 부끄럽구나.
대저 집안의 흥망은 비록 말하기를 "인사(人事)의 선악에 달려있다."고 하더라도 그 근본을 궁구하면 운기(運氣)의 통색(通塞)에 관계되어 있으니 더 이상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겠느냐. 비록 그렇지만 또 삼가 부지런히 하여 후일의 만전을 기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하늘이 화를 내린 것을 후회하기를 바란다. 고인이 이르기를 "곤궁해도 의를 잃지 말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곤궁해도 또 더욱 굳건히 하라."고 하였으니, 원컨대 가난 때문에 뜻을 버리지 말고 늘 스스로 격려하여 기량(器量)과 덕업(德業)을 이루고 가문의 명성을 잇기를 바란다.
아, 옛날의 선비 된 자는 영화를 이루었지만 오늘날의 선비 된 자는 치욕을 부른다. 옛날의 독서한 이는 천 종(鍾)의 녹이 있었지만 오늘날의 독서한 이는 종신토록 굶주린다. 우선 농사일에 부지런히 힘써서 선조를 받들고 아래로 자식을 기르는 것이 낫다. 부디 피차(彼此)가 수고로움과 편안함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성내지 말고 고생을 참아내며 한결같이 실천해나가, 내가 철수하고 돌아갈 날을 기다리길 바란다.
나 또한 장차 쟁기를 잡고 호미를 메고, 몸을 땀으로 적시고 발에 흙을 묻히면서 옛사람이 자신의 힘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의리를 따를 것이다. 그러나 단지 구복(口腹)을 채우기에만 힘쓰고 의로써 몸을 바르게 하고 예로써 집안일을 처리할 줄 모른다면, 이것이 사람과 짐승이 구분되는 것이다. 짐승을 면하고 사람이 되길 구하고자 하면 또한 독서가 아니면 이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독서를 어찌 그만 둘 수 있겠느냐! 농사에 밝은 것은 시급한 것을 구하는 것이고, 독서에 힘쓰는 것은 평생의 대사임을 알겠다.
친지들이 이곳을 들러 두 분의 묘소를 보고 모두 재해가 있을까를 우려하니, 안타깝고 근심스런 마음이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구나. 저들이 묘금(墓禁)주 47)을 내리기 전에 이장하여 오늘날 합장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구나. 그러나 거센 바람과 폭우도 아침나절 내내 지속되는 경우는 없으니 저들의 금령이 비록 엄혹할지라도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느냐. 다만 한스러운 것은 맨손이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이 한 가지 일에 있어 계속 생각을 여기에 두어야 한다.
너는 스무 살이 안 되어, 비록 장대하다고는 해도 기혈의 충만함이나 근골의 견고함은 여전히 나에게 미치지 못한다. 상(喪)을 이기지 못한 것은 불효를 면치 못하는 것주 48)이다. 그러니 먹고 마실 적에 역량에 맞춰 행하도록 하여라.
- 주석 45)부모님을 잃은 아픔
- 《시경》〈소아(小雅) 육아(蓼莪)〉에 "슬프고 슬프도다 부모님 생각, 낳고 길러 주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던가.[哀哀父母, 生我劬勞.]"라고 하였다.
- 주석 46)형제를 그리는 마음
- 원문 영원(鴒原)은 《시경》〈소아(小雅) 상체(常棣)〉의 "저 할미새 들판에서 호들갑 떨 듯, 급할 때는 형제들이 서로 돕는 법이라오. 항상 좋은 벗이 있다고 해도, 그저 길게 탄식만을 늘어놓을 뿐이라오.[鶺鴒在原, 兄弟急難.每有良朋, 況也永歎.]"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 주석 47)묘금(墓禁)
-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강제로 개인묘지를 일절 금지시키고 공동묘지만을 허용하며 화장을 적극 장려하는 칙령을 내렸다.
- 주석 48)상(喪)을……것
- 어버이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병이 났는데도 음식이나 약물로 병을 치료하지 않는 것은 나를 낳아 주신 부모에 대해서는 불효이고 자손에 대해서는 자애롭지 못함이 된다는 말이다.
答季弟汝安 億述 丙辰
積雨隘廬, 累然塊坐, 蓼莪之痛, 鶺鴒之懷, 定無淚乾之時, 際得手滋, 慰沃可敵.同堂悔過之云, 吾心惻惻有動.凡此相責, 皆爲救窮失策.而總由吾迂拙敗業, 以致汝憂, 是可愧也.大抵家之興敗, 雖曰:"在於人事臧否.", 究其本, 則實係運氣通塞, 復何怨尤.雖然, 又不容不謹勤善後, 以冀上天之悔禍也.古人云:"窮不失義.", 又曰:"窮且益堅.", 願勿因貧窮而墮志, 常自激昻, 成器業而繼家聲也.噫, 古之爲士者, 致榮;今之爲士者, 招辱.古之讀書也, 有千鍾祿;今之讀書也, 有終身飢.不若且就畎畝中勤力, 奉先俯育之爲愈也.幸勿以彼此勞逸之不均爲慍, 忍辛耐苦, 一意做去, 待吾之撤歸也.吾亦將操耒荷鋤, 沾體塗足, 追古人非力不食之義也.然徒務口腹之充, 而不知以義飭躬以禮處家, 則是人獸之所分.欲求獸之免而人之爲, 又非讀書, 無以致之也.然則讀書豈可以已乎! 是知明農者, 救時之急務;讀書者, 終身之大事也.親知過此, 見兩位墓所, 皆慮有災害, 憫憂之心, 如坐針氈.恨未及彼人墓禁前移窆, 而得今日合祔也.然疾風暴雨, 無崇朝之遲, 彼禁雖嚴, 豈能久乎! 但所恨者手赤耳.須於此一著, 念念在玆也.汝是弱冠前, 雖曰"壯大", 氣血之充, 筋骨之固, 尙不及我.不勝喪, 不免爲不孝.此則飮食之時, 量力而行之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