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역/표점
- 국역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1
- 서(書)
- 이사유에게 답함 임신년(1932)(答李士裕 壬申)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1 / 서(書)
이사유에게 답함 임신년(1932)
받은 서신 중 "금년에도 집에서 먹지 못한다(今年又不可食)"는 여섯 글자는 다소 개탄의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옛사람 가운데서도 몸소 농사짓고 품팔이하면서 학업을 이룬 자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이 비록 힘들다고 하지만 여러 농사짓고 품팔이 하는 일에 비하면 오히려 여력이 있어서 가히 책을 보고 이치를 연마할 수 있습니다. 공문(孔門)의 여러 제자가 대부 집안에 벼슬했음에도 공자에게 배척당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의 선비들이 그것을 버리면 먹고 살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대에게는 속수(束修)의 예주 14)가 있고 나에게는 식력(食力 스스로의 힘으로 먹을 힘)의 의리가 있으니 삼가(三家)주 15)에게 벼슬했던 자들과 동일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의리로 보나 힘으로 보나 모두 우리 학문에 방해될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송나라의 황면재(黃勉齋),주 16) 청의 육삼어(陸三魚)주 17) 및 근세 병암(炳庵) 김준영(金駿榮)에 이르기까지 모두 객지의 선생노릇을 면치 못했지만, 그들이 수립한 학문의 세계는 자유롭게 전력했던 자들조차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 때문에 스스로 겸연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 분명합니다.
- 주석 14)속수의 예
- 속수는 한 묶음의 말린 고기로 제자가 글을 배우기 위해 스승을 찾아갈 때 간단한 예물을 바치는 예(禮)이다. 공자가 "속수의 예를 행한 자 그 이상에 대해서 내가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라고 하였다 《論語 述而》
- 주석 15)삼가(三家)
-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서 정권을 잡았던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를 말한다. 《論語 季氏 註》
- 주석 16)황면재(黃勉齋)
- 송나라 황간(黃榦1152-1221)으로 면재는 그의 호이다. 주희에게 수학하였는데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학문을 전수하고 사위로 삼았다.
- 주석 17)육삼어(陸三魚)
- 육농기(陸隴其, 1630~1693)를 말한다. 정주학(程朱學)을 숭배하고 양명학(陽明學)을 극력 반대하였다. 저서로는 《삼어당집(三魚堂集)》이 있다.
答李士裕 壬申
來書中, 今年又不家食六字, 似有多少慨歎意.此殊不然.古之人有躬耕行傭而成學業者.敎課雖勤, 比諸耕傭, 猶有餘力可以觀書硏理.孔門諸子, 仕大夫之家而不見斥者, 以當時士子舍此無食道故也.今也則在彼有束修之禮, 在我有食力之義, 不可與仕三家者同日語也.以義以力, 俱不防吾學.是以如宋之黃勉齋淸之陸三魚, 以及近世炳庵金公, 皆不免爲人舘客, 而其所樹立, 非自由專力者之所及.其不可而此而自歉也明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