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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 족제 명익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族弟明益 癸酉)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2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2.0001.TXT.0007
족제 명익에게 답함 계유년(1933)
제 동생이 와서 말하기를 요사이 종중에서 대동보에 대한 논의가 나왔는데 현좌(賢座)주 19) 또한 같은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이윽고 또 현좌가 나에게 가부를 묻는 뜻을 전하였습니다. 제 무슨 견해가 현좌보다 높아 가부를 물을 게 있겠습니까. 또 여러 어른들이 미리 정해놓은 계획이 있는데 비록 조금 다른 견해가 있다한들 어찌 감히 제가 망령되이 의견을 내놓겠습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대동보에 관한 논의는 문중을 위하는 일이므로 현좌와 제 동생이 지위가 낮고 견해가 일천하다고 하여, 끝내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 없는 점이 있을 겁니다. 감히 이에 진언하니 부디 살펴 주십시오.
대저 족보는 족친을 화합시키는 것이니 작게 화합하는 것보다 크게 화합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각 성씨들이 대동보를 많이 만들지만 유독 우리 김씨 문중만 없습니다. 이제 이 논의에 있어 누군들 기쁘게 듣고 즐거이 이루려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적절한 시기가 아니고 형세가 불가한 면이 있습니다. 역사서를 만드는 어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고들 말하는데 족보의 어려움은 그보다 더 심합니다. 역사의 실책은 오직 사실과 어긋나는 데 있지만, 족보의 실책은 곧 윤리와 명분에 죄를 얻는 데 이릅니다. 이는 평안한 시대의 파보로 이야기해도 오히려 이 같은 점이 있거늘 하물며 오늘날 세상에선 어떠하겠습니까.
천지가 뒤집히고 윤리와 예법이 무너지며, 사설(邪說)이 횡행하여 정론이 사라진 지 오랩니다. 오늘날같이 세도와 인심이 강상(綱常)과 어긋나고 흩어져 사는 곳이 다수이기에 이목과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대단히 밝은 안목과 대단히 씩씩하고 굳센 힘이 있어서 종손(宗孫)과 지손(支孫)의 다툼, 처첩의 무분별, 서족(庶族)의 분수에 넘치는 생각, 남의 족보에 무릅쓰고 들러붙는 미혹과 패륜, 관첩(官帖)의 진위, 행적(行蹟)의 허실을 거울로 비추고 쇠를 끊듯이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할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실로 믿지 못하겠고, 만약 "할 수 없다."고 하면 그 죄를 어찌 면하겠습니까. 만약 "오늘날 세상은 각 성씨마다 모두 그렇게 하는데 어찌 우리만 유독 죄가 되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은 비단 여러 종중과 현좌에게 바라는 바가 아닐 뿐만 아니라, 우리 김문(金門)의 대대로 전할 족보법의 엄정함을 헤아려보면 제종(諸宗)과 현좌 또한 결단코 이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시기와 형세를 헤아려 불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혜가 있어도 형세를 타는 것만 못하고, 비록 농기구가 있더라도 시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한 법인데, 어찌하여 조금도 기다리지 않습니까. 또 세상이 변한 이후로 모든 일에 있어 시대의 구애를 받는 것은 일체 제쳐두었다가 언젠가 결말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실로 우리 마음속 자연스런 본연일 테고, 또한 입으로 평소 익숙하게 강론하였던 것입니다. 이 대동보는 400년 동안 만들지 못하였지만 우리 김문(金門)에 허물이 되지 않았고, 족친이 화합하는 데 문제가 없었는데, 어찌하여 이것을 부득이 하다고 보고 급급하며 그만두지 못하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현좌가 다시 생각해보고 말해주십시오. 이 편지를 현좌의 백부님과 춘부장 어른, 두 숙부님께 보여드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른 사람 눈에 번거롭게 돌려서 구설에 오르면 안 될 겁니다. 곡진히 생각해 주십시오.
주석 19)현좌(賢座)
서간문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관직이 있는 사람에게는 합하(閤下)라 하였고, 연장자에게는 헌하(軒下)라고 하였으며, 평교간에는 좌하(座下),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는 현좌(賢座)라고 한다.
答族弟明益 癸酉
家弟來言, 近自宗中發大同譜議, 賢座亦與同情.旣而又傳賢座轉質可否於鄙人之意.鄙人有何見高於賢座而可質可否? 且諸長老定算有在, 縱些有見, 安敢自下妄議? 雖然在譜議爲宗事, 在賢座若親弟, 終有不可以位下見淺而噤嘿者.敢玆布悉, 幸有以察焉.夫譜所以合族, 小合孰與大合.是以我東各姓, 多譜大同, 而獨吾金無焉.今於此議, 孰不喜聞而樂成? 但時非其時, 勢有不可.作史之難, 古今云然, 而譜之難爲尤焉.史之失, 惟在於事實差爽;譜之失, 乃至得罪於倫理名分.此以平世派譜言之, 尙有若此者.而況今之世何如也!
天飜地覆, 綱淪法斁, 邪說熾而正論熄者久矣.以若今日世道人心之乖常, 散處多數, 耳目意念之不及, 何許大明眼大壯力, 有能照鏡截鐵於宗支之常爭、妻妾之無分、庶族之濫想、冒附之迷悖、官帖之眞贗、行蹟之虛實者乎? 如曰"能之.", 吾實不信.如曰"不能.", 厥罪奚免.如曰:"今之世, 各姓皆然, 而我獨何罪?", 非惟非所望於諸宗與賢座, 揆以吾金世傳譜法之嚴正, 諸宗與賢座, 亦斷不至此也.此所以云量時度勢而不可焉者.雖有智慧, 不如乘勢;雖有鎡器, 不如待時, 盍少俟之? 且自世變以後, 凡事涉時拘者, 一切遷就以待究竟出場, 實吾人心中自然之天, 亦口頭平日之熟講.胡爲於此大譜四百年未遑, 而不失爲吾金, 無傷於合族者, 視以爲不得已, 而汲汲然不置也, 竊所未曉.惟賢座再思而見敎.因將此書, 獻覽于尊伯父春府兩叔主, 如何? 他眼不宜轉煩以致多口.想在曲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