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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 분재 문중에 올림 기미년(1919)(上粉齋門中 己未)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분재 문중에 올림 기미년(1919)
지난 가을 판곡(板谷) 유허비주 41) 일로 일의 단서를 여쭈었습니다만 그 말씀을 다 듣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대개 이 땅은 죽계(竹溪 김굉(金鋐)) 선조께서 당시 학문에 전념하시고 명석(名碩)들이 서로 종유하던 곳일 뿐만 아니라, 누세토록 노래하고 곡하고 종족이 모이던 곳주 42)이니, 곧 우리 김씨 일파가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 마을입니다. 문정공이 선학(仙鶴)주 43)에 처음 거처하고 화곡공(火谷公)주 44)이 개박(介朴)에 난을 피한 곳과 견줄 게 아닙니다. 똑같은 선인(先人)의 자취이고 똑같이 자손이 있는 곳인데 어떤 데는 빗돌이 찬란하여 사람의 이목을 통쾌하게 하고, 어떤 데는 모두 풀만 무성하여 지나는 사람의 탄식을 자아내니 진실로 어떻게 된 것입니까. 참으로 한숨만 나옵니다.
지난 일은 탓할 수 없지만 앞으로 올 일은 가히 추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만약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여겨 지난 자취와 옛일을 빗돌에 근거를 남겨 말하지 않는다면, 세대가 지나고 세월이 흘러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탄식하는 사람조차도 없을 것입니다. 나중에 비록 현명하고 효성스런 자손이 나와서 오늘 미처 하지 못한 일을 하고자 해도 어떻게 시행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청하건대, 깊이 생각하고 멀리 헤아려 서둘러 대사(大事)를 도모하십시오.
- 주석 41)판곡(板谷) 유허비
- 죽계(竹溪) 김횡(金鋐)의 유허비로 김복한(金福漢, 1860~1924)이 지었다. 판곡(板谷)은 전북 부안군 보안면 부안 김씨 직장공파의 세거지이다.
- 주석 42)노래하고……곳
- 진(晉) 나라 헌문자(憲文子)가 저택을 신축하여 준공하자 대부들이 가서 축하하였는데, 이때 장로(張老)가 말하기를, "규모가 크고 화려하여 아름답도다. 제사 때에는 여기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상사(喪事) 때에는 여기에서 곡읍을 하고, 연회 때에는 여기에서 국빈(國賓)과 종족을 모아 즐길 것이로다.[美哉輪焉! 美哉奐焉! 歌於斯, 哭於斯, 聚國族於斯.]"라고 하니, 헌문자가 장로의 말을 되풀이하며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자, 군자들이 축사와 답사를 모두 잘했다고 칭찬한 고사가 전한다. 《禮記 檀弓下》
- 주석 43)선학(仙鶴)
- 선은(仙隱)의 옛 지명이다.
- 주석 44)화곡공(火谷公)
- 김명(金銘)이다. 직장공파 매죽공(梅竹公) 김종(金宗)의 손자로 죽계공(竹溪公) 김굉(金鋐)의 중형(仲兄)이다.
上粉齋門中 己未
昨秋, 以板谷遺墟碑事, 微稟其端, 未究其說.不審再入思議否? 蓋此地, 非惟竹溪先祖當日藏修名碩相從之所, 乃累世歌哭聚族之處, 則吾金一派桑梓故里.有非文貞公仙鶴初居, 火谷公介朴避亂之比也.同是先跡, 均有子孫之地, 或貞珉煥然快人耳目, 或鞠爲茂草行路齎咨, 是誠何以? 良可一吁.往旣勿諫, 來者可追.今若視爲無事, 不使往蹟故事, 憑諸片石之堪語, 則世經年移, 幷與其指點咨嗟者而無矣.後雖有賢孝子孫者出, 欲擧今日之未遑, 奚從而施之哉! 伏乞深思永慮, 亟圖大事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