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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1
- 서(書)
- 최이구에게 보냄 기묘년(1939)(與崔以求 己卯)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1 / 서(書)
최이구에게 보냄 기묘년(1939)
그대는 지난날 태용(泰庸) 신경재(申敬齊)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지요? 그때 구암집(苟庵集)주 11)을 간행하지 않고 깊이 소장한 것은 완순(完順)군이 저들(총독부)의 인가를 요청하여 구옹(苟翁)께 누를 끼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완순군은 도를 배운 군자가 아닌데도 오히려 이 의리를 압니다. 하물며 우리 간옹선사는 일생 도를 배워 당대 유학의 종장이었는데, 저들의 인가를 내서 원고를 간행하라는 교시가 있었단 말입니까? 오진영이 인가(認可) 내는 일로 누를 끼치는 것으로도 부족해 또 이러한 설로 무함(誣陷)하니, 오호라! 애통합니다.
- 주석 11)구암집(苟庵集)
- 구암은 신응조(申應朝, 1804~1899)의 호이다. 1852년(철종3)에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 이조, 예조 판서를 지냈다. 임오군란(壬午軍亂) 이후 재집권하게 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출사하지 않았다. 저서로 《구암집(苟庵集)》이 있다.
與崔以求 己卯
君不記向日申敬齋泰庸之言乎? 其不曰苟庵集之不刊行而深藏, 以完順君之不欲請彼認而累苟翁乎? 完順非學道君子, 猶知此義.矧乎吾艮翁先師一生學道, 爲當世儒宗, 而有出認刊稿之敎乎? 吳也認累之不足, 而又以此說誣之, 鳴乎! 痛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