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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1
  • 서(書)
  • 종제 자유에게 보냄 계유년(1933)(與宗第子由 癸酉)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1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1.0001.TXT.0011
종제 자유에게 보냄 계유년(1933)
지난번 여흥 김용승주 23)의 일에 대해 논했는데 그대가 나의 변론을 보고 "그가 스승을 배반한 실체임을 분명히 알았더라면 내가 다시 번거롭게 제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랑캐 연호를 썼다고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을 배척한 일은 일찍이 명백한 변문(辨文)이 있지 않다.'라고 하시니, 때문에 내가 다시 상논(詳論)하여 그대에게 알려주어서 보고 듣는 것의 미혹됨을 깨뜨려주겠습니다. 그는 "노주가 오랑캐 연호를 썼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조야(朝野)에 가히 근거할만한 문자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집(本集) 경세문(警世文)에주 24)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 비록 저 오랑캐의 정삭(正朔)을 행하더라도 공사(公私) 문헌에 대부분 여전히 숭정(崇禎) 연호를 쓰는 것은 실로 정밀한 의리가 있다. 이것이 어찌 한갓 황명(皇明)이 재조(再造)한 은혜주 25)를 잊지 않아서이겠는가? 신주(神州 중화)가 침탈을 당해 존왕양이(尊王攘夷)를 강론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가만히 성인이 10월을 양월(陽月)이라 부른 의리를 취하여 공언(空言)에 양기(陽氣)의 일선을 기탁하여 그것을 써서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대개 경세의 정론이 이미 이와 같은즉 어찌 스스로 오랑캐 연호를 쓸 이치가 있었겠습니까? 김씨는 《매산집(梅山集》의 〈간노주용노년서(諫老洲用虜年書)〉'를 근거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매산집(梅山集》에 그 글이 있는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진실로 있다하더라도 노주가 애초에 쓰지 않았는데 매산이 혹 노주가 그것을 사용할까 지나치게 우려하여 규간하여 그치게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님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다면 모두가 노주에게 손상 될 것이 없는데도 어찌하여 괴롭게 구차히 비난하는 것인지요? 김씨는 늘 "이 의리(오랑캐 연호를 쓰지 않는 것)는 우리 집안 삼백년간 대대로 지켜온 것이요. 중화를 높이는데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는데, 이 설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근자에 〈김과제행장(金過齊行狀)〉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상소에 숭정연호를 썼느냐고 물으니, 답하기를 '위호(僞號 오랑캐 연호)를 썼다'고 했다. 이에 대해 지구(知舊 오랜 친구)들이 의심한다고 하니, '우리 선세(先世)는 과목(科目 문과 무과 등 과거)으로 출신(出身 벼슬살이)했기 때문에 부득불 쓰지 않을 수 없어서 나 또한 썼다.'" 이 문장은 본고(本稿) 11권 4판에 있는데 송강제(宋剛齊)가 편찬한 것입니다. 과제(過齊)는 곧 김씨의 5대족조로 함께 충정공(忠正公)에서부터 나왔고 그의 고조(高祖)는 매산(梅山)의 스승입니다. 그 고조의 연원과 도학은 세상에서 나라 안의 대가(大家)로 칭해졌으니, 비단 김문(金門)의 으뜸만이 아닙니다. 과제(過齊)도 이와 같았으니, 그가 말한 우리 집안의 삼백년 지켜온 의리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대저 김씨가 노주(老洲)를 배척한 것이 공정한 것인가? 사사로운 것인가? 물으면 저는 반드시 공정한 것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상인 과제(過齊)에 있어서는 위호(僞號)가 들어간 글이 본고에 드러났음에도 은폐하여 말하지 않고, 노주(老洲)에 있어서는 경세의 문장이 일세에 전파되었음에도 애써 이를 심히 배척하니, 이를 공심(公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김씨가 과제(過齊)의 그와 같은 사실이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면, 곧 자기 집안의 문헌에도 오히려 어두운 것이니 어찌 유독 노주(老洲)가 꼭 위호(僞號)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에게 공정한 마음이 있다면 과제(過齊)의 사건을 보여준 날에 마땅히 그 편견과 망언을 사과하고 복종하기에도 겨를이 없어야 하거늘, 그런 계책을 내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끈하여 "어디 사는 놈이 과제(過齊)의 유고(遺稿)를 이와 같이 인출하였단 말인가?"라고 진노하니, 그렇다면 저 인출한 원고가 조작되어 그 문장에 들어갔단 말입니까? 아! 그러니 그 사람됨을 가히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이기기 좋아하는 기질과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망상이 습관이 되어 극복해내지 못하고 고질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오진영과 시기하고 교묘하게 쟁변하다가, 노주(老洲)가 오진영의 족조(族祖)로 성리의 여러 설이 오진영에게 인용되기 때문에 노주의 설까지 아울러 불만족스럽게 여기고, 돌고 돌아 노주가 오랑캐 연호를 썼다고 배척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노주(老洲)는 우리 선사(先師 간재) 연원의 정맥(正脈)으로 가장 존신(尊信)해야 할 분이거늘 저들이 감히 배척하기를 여력을 남기지 않으니, 어찌 인무(認誣)주 26)를 믿고 선사(先師)를 사우(師友)로 여기는 것을 기다린 연후에 사문의 죄를 얻는 것이 되겠습니까?
주석 23)여흥의 김씨
김씨는 김용승(金容承)을 말한다.처음에는 후창과 함께 오진영을 성토하는 쪽에 가담했으나 뒤에 돌아선 자이다.
주석 24)본집(本集) 경세문(警世文)
노주 오희상의 《노주집(老洲集)》 〈경세문(警世文)〉을 말한다.
주석 25)황명(皇明)이……은혜
명(明)나라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 나라를 지킬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의미이다.
주석 26)인무(認誣)
스승과 절의를 무함하여 원고를 고치고 일제의 허가를 받아 선사의 유집을 간행한 사실을 가리킨다.
與宗第子由 癸酉
向論驪金事, 左右旣見鄙辨, 而謂明知其爲倍師之實, 則吾不須再煩.若其斥老洲以書虜年, 則未曾有明辨之文, 故玆復詳論以告左右, 幷以破觀聽之惑.其云老洲用虜年者, 雖未知出於朝野文字之可據者與否.然本集警世文, 有曰國中縱行彼虜正朔, 公私文獻亦多尙記崇禎年號者, 實有精義.豈徒爲不忘皇明再造之恩而然哉? 神州陸沈, 無地可講尊攘矣.竊取聖人十月號陽月之義, 欲寓一線於空言, 用俟河淸已矣.蓋其警世之定論旣如此, 則豈有自用虜年之理哉? 金謂《梅山集》有〈諫老洲用虜年書〉, 此爲可據.梅集之有無, 亦不可知, 信有之安知其非洲初不用, 梅或過慮洲或欲用, 因諫而止耶? 如此則俱無損於老洲, 何苦苟訾乎哉? 金常曰此義吾家三百年世守, 尊周之家, 莫不皆然, 此說亦不然.近觀〈金過齋行狀〉, 有人問疏中書崇禎年號耶, 答曰書僞號.知舊多疑之者, 而吾先世科目出身, 不得不用, 故吾亦用之.此見本稿十一卷四板, 而宋剛齋撰也.過齊卽金之族五代祖, 而同出於忠正公, 其高祖梅山之師也.淵源道學, 世所稱國中大家, 非獨爲金門最矣.過齊而如此, 則所謂吾家三百年世守之義者, 果安在哉? 蓋金斥老洲者, 爲公耶? 爲私也? 彼必曰爲公矣.然在過齋則僞號之書, 明著本稿而掩之不言, 在老洲, 則警世之文, 布諸一世而斥之甚力, 是可謂公心耶? 若曰不知過齊之有此, 則自家文獻, 尙且眛然者, 何以獨知老洲之必用僞號乎? 苟有公心於左右, 示以過齋事之日, 當謝服其偏見妄言之不暇, 計不出此, 乃勃然怒曰, 何許漢印出過齋遺稿乃如此? 彼謂印稿者, 造入此文也耶? 噫! 其人可知已矣.蓋其好勝之氣, 自尊之習, 不能克下, 爲其痼疾.始與吳震泳猜巧爭辨, 因以老洲爲震族祖, 而性理諸說爲震引用, 故幷不滿其說, 而輾轉至於斥以用虜號而極矣.老洲先師之淵源正脈, 而最所尊信者, 彼敢斥之不遺餘力, 何待信認誣而師友先師然後爲得罪斯文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