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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1
  • 서(書)
  • 최이구 민열에게 보냄 을해년(1935)(答崔以求 敏烈 乙亥)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11 / 서(書)

자료ID HIKS_Z038_01_B00001_001.011.0001.TXT.0001
최이구 민열에게 보냄 을해년(1935)
나의 문장을 그대가 전할 만하다고 여겨서 선사(繕寫)하여 소장하려고 한다는데 아마도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건데 본디 문장에 재주와 식견도 없고 또 힘을 쏟아 붓지도 않았습니다. 나아가 유학자의 이치가 뛰어난 문장으로 세교(世敎)에 보탬이 되지도 못했고, 물러나 문인의 기교있는 말로 남의 이목을 즐겁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장차 누구에게 보일 것이며 누구에게 전하겠습니까? 대저 고금의 문장에 진력했던 자들에 대해서도 육일옹(六一翁 구양수)은 오히려 다 사라졌다고 슬피 탄식했는데,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오직 맹자(孟子), 한유(韓愈), 주자(朱子), 송시열(宋時烈) 네 현인의 문장만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 전해지는 실체를 궁구해보면, 맹자는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변별했고, 한유는 노자와 불가를 변별했고, 주자는 육상산(陸象山 육구연)을 변별했고, 송시열은 흑수(黑水)주 1)를 변별했으니, 이처럼 이단을 변별한 것을 제이의(第二義)로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오씨와 김씨가주 2) 무함(誣陷)과 배신의 변을 일으켜 사도(師道)가 밝혀지지 못함을 통분해하고 사벽(辭闢)주 3)할 사람이 없음을 개탄하여 허다한 심력을 소비해 수많은 문장을 썼습니다. 확연한 효과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이단을 물리치는 무리라는 점에 있어서는 일찍이 많이 양보할 수 없어서 스스로 맹자, 한유, 주자, 송시열 네 현인의 마음을 본받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저 맹자께서 우(禹)임금, 주공(周公), 공자, 삼성의 공을 이은 것도 실로 이점(이단을 물리친 것)에 있습니다. 또 스스로 생각하기를 평생의 학문은 하나도 성취한 바가 없지만 오직 이 일만큼은 가히 손에 쥐고 선사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간옹의 도가 끝내 어두워질 이치가 없으니, 나의 변문도 사라지지 않을 것을 보증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태양 빛에 의지하고 천리마 꼬리에 붙어서 함께 비추고 아울러 이르는 것도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밖의 부수적인 글들은 오직 변문에 의지해 함께 전해질 것입니다. 그대가 써서 소장하여 뜻밖의 일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도 이런 점을 보셨기 때문이겠지요.
주석 1)흑수(黑水)
윤휴를 가리킨다. 윤휴가 살았던 경기 여주(驪州)의 '여(驪)' 자가 '검은 말 여' 자로 검다는 뜻이 있고 거기에 여강(驪江)이 있으므로 윤휴를 배척하는 측에서 그의 별칭으로 사용하였다.
주석 2)오씨와 김씨
간재의 문인이었던 오진영과 김용승으로 보인다.
주석 3)사벽(辭闢)
말로 밝혀 물리친다는 뜻이다. 한유(韓愈)의 〈여맹간상서서(與孟簡尙書書)〉에 "양자운(揚子雲)이 이르기를 '옛날에 양주와 묵적이 정도(正道)를 막으므로 맹자가 말로 밝혀 물리쳐서 환하게 터놓았다.[古者楊墨塞路 孟子辭而闢之廓如也]'"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答崔以求 敏烈 乙亥
鄙文君以爲可傳, 欲繕寫而藏之, 恐不必爾也.自念於此, 素無才識, 又不致力.進不得爲儒者理勝之文之裨蓋世敎退, 不得爲文人巧麗之辭之悅人耳目.將誰觀而誰傳? 夫以古今盡心於文字間者, 六一翁猶發泯滅可悲之歎, 况如余者哉? 惟是孟韓朱宋四賢之文, 傳至于今炳炳如也.而究其可傳之實, 則辨楊墨, 辨老佛, 辨象山, 辨黑水者, 不可作第二義看矣.吾於吳金誣倍之變, 痛師道之不明, 慨辭闢之無人, 費了許多心力, 立了許多文字.廓如之效, 雖不能奏, 言距之徒, 曾不多讓, 自以爲法孟韓朱宋四賢之心. 如孟子承禹周孔三聖之功者, 實在於此.又自以爲平生爲學, 無一所就, 惟此事可以藉手見先師也.噫! 艮翁之道, 無終晦之理, 則吾之辨文, 亦可保其不泯.所以依光附尾, 同照并致者, 又在於此.而外此漫著, 惟賴辨文而并傳歟.君之欲寫藏而備不虞者, 其有見於此耶.